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광 Aug 30. 2020

위기와 기회  

제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주말에 에세이 글을 한편씩 써보려고 하는데 개강이 되니 그것도 아주 쉽지는 않습니다. 생활이 단조롭고 뻔하니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의 정치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도 불편한 것이기에, 글을 쓰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의 제 생활을 이야기하는게 나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 칼 융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제 삶에서 경험하지 않은 관념이라는 것은 결국 남의 생각을 다르게 포장하고 해석하는 것인데 그런건 다른 사람의 글에서도 읽을수 있는 것이니 굳이 제가 그런 글쓰기를 흉내낼 필요도 없고 그런 재주도 없습니다.


제가 전업작가도 아니고 아마추어로 글쓰기를 하는 이상 저만의 고유함이 드러나는 글쓰기를 하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에서 얻어진 고유한 경험을 재료삼아 이를 바탕으로 보편성을 갖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 글쓰기가 뜸했던 이유가 사실은 제 삶이 너무 단조롭고 평범해서인데 생각해보면 그건 제 관점에서는 평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색다른 경험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소한 경험이라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될수 있으니 다시 글쓰는 재미를 붙여 보려고 합니다.



제가 속한 사회는 미국사회이지만 실제로 제가 생활하는 사회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통계학과입니다. 제가 거기에서 교수들과 대화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러는게 생활의 대부분입니다. 학과교수가 35명이니 제법 사이즈가 큽니다. 미국인이 60프로 정도 되고 나머지는 중국인, 인도인, 중동인 등이 있고 저도 한국인으로 소수 민족에 속합니다. 미국인이 주류이지만 크게 인종차별은 없습니다. 물론 미국인 교수들은 미국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게 드러나게 차별하는 것은 없으니 민감하게 대립한 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여기는 저녁 회식이 있는것도 아니고 교수들끼리 업무적으로 협력하는거 외에는 굳이 사내정치를 안해도 되니 편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학과의 일부 교수들이 저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연구비를 이용하여 강의를 적게 해왔는데 그게 교수들에게는 일종의 위화감을 가져오고 시기와 질투의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학과 교수들의 기본 강의 의무는 1년에 3과목인데 저는 연구비를 이용해서 강의를 줄여서 1년에 1-2과목만 강의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만큼 연구비를 학과에 지불해 주어야 합니다. 대략 2천 5백만원 정도를 학과에 돈을 내면 저는 강의를 하나 줄이고 학과는 그 돈으로 강사를 고용하고 남는 돈으로 학생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2과목을 줄이면 5천만원이 넘는 연구비를 학과에 지불하니 적은 액수는 아닙니다. 학과 교수들의 대부분은 그만큼의 연구비가 없기에 저와 같이 강의수를 줄이는 사람에 대해 학과에서 특혜를 많이 준다고 시기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구에 손을 놓고 강의만 하는 교수들이 제법 있는데 그런 교수들은 저같은 존재가 상당히 불편할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에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왜냐하면 제가 탈법이나 꼼수를 쓴게 아니라 능력껏 합법적인 방법으로 한 것이니) 역지사지를 발휘해서 시기심을 갖는 교수들을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하면 그런 시기심이 생기는건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과장에게 나때문에 불만을 갖는 교수들이 생기면 나 역시 편하지 않으니 기꺼이 강의를 많이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이제 학과에서도 어른 역할을 해야 하니 보다 양보해야 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교 재정이 어려워져서 당장 학과에서 쓸수 있는 예산이 줄어들었습니다. 학과에 돈이 없으니 학과장 입장에서는 돈있는 교수들에게 부탁을 해서 학과를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학과장이 제게 네 연구비로 강의를 좀더 줄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학과에 돈을 내는 것이니 학과 입장에서는 예산이 줄어든 충격을 완화할수 있는 것이고 그런 어려운 사정을 학과 다른 교수들도 다 알고 있으니 이에 대한 내부 저항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는 1년에 한과목만 강의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제법 많은 연구비가 있고 빨리 써야하는 처지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회 참석도 못하고 쓸데도 없으니 그 돈으로 강의를 줄이면 저도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게다가 강의가 줄어들면 연구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니 미국의 시스템이 이러한 마태효과를 허용하는 합리주의적인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외부의 위기는 다른 기회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위기는 개혁에 대한 내부 저항을 줄여줄수 있기에 리더가 구성원들을 설득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체질을 개선하는데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실제로  IMF 구제금융 당시에 구조조정을 잘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서 한국 경제가 한단계 체질이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위기에는 영웅이 탄생하고 뛰어난 리더의 역량이 빛을 발할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물론 뛰어나지 못하고 무능한 리더에게는 그 위기는 기회라기 보다는 재앙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한국도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재앙보다는 기회를 만들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의 주인 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