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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19. 2022

3 감정 쓰레기통의 필요성

나를 받아들이기

우울증은 남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 필요한 게 있는지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는지 안부를 묻는 것뿐. 그리고 남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우울증인지 아닌지 치료가 필요한지 아닌지 뭘 하면 도움이 될지 아닐지는 남이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이 아주 작은 신호를 감지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사람의 결정이다. 어느 선택을 하던 그 사람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시간이 가면 이것 또한 지나간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원래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자신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쩔 때는 정말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위로로 다가오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지금 힘든데 이게 언제 지나간다는 건지 지금 내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나아진다는 건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데 뭘 원래 알아서 잘한다는 건지.


그래, 그 위로에도 상당한 위안을 받고 주위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써준 시간과 관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응원받고 힘을 얻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정말 대단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되었을 뿐이다.


마음이 너무 아플 때는, 그때는 내 시간이 멈춰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냥 그럴 때가 있다...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것 같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암흑 속으로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마음의 정도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상심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그래도 괜찮은 거라는 말이 듣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수렁에 빠진 마음을 햇빛에 잘 쬐어 잘 말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나를 부럽다고 할 때 나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좋은 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한 내 심정을 알려야 하나. 나도 힘든 점도 있고 어려운 일도 많은데... 그래도 부러워요 그래도 좋겠어요 하면...? 난 안 좋은데... 자꾸 좋으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충분히 좋아하는지 않는지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게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니고 딱히 좋지도 않은 건데, 내가 가진 게 다른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거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억지로 좋아할 의무도 없지 않은가.


내가 별로라고 생각해서 별로인 건가? 지금 싫은 게 아니면 다 좋은 건가? 지금 내가 상황이 좋으면 나는 조금의 불만도 허용되지 않는 건가?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그 시간을 넘기기 위해 어떤 피나는 노력을 했던지는 상관없이 그냥 결과가 좋아 보이면 행복해야 하는 건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상관없이 그냥 남의 눈에 잘 살아 보이면 충분한 건가? 부럽다 좋겠다 하는 소리는 듣고 있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공감? 위로?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얘기도 못하게 되고,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계속 답답하다. 나도 힘든데, 나도 어려운데, 나도 피눈물 나는데, 나도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인생을 계속 계속 샛길로 세서 인정을 못 받는 건가? 내가 정답이 아닌 일만 해서 공감을 못 얻는 건가? 근데 그건 내 선택은 아니었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다들 같은 이유로 힘든데 나의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나는 힘들 수 조차 없을까? 







내가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해결책도 없이 우울한 말만 하는 것 같아 친구에게도 미안해졌다.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매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줘서 정말 고마웠지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게 나 스스로에게도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런 나쁜 생각이나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내가 한 번 더 그 얘기를 꺼내면 싸대기를 날리라고. 해놓고 이제 말할 사람이 없어지니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썼다.


내 감정이 쉣인데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도 당연히 슈뤠기일 듯. 이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느끼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어쩌겠는가. 아무리 감정을 회피하고 무시하려고 해도 억눌린 감정은 언젠간 터진다.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어떻게 해소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고 배출해야 내 속이 맑아진다. 


그 대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타인에게 쓰레기를 전가하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 의무를 지게 하면 안 된다. 내 마음 내 진심 내 생각 내 경험. 다양한 방법으로 글로 말로 노래로 춤으로 그림으로 예술적으로 뭔가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글을 쏟아내었던 나의 블로그.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공간,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공간,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공간이다. 내가 어렸을 때 원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 내가 나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볼 때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준 내가 주인공인 공간.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나는 참 열심히 살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나를 기억하고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나는 나대로. 남편의 아내가 아닌 그냥 개인의 나로.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다면 이 세상 전부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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