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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24. 2021

드라마에 대한 망상

11/22/21

나와 남편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집중하는 부분이 다르다. 나는 전체적인 흐름에 웃음 포인트 감동 포인트 교훈 등등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이는 반면 남편은 구체적이고 자세히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둘 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 그 감상에 대해 수다 떨고 느낀 점을 공유하고 특히 남편의 세세한 설명을 들으며 와 그런 의미도 있겠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며 영화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나는 너무 재밌게 본 영화를 남편은 개연성이 어떻니 주제가 저떻니 현실 고증을 못했니 하면서 평론할 때 발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는 그냥 대충 들어주고 대화가 되는데 특히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내가 욱해서 변론하게 된다. 보통 8할은 맞는 말 하고 2할은 내가 듣기에 김새는 말을 함. 


예를 들어 내가 응팔에 빠져 그 시리즈를 전부 몰아 볼 때, 남편은 가족들끼리 소리 지르고 싸우는 게 듣기 힘들다며 같이 보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였을 뿐이지 사실 다 가족들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라고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라고 내가 설명했을 때, 그럼 차분하게 다정하게 말해줘야지 왜 목소리를 크게 하냐고 중국인들 시끄럽다고 하면서 그거랑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했다. 띠용? 사실은 우리 집도 그렇다. 다들 목소리가 크다. 한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도 있고...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참 그렇다.


그리고 남편에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티셔츠나 간판에 적힌 영문인 것 같다. 사실 한국 드라마니까 복선이 있어도 한글로 있는데... 영어는 별 뜻 없이 쓰였을 수도 있는데 되게 의미 부여함. 그리고 인물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어떤 사건을 그렇게 받아들이는지 이런 섬세한 감성의 연결이 남편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나 보다. 전체의 스토리에 집중하기보다 왜 그러는지 계속 물어봄 ㅠㅠ 정서의 차이야 한국에서는 그래ㅠㅠㅠㅠ 사실 나도 모르겠다ㅠㅠ


그. 런. 데... 정말 충격적 이게도 그 나머지 2도 이제는 나에게 이해가 되고 있다!!! ㅠㅠ 나는 한국 정서나 역사에 대해 잘 알면서도 아 외부에서 볼 때는 다르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상황들이 눈에 너무 잘 띈다. 




어제 처음 시청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5년 전 웹툰으로 연재했을 때 열 번도 넘게 봤을 정도로 내가 정말 정말 좋아했던 유미. 그런데 올해 나온 드라마로 보니 나에게도 특이점이 보인다... 


남편은 세포들이 왜 폭력을 쓰냐고 이해하지 못했다. ㅠㅠ 뭔가를 바로 해야 할 때 반대 의견이 있는 세포를 후라이팬으로 때려서 기절시키거나 발차기 주먹 등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폭력적이긴 하지만... 세포니까 만화니까 나름 귀엽게 표현한 건데. 물론 현실에서는 의견이 다를 때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내가 요새 고민했던 대화법과 관련하여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일련의 사고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가 인터넷 검색으로 읽었던 일본인 특유의 화법이나 이지메 문화 등이 사실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도 깔려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웹툰에서는 전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도 많이 변했고 사회도 바뀌었을 테지만 말이다...


물론 이 드라마 여주인공이 유미니까 시청자들도 사실 유미 편이다. 나는 2화까지 밖에 안 봤지만 그 안에서 유미와 우기 러브라인을 응원하는 스토리였다. 그런데...ㅠㅠ 루비랑 우기랑 둘이서 꽃 축제 가려고 애초에 계획 세웠던 거였는데, 루비를 제외시키려고 농담에 진심 섞어서 떡밥 던지는 거하며 ㅠㅠ 하고 싶은 말 빙빙 돌려가며 사람 떠보고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오면 농담이라고 커버 치고... 그게 정도의 차이가 물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이지메 아닌가? 나는 농담한 건데 너는 왜 발끈해? 너 참 이상한 사람이다~ 하면서 사람 한 명 보내버리는... 원래 계획 자체가 루비가 세운 계획인 건데, 계획을 세운 사람을 보내버리는...? 그렇게 보면 유미가 루비 계획을 뺏어간 거 아닌가; 그리고 우기는 거기에 동조한 방관자... 


게다가 공원에서 루비를 보고도 전화까지 안 받고 이름 부르며 쫓아오는 사람을 못 본 척 무시하면서 전력질주로 도망가다니!!! 이 내용이 웹툰에도 있었나? 옛날에는 전혀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연락도 못하게 폰까지 꺼놓고... 그냥 둘이서만 만날 거라고 말 한마디 해주지... 아니면 그냥 연락 못한다고 말 한마디 만이라도 해주지... 꼭 그렇게 사람을 무시해야 했나.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2화까지만 볼 때 루비가 딱히 잘못한 건 없어 보였는데, 드라마 연출 상 루비가 악역이 된 것 같다. 사실 루비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우기를 좋아해서 우기에게 관심을 표시한 것뿐이지 않는가? 일산에 가는 길에 차를 태워준 것도 우기고, 약속이 펑크 났을 때 늦게까지 술자리 할 수도 있는 거고, 자기가 계획 세운 꽃 축제에 가고 싶은 것도 이해되는 거 아닌가ㅠㅠ? 유미랑 우기가 공식 커플도 아닌데... 물론 유미 입장에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루비가 밉상 캐릭터로 잡혀서 안타깝다. 루비는 유미가 우기를 좋아하는지 알고 한 것도 아니고... 유미는 자기 마음 꼭꼭 숨기고 표현도 안 했는데, 루비는 우기 좋아하는 거 티 내고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우기에게 어필하는 건데 그게 왜 여적여의 갈등구조로 가는지ㅠㅠ 그냥 허심탄회하게 유미도 루비도 그냥 대화를 할 수는 없었을까? 그나마 루비가 씩씩하게 할 말 하는 캐릭터지만 자기가 그렇게 왕따 당한다는 걸 느끼지 않을까? 루비는 그 이유도 모를 듯. 아무 이유 없이 자기가 계획한 약속 장소에 갔는데, 회사 선배이자 친한 언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게 도망가면 세상 버림받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왜 저러지? 이유라도 알려주던가.




