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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08. 2022

미국에서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 거부당한 썰

스스로 씌운 프레임이 덫이 되어 걸릴 때

내가 석사 때의 일이다.


미국으로 유학 온 첫 학기, 첫 수업, 첫 팀플 발표가 있었다. 성격 급한 나는 학기 초에 미리 조별 과제 발표를 끝내고 싶어서 가장 빠른 날짜의 주제에 신청했고, 누가 봐도 한국인, 성도 한국 성인 어느 한 학생과 둘이서 같은 조가 되었다.


당시 아는 사람 하나 없던 나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로도 반가워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죠?" 라고. 그녀의 대답은 "I don't speak Korean." 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됐다가 겨우 대답했다. "오, 오케이, 댓츠 파인 위드 미."


그리고 미팅 내내 내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 분명 자기소개 때 미국 온 지 몇 년 됐다고 했는데? 영어 실력도 발음도 토종 한국인인데? 혹시 내가 한국인이라 싫은 건가? 자기도 한국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랑 팀을 하고 싶었었나? 미국에서는 한국말 쓰면 안 되나?


나는 처음 미국에 유학 온 것이었고, 그때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 진짜 안녕하세요 한마디 했는데 대체 왜? 뭐가 문젠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그녀 같지는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어보니, 교회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이민 2세, 3세들에게는 자신이 한국에서 왔으니 언어교환처럼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까지 했다고 한다! 나랑은 한국말 거부했으면서! 나한테는 왜???


전해 들은 내용으로는, 그녀는 1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시민권을 따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미국인으로 여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미국인으로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뚜렷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녀에게는 어쩌면 부담으로 다가왔나 보다. 시민권자임에도 이민자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동양인이라 차별받을 수도 있으니까. 과거를 묻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내가 편협한 나의 시각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나의 소견으로 그녀를 판단했다. 내가 뭐라고 참. 한국어를 안 써서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녀를 응원해줘야 한다. 그녀의 선택이다. 내가 평가할 일이 아니다.




Photo by mikoto.raw https://www.pexels.com/photo/photo-of-woman-holding-frame-3018849/




이립, 각자의 자리에서 뜻을 세우는 사람들


그러니까 뭐 눈에 뭐만 보인다는 옛말이 정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진짜다. 눈앞에 아무리 대놓고 펼쳐져 있어도 안 보인다.


프레임이란 개인이 사건을 인식하고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간혹 가다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가 실감 난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이해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람의 세상과 그 사람만의 우주가 있다.


학교에서 공부만 한 사람은 그 학계 안에서 살며, 전업주부로 가사와 육아만을 담당한 사람은 가족과 아이라는 세상에서 살고,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그 회사 업무가 전부가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도 그렇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범죄 뉴스나 재판 소식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드라마, 영화, 또는 책도 형사물이나 범죄 관련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게 된다. 또는 한국인이니까 한국 뉴스, 한인 사회 소식, 한국 마트나 한국 식당 등 사소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 자신의 실력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사람, 사회에 어떤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 그러니까 주관이 확고하다는 건 참 좋은 거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자기 확신은 필요하다.




스스로를 생각의 틀에 가둬버린 사람들


하지만 그 정도가 얼마나 돼야 적당한 걸까? 어떤 사람은 얼마나 자신의 틀에 갇혀 사는지 보일 때가 있다. 본인 스스로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너무 강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세상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여과시켜서 보기 때문에 왜곡된 믿음이 강해질 수도 있고, 괜한 피해의식이 생길 수도 있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금쪽이에 나온 것처럼, 직업이 선생님인 한 사람이 직업의식을 항상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부모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아이에게도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

군인이 자식에게도 군대식으로 대한다면 자식에게는 부모가 부재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낭만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만 믿는다면, 아내에게 얼마나 한심한 남편이었는지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다 각자가 스스로에게 씌운 프레임 때문에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사실 내가 아는 한국도 내 경험치 한정이다. 내가 겪은 사회의 단편 중에 하나를 기억하는 것일 뿐. 내가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이민생활이 수많은 이민자의 삶을 대변하지 못하고, 우리 사무실이 미국의 모든 업무처리 방식의 표준이 될 수도 없다. 내가 겪은 부부갈등이나 우울증도 결국 나만의 프레임이다. 내가 사건을 이해하고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일 뿐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의 말이 힘든 건 나만의 프레임에서 탈출하라는 신호이다. 상대의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발언과 행동이라도,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줘야 한다. 나 스스로를 내 생각에 가두면 안 된다.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싶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마음가짐이다.


내가 마음을 더 넓게 가지고 시야를 더 멀리 보고 생각을 더 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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