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1895년, 127년 전 오늘 하와이에서는

by 홍이
사진 출처 : Hawaii State Archive 내용 출처 : Iolani Palace


1895년 1월 24일,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여왕은 공식적으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가택연금 중 군주로서의 권력을 박탈하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여왕의 폐위는 절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여왕은 본인만을 생각한다면 그 서류에 서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지만, 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하와이 왕국과 군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체포된 모든 사람들이 즉시 석방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녀가 어떻게 서명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Liliuokalani Dominis' (미국인 남편의 성) 라는 서명을 하라고 하와이 공화국 정부 관계자에게 명령받았다고 한다.


여왕의 서명은 언제나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였고, 공주와 여왕의 지위에 있었다. 여왕의 모든 서신이나 서류에는 항상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로 서명되었다. Liliuokalani Dominis 라는 사람은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이후 이 서류와 관련하여 여왕의 법적 이름으로 서명되지 않은 문서가 합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다며 서류의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1896년 10월,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여왕을 포함하여 하와이 왕국과 여왕을 지지한 죄로 체포되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은 사람들이 석방되거나 사면되었다.




그 해 우리는...


사진, 내용 출처 : 다음 검색


1895년 고종 32년. 을미의병.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에 분격한 유생들이 친일내각 타도와 일본 세력 축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최초의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뒤이어 왕후 폐위 조칙이 발표되자, 보수 유생들은 ‘토역소’ 등을 바쳐 친일정부의 폐위 조처에 반대함은 물론, 일본군을 토벌, 구축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을 주장하였다.


1895년 8월 22일 서울 창의소에는 고시문이 나붙기 시작하고, 10월 중순을 전후로 충청남도 회덕·유성·진잠 등지에서는 문석봉 등이 토적(討賊)의 뜻을 선포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친일정권이 공포, 시행한 단발령은 유생들과 일반 백성의 반일·반정부 기운을 더욱 고조시켰다.


1896년 1월 중순 경기·충청·강원도 등 각 지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난 의병항쟁은, 2월 상순에는 경상도 북부와 강원도 북부, 그리고 함경도 북부까지 확대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을미의병은 대개 그 지방의 유명한 유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갑오경장의 새로운 법령을 시행하는 관찰사·군수 혹은 경무관·순검 등을 친일파로 지목하여 처단하거나 문책하고, 또 그들을 진압하려는 관군 및 일본군과 항전하였다. 아울러 전선·철도 등 일본군의 군용 시설을 파괴하거나 일본군 주둔지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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