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노잼 시기가 왔다.
슬럼프인가. 슬럼프라 하기엔 한 게 너무 없다.
번아웃인가. 번아웃이라 하기엔 일이 너무 없다. 일이 하도 없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맨날 지겹고 맨날 심심하고 맨날 딴생각이 솔솔.
희대의 노잼 시기가 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그런 시기.
여행을 가도 좋은 소식을 들어도 돈을 써도 집안을 정리해도 약속을 잡아 나가 놀아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아무 감흥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뭐하나 다들 재밌게 사나.
연말이 이렇게 지나간다.
내년이면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질까? 어쩌면 지금이랑 똑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극한의 공포다.
내년이면 새로운 도시로 이사 갈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면 내 마음도 달라질까?
우리는 대체 언제쯤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제발, 이번 여름에는 제발!!! 이곳만 아니면 어디든 좋겠다. 안 좋은 기억 힘든 순간들이 너무 많은 곳.
사실 다 괜찮긴 한데... 내가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건가?
내 선택이 아닌 곳에 와서 더 힘든 것 같다. 다시는 올 일 없을 거라고 후련하게 떠났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런가. 그래도 덕분에 취업도 했는데...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내 선택이 아닌 도시. 내 선택이 아니었던 사건들. 내 선택이 아닌 집. 내 선택이 아닌 기간들. 전부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 내가 양보해야 하는 일이라서, 내가 희생했다고 생각돼서 이렇게 못 견디는 걸까?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한 게 있었나?
그럼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나? 한국 가면 뭐하고 살지? 여기서 정년 보장되는 일을 하면서 그냥저냥 지금처럼 사는 게 나을까? 적어도 직장 잘릴 걱정은 없으니 여기서 진급하고 승진하면서 살면 꽤 괜찮은 삶일까?
내가 메인랜드로 간다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인종차별 없고 자연재해 없고 사건 범죄 없고 그런 곳은 없겠지? 새로운 곳으로 가면 더 넓고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거기서도 월세 신세겠지만. 여기만큼 좋은 직장도 찾을 수 있을까? 어차피 월급쟁이 겠지만.
어쩌면 나는 그냥 혼자 사는 게 맞는 그런 사람인 걸까? 나는 여기저기 새로운 곳들을 여행하는 것도 놀러 가는 것도 떠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 몇 년 동안 섬에 갇혀사니 답답해하는 걸까? 한 2~3년에 한번씩 이사다니면서 유랑자처럼 살면 좋겠다.
요즘은 코로나라 여행도 힘들고... 겨우겨우 여행 계획 세웠더니 사내규정이 바뀌었다ㅠ 물론 휴가 써도 되지만 안 그래도 자주 쉬는데 ㅠㅠ 상관없으려나.
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지금은.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잘 하는 건 흥미가 떨어지고 잘 하고 싶은 건 의욕만 앞선다. 그냥 잘 하는 거 하면서 평탄하게 살면 살아질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차를 살까? 계획대로라면 반년 남았는데 이 계획이 지켜지기나 할까?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내가 피 마르게 살고 있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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