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4
단지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사람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현재의 상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장점과 단점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에게도 똑같은 존중을 줄 줄 아는 사람들. 진정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고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강점보다는 약점을 보고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사람, 충분히 좋은 상황임에도 더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착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
그리하여 우리 남편은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자신의 무능력함을 콕 콕 집어 드러내는 사람과 결혼했고, 나는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사람인데 성장과 발전이 너무나도 여유로운 사람과 결혼했던 것.
서로가 서로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다른 면에 괴로워하고 불행해졌다.
우리가 정말 천년의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 이렇게 상극이면서까지 옆에 붙어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하고,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이 자연스러운 그런 사이가 맞는 게 아닐까? 서로 눈치 보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받기보다는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있어도 충분한 그런 관계가 옳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보다, 힘을 빼고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마음에 안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더 좋지 않을까? 그게 운명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다른데 왜 굳이 굳이 결혼까지 했을까? 연애 때는 몰랐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때는 이런 차이점에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 같다. 남편은 매번 전전긍긍하며 작은 일에도 쉽게 휩쓸리는 나를 안정감 있게 붙잡아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그런 진취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카페에서 보기에도 달달한 한 커플을 보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대화하면서 상대의 모든 이야기에 웃어주고 다양한 표정으로 반응해주고 한마디라도 놓칠까 질문해주고 상대의 의견과 감정을 물어봐주고.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귀엽게 봐주면서 눈에서는 하트가 쏟아져 나오고... 보고 있는 사람마저 흐뭇하게 만드는 너무나도 예쁜 커플.
내 인생을 길게 본다면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지금의 남편이든 남자 친구이든 두 번째 남편이든 누구든지 간에 그 순간에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함께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감정적으로 논리적으로 성숙한 사람, 내 마음을 헤아려 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현 남편도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는 이미 그런 사람인데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가 과거에 한 행동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그까지 그럴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남편이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는데 내가 그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남편의 모습도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를 내가 조종 통제할 수는 없기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 이게 아휴 저 인간은 원래 저래 일생에 도움이 안돼 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원하고 그도 원하는 그의 모습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예 이루어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둔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절대 절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내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 적어도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내가 깔끔하고 우아하게 행동한다면 그만큼 목표치에 다가가는 것.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와 함께 가기 위해.
남편이 한 말 중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는 말이 자꾸 맴돈다. 그게 남편이 원하는 사랑.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기능과 효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가치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존재 자체로도 소중하게 여겨줄 줄 아는 사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가치가 사라져도, 내가 지닌 외적 효용성과 값어치가 사라진다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사랑해줄 그런 사람. 남편이 옛날에 나에게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천천히 깨닫는다.
누구나 다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