학교에서 강의 부담은 적었지만 대신 샘플링 연구소 일을 해주어야 했다. 연구소에서 강의 시수를 하나 줄여주고, summer salary 1-2달치를 내주고, 또 대학원생 RA 지원도 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기여를 해주어야 했다. 원래 이 세상에 공짜라는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대학에서는 교수가 강의하는 9개월만 봉급을 받고 나머지 여름방학 3개월은 자기가 알아서 벌어야 하는데 연구소에서 1-2개월은 지원해 주는 것이다. )
연구소는 매년 4-5 million 정도를 벌어들이는데 미국 농림부의 지원으로 NRI (National Resource Inventory) 라는 통계를 생산해 주는데 이는 미국의 토지 및 환경과 관련된 기초 통계자료로서 연구소에 매년 3-4 million 의 수입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이를 소홀히 할수 없다. 그런데 워낙 조사항목도 많고 전처리 과정이나 추정 관련하여 세부 디테일이 워낙 복잡하여 그걸 한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고 집단적으로 협업을 통해서 일을 하게 된다. (지질학자-통계학자-농경제학자-프로그래머 등의 협업을 통해 일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오와 코커스 관련 프로젝트도 했는데 이는 정치학자와 서베이 전문가 그리고 통계학자의 협업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나는 이러한 부분이 약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실 우리 삶과 직접 연결되는 현실문제는 어느 하나의 전문분야로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바탕으로 다학제간 연구를 수년에 걸쳐서 해야 겨우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데 이는 동양인들에게 취약한 문제해결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어진 문제 하에서 빨리 푸는건 잘하지만 개념을 잡고 문제를 정의하고 그 구성요소를 나누고 토론을 통해서 합의를 이루는 부분에서는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나는 포용력이나 인내심까지 없으니 더더욱 이런 집단적 연구에 대하여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아뭏튼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2-3년 정도 연구소 일을 하면서 대충 적응이 되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만 하면서 자유롭게 지낼수 있을텐데 여기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나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면이 있었기에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이 소모적이지 않고 시야를 키우는 면이 있었고, 논문이나 책에서는 배울수 없는 암묵지를 습득하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일종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컨설팅 했던 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내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subject matter 저널에 공저자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예를들어 아이오와 코커스 관련 프로젝트를 하다가 전화조사의 선택 편향을 보정하는 연구로 2014년에 Annals of Applied Statistics 에 논문을 실은 것도 있으니 그런건 일석이조 또는 금상첨화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할수 있다.
2010년부터는 그 연구소의 소장직을 맡게 되었다. 행정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 3년만 하고나서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소장이 되니 학교 내의 주요 회의에도 불려나가서 학교 내의 다른 연구소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연구중심 대학에서 연구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NSF (연구재단)의 자문위원으로도 위촉되어서 여러 연구 프로포절들을 심사하고 패널 미팅을 하면서 연구 관련 행정도 조금 알게 되었는데 좋은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