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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28. 2021

연휴의 롤러코스터

감사를 전하는 날의 다음 날

하와이에서 세 번째로 맞는 땡스기빙 데이. 한국에서는 겨울로 다가가는 어느 날들의 하루였는데 이제는 미국 명절 연휴 근처라 쉬는 날이 생기니 남들은 모르고 지나가지만 나에게는 더 존재감 뿜뿜 ㅋㅋㅋ 그렇게 백만 년 만에 며칠 연속으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느낀 점 정리.



사실 목요일에는 조금 다운되어 있었다. 수요일은 내 생일이었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상을 보냈다. 심지어 생일이라고 남편이 며칠 전부터 꽃다발도 사 오고 당일에는 (내가 주문한 대로) 회사 퇴근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려줬다. 퇴근하자마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갑게 뛰어가서 만나고, 저녁은 한식당에서 내가 원했던 삼겹살+곱창 메뉴로 배 터지게 먹고 집에 왔다! 남편은 또 레이를 사서 나에게 걸어주고 시댁에서도 생일 축하한다고 카드와 영상통화를, 우리 가족들도 생일선물과 축하 메시지를 잔뜩 보내주었다!



그 하루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일상이었다는 걸 안다. 내가 사랑받고 있고, 나를 생각해서 연락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모두 경험했던 날이었으니까. 그렇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나는 왜 또 다운되었었을까? 만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더 큰 행운이나 더 큰 재미를 쫓느라? 지금 나의 일상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상황이라서? 아무튼 이런 기분은 친구를 만나서 다시 상승세를 뛰었다.


언니 덕분에 하와이에 상륙한 치킨 히어로 비비큐치킨도 먹어보고! 차로 조금만 가면 아름다운 바닷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기분전환이 되었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당연해서, 너무 익숙해서 사실 이런 풍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나 보다. 땡스기빙에 맞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래 사람들이 힐링하러 제주도로 많이들 간다는데. 제주도보다는 작지만 이 섬에서도 아름다운 곳,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다와 산과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지상낙원이라고도 불리지 않는가. 나는 왜 지상낙원에서 헬이라는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모두가 나를 부럽다고 할 때 나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좋은 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한 내 심정을 알려야 하나. 나도 힘든 점도 있고 어려운 일도 많은데... 그래도 부러워요 그래도 좋겠어요 하면...? 난 안 좋은데... 자꾸 좋으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충분히 좋아하는지 않는지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게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니고 딱히 좋지도 않은 건데, 내가 가진 게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거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억지로 좋아할 의무도 없지 않은가.


내가 별로라고 생각해서 별로인 건가? 지금 싫은 게 아니면 다 좋은 건가? 지금 내가 상황이 좋으면 나는 조금의 불만도 허용되지 않는 건가?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그 시간을 넘기기 위해 어떤 피나는 노력을 했던지는 상관없이 그냥 결과가 좋아 보이면 행복해야 하는 건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상관없이 그냥 남의 눈에 잘 살아 보이면 충분한 건가? 부럽다 좋겠다 하는 소리는 듣고 있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공감? 위로?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냥 이렇게 한 마디만 해주면 안 될까? 그래도 부러워~ 그래도 좋겠다~ 그래도 넌 잘할 거야~ 그래도 잘 될 거야~ 그래도 한국보다는 낫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래도 너는, 그래도 외국은, 그래도 외국인은, 그래도... 왜 우리는 칭찬마저 위로마저 비교로 할까...ㅜㅜ 제대로 칭찬하는 법이나 위로하는 말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럴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도 분명히 좋은 점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 하는 그런 좋은 의도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얘기도 못하게 되고,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계속 답답하다. 나도 힘든데, 나도 어려운데, 나도 피눈물 나는데, 나도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인생을 계속 계속 샛길로 세서 인정을 못 받는 건가? 내가 정답이 아닌 일만 해서 공감을 못 얻는 건가? 근데 그건 내 선택은 아니었는데... 나는 그냥 평범한 게 좋은데... 모두가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다들 같은 이유로 힘든데 나의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나는 힘들 수 조차 없을까? 사실 한국보다 나은 점도 있지만 못한 점도 수두룩한데 말이다...