그러고 보니 응큼이든 본심이든 나쁘다고 패 버리고... 본심이는 땅속에 가둬놓고, 꼭 분노 세포가 화를 내야만 본심을 말할 수 있나? ㅠㅠ 그냥 언제든 솔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표현할 수는 없을까? 굳이 굳이 진심을 숨기고 상황을 유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만 할까? 거절당할까 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눈치 보여서 등등... 물론 이유는 있지만 말이다ㅠㅠ 


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관계 조차 너무 많은 계산이 들어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직접적인 표현도 잘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면서 서로 좋아해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유미와 우기의 상황처럼 유미가 나이 차이나 외부 시선 등으로 고민을 하면서 우기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적도 없는데, 우기가 유미에게 고백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지나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그만큼 좋아하는 마음이 컸다는 뜻이겠지...


사실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계속 어느 특정 상황을 만들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로 만드는 것... 그거 자체가 조종 통제의 하나 아닐까? 가스 라이팅이든 manipulation이든 컨트롤이든 전부 그 일환이 아닐까? 예를 들어 고전적인 방법으로 섬에 놀러 가 배가 끊겼다거나, 술에 취한 척해서 쉬었다 가야 하게 만든다거나... 물론 양쪽이 원한다면 바라는 결과를 얻겠지만 한쪽은 아니었다면? 범죄 아닌가?


오늘 호주의 한 주에서 관계 전 확실한 동의 affirmative consent를 주고받으라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캐나다나 덴마크 등 국가에서도 법으로 제정하고 어플까지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다섯 개 주에서는 확실한 동의 affirmative consent 규정을 대학교 학칙에 포함해야 하는 법이 있다고 한다.


어제 이 드라마를 보고 오늘 아침 처음 읽은 뉴스 기사가 affirmative consent 라니 아이러니하다. 사실 확실하게 명백하게 동의하는 방법이 없으면,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에 처할 위험이 더 크니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뀐다면 그것을 철회할 권리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지 더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얼든 많든 그냥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서로에게 눈치 안 주고, 우리 좀 솔직해지면 안 될까...? 결혼도 하고 싶을 때 하고 이혼도 하고 싶으면 하고 동거도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자기 인생 자기가 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좋다. 동네 사람들 눈치 안보며 돌진하는 용식이가 나의 최애 캐릭터. 동백이를 서점에서 만나서 첫눈에 반했고, 기대했던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있어도 동거 경험이 있어도, 그리고 아이의 아빠를 만나서도 정중하고 예의 있게 행동했던 용식이. 솔직하고 착한 사람. 그리고 동백이가 뭘 하든 존중해줬던 사람.


그런 용식이도 사실 동백이니까 잘 어울리고 사귈 수 있었던 거지, 제시카랑 만났다면 향미랑 만났다면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다들 임자가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다르고, 만나서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 있으니까. 종렬이랑 동백이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제시카랑 종렬이가 다시 재결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서로의 단점도 약점도 품어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가 참 좋아 보였다. 사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커플 홍자영 노규태 커플. 둘의 갈등이 끝까지 가서 이혼까지 했지만, 그 뒤에 노규태가 "미안해 당신 엄마 만들어서 당신도 여자 하고 싶었을 텐데 맨날 엄마 노릇하게 해서 미안해 근데, 당신이 나 혼내는 마음도 사랑이었듯이 내가 당신한테 죽어라 개기는 마음도 사랑이었어 당신 앞에서 나도 좀 남자 하고 싶어서 그래서 더 못나졌던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 자영아..." 라고 진심을 고백하는 상황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ㅠㅠ 진작에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ㅠㅠ




요새 사회가 많이 변해서 옛날 미드도 political correctness에서 자유롭지 못한다고 한다. 10년 20년 전에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문제는 문제라고 말할 사람들이 많다는 점.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 프렌즈 how I met your mother 섹스 엔 더 시티 모던 패밀리 빅뱅이론 모던 러브 등등 내가 재밌게 봤던 미드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니 참 다르다.


특히 섹스 엔 더 시티에 캐리. 신여성, 패션과 유행의 중심에 있던 캐릭터.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내가 캐리 친구라면 캐리의 연애사든 유부남과의 불륜이든 약혼을 해도 바람을 피운 전력은 전부 응원하기는 힘들 것 같고, 출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의 일과에는 관심이 없이 자신의 연애 이야기가 제일 중요하고, 사실 친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차라리 자신이 원하는 결혼생활이 분명했던 샬롯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더 행복해 보인다. 미란다는 너무 헌신적인 삶을 사는 것 같고 ㅠㅠ 


아무튼 인생이 흑백논리로 구분되는 건 아니니까. 한 사람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있고 그 모든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지만 편견도 최소화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드라마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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