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하기
객관화는 참 어렵다. 피해자가 되는 것은 쉽다. 난 잘못 없고 남 탓을 하면 되니까. 나의 행동에 나의 선택에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까. 따돌림이나 괴롭힘 한 번 안 당한 사람 없고, 가정의 불화나 사회적 부조리 한 번 안 겪은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가 전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고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치유하는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너무 과거에만 파묻혀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누구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속속들이 분석해 봤자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도 현재는 바뀌는 것이 없었고, 나는 여전히 상처받은 그대로의 나였다.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은 사과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또다시 상처받게 되었다.
상처받은 건 나지만 상대도 상처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고 했는데 뭘 더 바래? 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자신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의도한 바는 선의였으니 자신을 가해자라고 생각 못할 수도 있고.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다 맞는 말이다. 사실 상대도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이겨내야 할 일이다. 회피하던 해결하던 치유하던 성숙해지던 내가 할 일이지 남이 고작 사과 한 마디 한다고 아물 상처가 아니었다. 그래, 나는 운이 좋아서 그 사람과 대화도 했고, 글로 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어쩌면 어느 누구는 말뿐인 사과라도 간절히 원할 수도 있고 곪아 터진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땐 상황이 너무 악화되서 눈 앞이 깜깜할 때도 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하거나 심장이 터질 것 처럼 뛰어 진정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부정적인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면서 그 부정적인 감정이 빠져들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바로 영화를 본다던지, 음악을 듣는다던지, 샤워를 한다던지, 얼음 물을 마신다던지, 향수를 뿌린다던지, 집 밖으로 산책을 간다던지...
탁상공론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한번 실천에 옮겨보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 공황이 올 것 같은 전조증상이 느껴지는 순간 물을 마시거나, 울다가 기절할 것 같은 순간 약을 먹거나, 자해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 달리기를 한다거나. 그 순간을 버텨야 한다. 그리고 그 버티는 힘으로 나를 벼랑 끝에서 올려낼 수 있다.
그럴 땐 사태 파악이 절실하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의 상황을 바라보면 가장 좋은 점은 지금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내가 부정적인 면만 보고 불평불만을 하는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더 건설적인 사고, 더 합리적인 계획, 더 효율적인 방법 등등을 찾아내서 내가 불만인 상황을 고칠 수도 있고 나의 불평을 해결해서 환경을 바꿀 수도 있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바로 실천하기.
불평불만하며 그 상황에 안주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싫은 것만 생각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이나 하면 안 되는 것에 집중하면 내 행동반경이 그만큼 좁아진다. 안된다 못한다 하면 정말 못하게 된다. 그냥 내 인생 자체가 너무 불행해진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나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나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다면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 열린다.
결혼 수업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영어 표현 중에 keep your side of the street clean 이라는 숙어가 있다. 나의 인생에서 내 소관인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것. 나의 가치와 기준에 맞춰서 나 스스로부터 행동하는 것.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는 것. 내가 서있는 땅 위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고, 내가 버린 쓰레기들을 치우며, 내가 가는 길을 깨끗하게 닦아놓기.
내가 좋은 사람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걸어가고 싶으면 내가 좋은 곳으로 시야를 보고 좋은 곳으로 내 발을 옮겨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 같이 가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길에 누군가가 와서 쉬어가고 싶을 정도로 꽃과 나무도 심고 벤치도 놓고 불빛도 달아서 어두운 밤거리에 빛이 되어줄 정도로 예쁘게 관리해놓고 싶다. 그렇게 나를 가꾸면 저절로 함께 가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나의 길을, 나의 영역을 지키고 내 갈 길에 집중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다른 사람의 영역에 무엇이 있던 비교할 필요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 시궁창이라고 여기며 살면 아무도 내 시궁창에 와주고 싶어히지 않는다. 디즈니 공주들처럼 시궁창같이 느껴질 법한 인생에서도 노래라도 부르고 동물들 밥이라도 주며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남아야 한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가 나의 길을 나의 영역을 깨끗하게 따뜻하게 잘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약점이나 단점,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도 있으며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에 충분히 만족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