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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18. 2020

대기만성

이번 가을 학기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했었는데요 최근에 이에 대한 강의평가를 받았는데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승진도 다 했고 사실 강의평가가 나쁘다고 해서 큰 불이익을 받는건 아니지만 이왕 하게된 강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난 봄에는 사실 별로 좋지 않은 강의평가를 받았는데 그게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가을에는 더욱 신경을 썼던 것도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예전보다 강의 준비 시간을 거의 두배가 넘게 투자했는데 그랬더니 학생들 반응도 좋아서 더 힘을 내서 강의를 잘 마무리 할수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그리 강의를 잘 하는 편이 아니였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친절하게 강의를 하기 보다는 내가 관심있는 부분 위주로 하니 강의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게다가 영어도 시원치 않으니 강의평가는 학과 교수들 중에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곤 했습니다. 그래도 연구를 잘하니까 승진이나 다른 전체평가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강의에 신경을 써보니 강의 역시 즐겁고 또한 의미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제가 이제 강의에도 좀더 자신감이 생기고 더욱 열심히 제 일을 할수 있게 되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 제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작 제가 이렇게 정성을 쏟았더라면 더 학생들에게 유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nyway, 저 자신의 강의 기술이 나아졌다는 것은 제가 더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 자신은 스스로를 생각할때  젊은 시절보다 10년 전이 낫고, 10년전보다는 지금이 더 나은, 그리고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나아지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인간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이 쌓여서 저의 단점을 보완하는 요령들이 생겨서 일의 효율을 높아주는 것입니다. 연구도 예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강의도 훨씬 노련해 졌습니다. 이런 노우하우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이상 대기만성형으로 성장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대기만성이 되는건 아니고 대부분은 중간에 성장을 멈춥니다. 대기만성의 조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1) 환경 (2) 체력 (3) 자세 이렇게 세가지일 것 같습니다. 환경이라는 것은 나무로 치면 토양과 같은 것으로써 내가 위치한 곳에서 지속적인 지적 자극과 자양분을 받을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이 없거나 주변 동료들이 학문적 자극을 주지 않는 곳에서는 학자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조로하기 쉽습니다.


체력도 중요합니다. 나이 50이 되어보니 눈도 침침하고 수면도 깊지 못해서 콘디션이 좋은 날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육체적 한계가 (높아진 효율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부에 시간을 더 투자하지 못하는 방해요인이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큰 병이라도 걸리면 대기만성은 커녕 생존 조차도 불확실해 지는 것이기에 체력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몸을 사리게 됩니다. 


자세, 즉 심리적인 요인도 나의 성장을 방해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하나는 자만심일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허무주의일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그릇이 작으면 쉽게 자만합니다. 작은 성공에 만족해서 안주하고 발전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 자만심은 오히려 눈치채기가 쉬운데 허무주의는 좀더 교묘합니다. 그건 어느 단계에 오르면 학문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의심해 보는 것인데 여기에는 자기의 무능이나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자기기만적 요소가 제법 있습니다.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 적기에 대기만성형 학자가 드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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