또 평범한 금요일이 왔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내일도 오늘이랑 똑같을 것 같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쉬었다가 잠들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일매일 똑같을 것 같다.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이 이런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면 어떡하지? 나는 왜 불안해할까? 아무 일 없는 평온한 일상이 왜 버거울까? 내가 과거의 상처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힘든 것 같다.


나는 왜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과거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를 만든 것인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을까? 같은 공간 같은 사람 같은 환경 같은 일상에서는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차라리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나을까? 생각해보니 그런 부정적인 과거에 계속해서 신경 쓰는 내가 문제인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나는 왜... 근데 또 내가 이전처럼 심하게 영향받거나 하진 않는데 그 일 자체가 아직도 불편한 것 같다. 내가 하와이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새로운 곳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는 이유이다.


금요일 저녁 평소와 같이 집에 와서 저녁 먹으려고 하는데 당일 저녁 모임에 급 초대를 받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간은 언제나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희망 약간의 설렘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부르면 나가는 나는 그곳에서도 엄청 신나게 놀았다. ㅋㅋㅋ



이민자들을 설명하는 클리셰 같은 표현이 있다. 그분들은 이민 올 당시의 한국을 기억하며 한국이 얼마나 발전하고 변화했는지 모르실 뿐만 아니라 생각을 바꿀 의지도 없다고. 50, 60년 대에 이민오신 이민 1세대 분들은 한국을 떠날 때 전쟁 직후 황폐했던 한국의 모습이 평생의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80, 90년 대에 이민오신 분들은 독재정치나 IMF 경제위기 만의 한국밖에 모르실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인의 정을 기억하며 그리워하시거나, 그 당시에 당연했던 사고방식과 평생을 그렇게 해오신 습관들이 굳어지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처음 해외 거주하게 된 년도는 2004년. 그 후로 한국과 해외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왜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도 양쪽 다 적응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건가? 나는 왜 한국에서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했으면서 왜 이렇게 한국을 그리워할까? 한참 고민했었다. 그.런.데... 내가 딱 그런 상태였던 것을 이 날 깨달았다!!! 나는 2000년 대 초반의 한국을 그리워하며 계속 그런 세기말 + 밀레니얼 감성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 패션, 시트콤, 그리고 농담까지. 아니 대체 왜 20년이나 지난 지금?!?! 내가 가장 왈가닥이고 제멋대로고 그래서 나름 행복했던 그때의 한국에 빠져서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는 중인 건가? 나는 벌써 OB 가 되어가는 건가? 내가 늙은이라니...! 고인물이라니! ㅠㅠ


사실 한국에 가서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나는 겉도는 느낌을 계속 지울 수 없었다. 전학을 여러 번 했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들은 이미 같은 동네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친구들이다. 동네에 가게가 바뀌고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인생의 큰 변화를 모두 겪은 친구들. 그에 반해 내가 아는 그 동네와 친구들은 2000년에 멈춰있었다. 내가 아는 다른 동네와 친구들은 2003년에 멈춰있었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수년의 공백에 내가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 공간들은 그대로였는데... 내가 잘못 느꼈던 것이다!


나의 기억에는 그 친구들과 내가 함께한 그 옛날 밖에 없었다. 물론 서로 소식을 전하고 안부인사를 하지만, 심지어 단톡방에서 매일 대화했던 친구들도 오랫동안 못 보니 실물로 만났을 때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내 기억 속의 그 사람과 실제 그 사람과 분명 다른데. 그리고 나는 분명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존중하는데. 왜 아련한 기억 속의 그 모습이 그리울까? 그 친구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느낌에 뭔가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나도 많이 변하고 나의 취향도 선호도도 생각도 감정도 많이 변했다. 분명히 나는 매일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체 왜 그랬을까?


