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1월 20일, 칼라카우아 Kalakaua 왕이 하와이를 떠나 The City of Sydney 라는 이름의 증기선을 타고 약 11개월 동안의 세계 각지를 방문하기 위하여 떠났다.
왕이 떠나기 전, 그는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공주를 섭정으로 임명했다.
1881년 1월 26일,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섭정 공주는 리케리케 Likelike 공주와 함께 알리이올라니 홀 Aliiolani Hall (현 대법원 건물) 에서 첫 연회를 열었다.
섭정 공주는 외교 및 영사 군단과 대중을 환영하였고, 각 국가의 대표가 입장하거나 퇴장할 때 로열 하와이안 밴드는 그들의 국가를 연주해주었다.
1881년 고종 18년. 새로운 문물제도를 견학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할 조사 시찰단 (신사유람단) 을 임명하다. 신사유람단은 1881년 4월 10일부터 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집정과 쇄국정책을 끝내고 고종이 직접 통치를 하게 되면서, 개화로 정책방향을 바꾸었다.
1876년 김기수를 제1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하였고, 김홍집을 제2차 수신사로 파견하였다. 이때 그들이 가져온 일본의 문헌은 조야에 큰 관심을 일으켰으며 1880-1881년에 이르는 초기 개화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이에 정부는 선진문물의 수입 대상을 종전의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바꾸고, 정부에서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으로 신사 유람단을 조직하여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약 4개월 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근대 시설과 여러 가지 제도 및 산업 시설까지 두루 살피고 돌아와 보고들은 것을 소개하였다.
#하와이 #하와이역사 #하와이민족 #하와이원주민 #하와이왕국 #하와이군주제 #하와이언어 #하와이문화 #한국역사 #조선역사 #그해우리는 #n년전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