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22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하와이에서의 아침은 창밖의 새소리로 시작한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이 깨면 굉장히 평온하고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 같을까?ㅎㅎ
여기는 새들도 자기주장 강하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 중심가나 식당의 야외테이블, 공원뿐만 아니라 인도나 찻길에도 여유롭게 걸어 다닌다. 비둘기는 물론이고 야생 닭이나 이름 모를 귀요미 새들도 많다. 다만 예민하셔서 사진 찍기가 어려움 ㅜ
월요일, 한 주의 시작 새로운 하루. 새들의 노랫소리로 맞이한 아침이었다.
작년에는 우렁차게 울어주는 치돌이 (길 수탉, 이름 지어줌) 가 있어서 진짜 새벽마다 깼는데 ㅋㅋ 처음에는 도시에서 웬 닭이 우냐고 짜증도 났지만 나중에는 치돌이의 꼬끼오가 안 들리면 혹시 무슨 일 생겼나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한 반년 정도 우리 동네 터줏대감으로 있었는데 작년 겨울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안 보인다 ㅠ 적적한 나의 출근길과 퇴근길에 생존신고하러 찾아다니며 나름 내적 친분 쌓이고 반가웠는데 ㅜㅜ
치도르상~~~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 데스~~~ ㅠㅠ
아무튼 순백의 침대 시트에서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 켜고 일어나는 여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처럼, 우리 집에 오는 새들도 신데렐라에 나오는 드레스 만들어주고 출근 준비 도와주고 하는 그런 새들도 아니다. 새들이 왔다 가는 건 참 좋지만... 꺄 거의 똥 싸러 온다 이놈들! 너네 여기가 화장실인 줄 아는 거니?
예전에 좁쌀이랑 호두 같은 새 모이를 윗집에서 나눠줬었었다. 그래서 새들은 윗집 가서 밥 먹고 거의 우리 집 와서 똥 싸는 코스로 자주 왔었던 듯. ㅋㅋㅋ 그래도 새들이 떼로 몰려들어 짹짹거리는 거 보면 귀여웠는데 ㅎㅎ 어쩌랴, <동백꽃 필 무렵>의 명대사처럼 그럼 새들의 항문을 통제 혀? 새들은 청와대에서도 똥을 싼다는데 ㅋㅋㅋㅋㅋ
https://twitter.com/i/status/1239592951463870464
어제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와서 새똥을 닦았다. 매일 저 난간을 닦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날 잡아서 청소하려면 말라비트러진 새똥은 치우기가 참 힘들다. 햇볕이 굉장히 세서 바로 닦아버리지 않는 한 ㅠㅠ 그렇다고 새가 똥 싸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새를 내쫓기는 더 싫고.
주차할 때도 그늘이라고 나무 밑에 차를 대면 새똥 폭탄 맞는다고 한다. ㅠㅠ 세차하기도 힘든 지붕 위에 ㅠㅠ
그러다가 찾은 방법은 비 오는 날 난간 닦기! 비에 맞은 초크초크한 새똥은 그나마 잘 닦인다 ㅠㅠ 난간은 그렇게라도 좀 닦겠는데 바닥에 있는 건 닦을 수도 없음 ㅠㅠ 그래 청와대에서도 싼다는데 뭐...
어제는 기분이 착잡했던 날. 날씨의 영향, 사람의 영향,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단 그래서 회사는 휴가 냈고요... 당연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서 계속 쉬고 드라마 보고 다시 마음을 챙겼다.
우리 남편은 자기 전,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 볼 수 있도록 매일 쪽지를 남겨준다. 저거 보고 집에서 놀려니 죄책감 찔끔 하긴 했다 ㅠ 여기에도 엄청난 막장 중의 막장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벌써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적어주는 쪽지. 어쩔 땐 너무나도 한결같아서 대단한 사람. ㅜㅜ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너의 진심을 알겠다고 해도 여전히 아침에 쪽지를 남겨준다. 이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해주니까 가끔은 쪽지를 찾다가 없으면 서운한 마음보다는 에구 어제는 일하느라 피곤했나 보다 깜빡했네 하는 마음이 든다.
뭔가 마음을 보여줄 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게 자신이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 이랬으니 그 방법을 존중해줘야지.
처음에 내가 느끼기에 남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말로만 때우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도 없고 데이트도 안 하고 외출이며 외식조차 안 하고 당연해진 듯 애정표현도 없는 그런 결혼생활에서 나는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고, 밖에서는 호인인 척하는 남편이 가증스러웠다.
그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건이 있었고 거의 제3차 세계대전 급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남편은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물어봤고 나는 애정표현을 남이 아닌 나에게 하라고 나한테 호인인 척이라도 하라고 울부짖었다.
그 뒤로 꾸준히 과일도 깎아주고 쪽지도 남겨주는 남편. 학교 다닐 때는 결석 한 번 안 했을 것 같은, 회사 다닐 때는 정말 기계처럼 다녔을 것 같은 사람. 땡땡이치기 좋아하고 꾀부리며 딴짓하고 놀기 좋아하는 나랑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
그렇지만 그 다름을 존중해주는 사람. 너의 선택을 존중해. 네가 결정할 일이야. 너의 인생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의 선택이니 결과도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내가 내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게 지켜봐 주는 사람.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사람. 자신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원하는 사람. 직접 실수도 해보고 손해도 봐봐야 하는 사람. 서로를 모를 때에는 너무나도 오해의 소지가 많았지만 지금은 인정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약간 외골수 같기도 하고 비효율적인 거 같기도 하지만... 자존감이 높고 주관이 뚜렷한 거라고 해두자!
다시 중심을 잡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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