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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an 23. 2022

추억도 미련도 안녕,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물건들에게 마음으로 작별 인사하는 방법

제가 올 초 짐 정리를 하면서 가장 큰 일을 했어요. 바로 추억이 가득 담긴 편지와 상장 성적표 추억의 물건들을 비워냈습니다! 뭔가 내 과거와 그 시기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에 제가 이민 오면서도 고이고이 싸가지고 왔던 물건들인데요. 사실 몇 년 동안 잘 꺼내보지도 않고, 어차피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저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큰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거의 모든 서류와 편지, 옛날에 현상한 사진들을 미련 가득한 고화질로 스캔해놓고 핸드폰으로 계속 꺼내봤어요. 사연 많은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물건 자체는 보류함에 넣어 안 보이게 보관하면서 사진을 계속 꺼내보고 물건도 가끔 꺼내보고 하다가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때쯤에 실제 물건을 비웠어요. 


그러고 나서 발견한 사실은 결국 내가 지금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핸드폰과 노트북이고, 편지들도 디지털화하니 오히려 더 자주 꺼내보고 읽어보고 추억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실물은 없는데도 마음으로 더 깊게 소중하게 즐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 후에 다른 시각으로 물건들을 보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되는 그런 물건들이 꽤 있었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너무 비우는 결과에만 몰입하면 물건을 보내줄 때 작별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 오히려 더 미련이 남아서 착잡했거든요 오히려 질리도록 쓰고 만지고 보고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물건인지 아닌지가 확실해질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이 물건들에 왜 미련이 남는지 다른 물건들과 무엇이 다른지, 어느 추억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 과거의 일이 얼마나 나에게 큰 의미였는지, 만약 이 물건이 없다면 잊힐 추억인지, 그렇다면 그게 정말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 등등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는 과정을 겪어가면 조금씩 초월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아직은 애착이 남아있는 물건이 있는데요. 바로 이 인형입니다. 이 인형은 사실 우리 사촌언니가 어렸을 때 학급 중고장터처럼 물건 교환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받았던 인형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 인형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너무너무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눈치를 챘는지 언니가 저에게 인형을 양보해주는 거예요! 


저는 그 인형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할지 알 것도 같아서 차마 빌려달라는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그 인형을 저에게 주는 순간 그 벅차오르는 감동이란 ㅠㅠ 언니가 너무너무 멋있어 보이고 언니는 나와 몇 달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벌써 성인군자 인가 정말 대인배라는 게 이런 사람일까 어떻게 마음이 이렇게 넓지 하면서 어린 마음에 언니를 거의 존경하게 되었던 ㅜㅜ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제가 애지중지 데리고 다녔던 인형이에요. 이제는 낡아져서 빨래하기도 위험해진 상태라 고이고이 간직만 하고 있어요.



저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도 함께 정리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정리하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 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소중히 여겨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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