수능,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노후준비에 부모님께 효도까지... 한국에서 인정받는 인생의 정석을 모두 훌륭하게 겪어내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 물론 최선을 대했을 것이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몇 살에는 뭐를 몇 살에는 뭐를 끊임없는 요구와 조건을 충족시키며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내가 친구들의 인생에 단계별로 함께 발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매번 지름길을 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우회해서 다른 길로 가서 그럴까? 그 당시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그 길을 나 혼자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 걸까? 왜 나는 가보지 못한 길을 계속 돌아보며 그리워할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제대로 못했던 이유, 내가 공감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 사실 그냥 간단했다. 우리가 자란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부모님 덕분에 굉장히 좋은 교육환경과 배경이 나에게 주어졌으며 그 상황에서 내가 상당히 많은 특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걸 쿨하게 인정하고 당당하면 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튀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평범한 게 제일 좋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면 나를 깎아내리며 겸손을 떨었다. 사실 나는 너와 같은데 단지 환경이 좋아서 그랬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잘한다는 칭찬에도 아, 제가 석사 복수학위로 입학해서요. (GRE 보고 정시 입학한 사람들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영문과 졸업해서요. (전공도 따로 있고 언어도 잘하는 사람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입학해서요. (수능 봐서 정시로 입학한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고등학교를 해외에서 외국인학교로 졸업해서요. (해외 연수 없이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영어 잘하는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변명이 줄줄이 땅콩으로 나왔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될 걸. 굳이 내가 평범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다른 길로 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비슷한 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데 나는 운이 좋아 쉽게 왔으니까... 나는 경쟁자가 아니며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입시경쟁 학과 경쟁 학점 경쟁 취업경쟁이 너무너무 심각하니까. 나의 부족함을 왜 드러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사실은 실력은 없는데 환경이 좋아서 운 좋게 뭐든 잘 됐다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를 낮췄었나 보다.


자기 홍보와 자신감이 능력인 사회와 겸손과 동화가 미덕인 사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에서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다. 한국에서 쭉 지냈으면 뭐가 옳은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나마 눈치가 생겼을 텐데, 나는 뭔가 불편한 마음에 계속 왔다 갔다 했으니 적응이 더 느리고 어려웠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그런 다양한 가치를 범위로 측정한 스케일이 있다면, 해외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또 한국 스타일의 극한으로 끌려오고, 적응을 못하고 다시 해외로 가서 극으로 살다가 귀국하면 또 반대로 끌려가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계속 깎이고 깎이고 깎이다 보니 나를 자학적으로까지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국에서 어디를 가든 네가 그러면 안돼 한국에서는 이래야 돼 이게 정상이야 네가 잘못됐어 여기서는 다 그래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이런 말을 듣게 되면서 주눅이 들었다. 왜라는 질문, 다른 방법, 다른 의견을 내지 말라고 배웠다. 까라면 까고 안되면 되게 해야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또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같아져야 하니까.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 어차피 달라 내가 아무리 같아지려 해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자꾸 해외로 도망갔다가 다시 한국이 그리워 돌아왔다가 도망갔다가 돌아왔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던 것 같다. 내가 도피로 삼았던 여러 기회를 원해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뭐든 쉽게 쉽게 하는 내가, 충분히 감사하지 않는 내가, 큰 노력을 들이지도 않는 내가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운이 좋았죠 하는 모습이 얼마나 얄미울까. 내가 그 집단에 끼기 위해 했던 노력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모난 돌로 만들었다. 그래 이제는 알겠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원하는 것들을 비교적 쉽게 이루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음을 다해했던 노력과 간절함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보다 더 간절하고 나보다 더 열심이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노력을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나의 노력은 그것대로 충분하다. 내가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환경에 있다. 그리고 나도 충분히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힘들 수도 있다. 나의 모든 감정은 실재하며 타당하다. 다만 나의 상황과 그에 따른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위로해 줄 줄 아는 사람과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에게 힘들다고 고백하면 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꼴불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들의 상황을 잘 모르므로 속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 나는 깜짝 생일상을 받았다 ㅠㅠ 미역국이라니!! 케이크라니!!! ㅠㅠ 너무너무 감덩... 해외에서 어렵게 찾은 소중한 사람들과 연휴 3을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의 서른둘을 이렇게 시작하게 되어 정말 감사한 날들이다. 이 마음 잊지 않기 위해 일기로 남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에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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