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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08. 2021

퇴근하겠습니다

직장인 여러분 모두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 한 일이다. 내가 처음 채용되었을 때에는 나는 미국 시민권도 없었고 심지어 영주권도 나오기 전이라 오직 취업허가와 여행허가만 받은 상태었다. 그런데 미국 시민들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되다니. 이것이 진정한 블라인드 채용인가. 오로지 나의 능력만을 보고 채용을 해주신 것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작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장에 중국인들이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 중국인들은 다문화 의용소방대라는 소방 업무를 보조하는 기관 소속에서 추천되어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거에 내국인이 아닌 사람이 참여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두고두고 논란이 될 만한' 일이라고 소개되었다.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지금 내가 이민자로서 내가 거주하는 사회에서 이만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상기되었다. 이민자의 나라인 덕분에 귀화한 내국인이 아닌 외국국적의 거주민에게도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사회도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역량이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나도 영어 원어민도 아니고 시민권자도 아니니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짜증내는 사람도 많다. 뭐, 나라도 그러겠다. 내가 예를 들어 한국에서 공공기관을 갔는데 웬 외국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져기여 셩햠이 오또켸 대셰여 하면 깝깝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직원들 대상으로 차별방지교육, 직업윤리교육, 안전교육 등의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불합리한 일들이 고객에게도 직원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단기적으로 봤을 때 미미하더라도 우리가 뭔가를 인지하고 있는 것과 아예 무지한 것과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심지어 사회전반적인 일들에 대한 찬반 투표도 참여할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사회에는 시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민자, 유학생, 여행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속해있으니까. 그 모두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분들이 사무실에 한국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안심이라며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더욱 자부심을 느낀다.


이민자라서, 이민자이지만, 이민자니까... 이민자라는 신분에 나를 구속하지 않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더욱더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민자이기에 다양한 배경과 문화, 언어를 활용할 수 있고, 외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가능하고, 여러가지 접근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국적의 재외국민이기에 한국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도 소중히 여기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나 국위선양까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의 가치와 능력을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해야겠다.


공무원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것도, 그리고 그 거품이 꺼지는 것도, 경제위기, 불안정한 고용형태 등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이 나에게 최고의 직장인 이유도 뜨내기 외지인라는 약간의 불리한 신분과 비원어민이라는 출신의 차이가 더해져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나 스스로 위안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는 나의 최선임을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인생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이 곳에 안주하고 있는가. 나의 삶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여전히 고민중이지만,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해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그냥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외노자의 미국 공무원 출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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