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r 21. 2022

남편의 여사친

받을 수 없는 이유 4

나는 남편과 그의 ‘특별한 친구’ 분과의 사건 이후로 친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분을 꺼려했다가 남편의 모든 이성친구들을 싫어했다가 갑자기 애먼 한국인들까지 죄다 미워졌다가 남편을 한에 서리게 혐오하고 증오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니 내 인생이 지옥이 되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죽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원하지도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도돌이표처럼 다시 시작 할랑 말랑 하는 이 시점에서. 아직까지 내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도 못한 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살릴까 하는 고민.


나는 그 뒤로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 남편과 좋은 동료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라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좋은 친구는 절대 그런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에도 그렇게까지 그들만의 세상에서 ‘특별한 친구’ 또는 ‘영원한 친구’ 사이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서 조차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그의 ‘친구’ 분께 나는 살해당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비슷한 동료가 생겼다. 예견된 일이었다. 내가 정말 정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도록 고민했던 일이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을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내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돌보고 나의 의견과 감정을 위해줄 수 있을지.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는 작년과는 비교도 안되게 감정적으로도 독립적이게 되었고, 나에 대해 더 잘 파악하게 되었으며, 더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렴풋이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친구도 없이 왕따처럼 지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남편에게 좋은 친구가 있어서 재밌게 놀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서로 조언을 주고받으며 도움이 되는 상황을 원한다. 다만 남편이 그 친구관계를 위해 나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불행한 결혼에 갇혀서 평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보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넘치는 부부가 되고 싶다. 다만 나는 정 많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서로를 친구로서라도 사랑한다는 대화를 은밀히 나누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내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남은 여생을 그를 의심하면서 보내고 싶지도 불안에 떨며 보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부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둘이서 함께하고 싶다.


나는 상황이 그렇게 까지 가는 경우 차라리 나에게 먼저 알려서 내가 어떻게 할지 선택권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 믿는다. 나를 믿는다. 결혼을 유지하던 이혼을 신청하던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는 어떻게 대처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회피하려고 하는가? 나는 회피하기를 원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난번처럼 남편의 뒤에 가려져서 소극적으로 남편에게 행동 똑바로 하라고 남편만을 잡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것이다. 그들이 순수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줄 것이다. 내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표현하여 남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만약 남편이 선을 넘는 행동을 또다시 한다면 그건 그의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의 선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이혼도 두렵지 않다. 어쩔 때는 함께 있는 것보다 따로 있는 게 더 나은 관계도 있는 거니까. 그때는 그런 결정을 하게 되겠지.


다만, 나는 그 새로운 친구분께 “우리 남편과 좋은 동료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라는 말을 내뱉을 용기는 죽어도 없다. 그 대신 “제가 좋은 친구가 되어드릴게요. 좋은 친구가 필요하시면 저에게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싶으실 때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라고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것 또한 그다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한 시간에 한 번 씩 이 문장을 곱씹으며 연습한다. 그녀와 만날 때까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하게 친구들과 만났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 지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랑 수다 떨고 웃고 떠드는 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내가 누군가를 뼛속까지 싫어하고 미워하고 견제하는 걸 못 참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외로웠다. 나는 군인이지만 공포탄조차 없는 빈 총을 들고나갔다.


그러니 남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을 멀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그냥 나만 손해였다. 나에게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가 박탈시키는 것과 같다. 나를 고립시키고 단절시키고 나는 더더욱 외로워질 뿐이다. 나는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고 믿고 싶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남편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선생님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내 주위에 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하다.


지금은 안다. 그렇게 좋은 사람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걸. 그냥 나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맞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그랬지만 과거에는 어땠던지 미래에는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들을 견제해봤자 아무 소용도 아무 의미도 없다. 왜냐, 선생님도 처음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고 잘 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그 뒤의 상황이 나에게 더 타격이 크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 작년과 다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

이전 13화 남편이 생각하는 자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