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나의 루틴
1주 여행 다녀오고 2주 동안 혼자 있으면서 살림에 손을 놓았었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아프면서 우리 집 곳간은 텅텅 비었고 집안 구석구석 때가 타기 시작 ㅠㅠ 조금씩 살아났을 때 겨우겨우 하나씩 하나씩 해놓는 집안일 모음.
남편이 집을 2주 정도 비웠을 때, 저 무거운 쌀포대를 들고 올 수가 없어서 쌀도 없이 며칠을 보냈었다 ㅠㅠ 그때는 라면이나 만두 같은 즉석 음식들로 연명했던...
우리가 매번 사는 쌀은 이천 쌀! 한국에서 맛있는 쌀로 유명한 거 같아서 그냥 보이는 대로 샀는데 알고 보니 California Grown 이었다는 ㅋㅋㅋㅋㅋ 그래도 맛 괜찮고 가격도 좋아서 계속 사 먹게 된다.
저 쌀은 15파운드짜리로 우리 집 쌀통 (aka. 팔라마 김치통) 5개에 딱 맞게 들어간다.
옛날에 홍콩에 살 때, 쌀을 지퍼락 봉지에 담아뒀었는데 밤마다 쥐가 갉아먹은 흔적이... 심지어 새로 산 라면봉지도 쥐가 뜯어먹었던 흔적이... ㅠㅠ 봉지에 밀폐되어 있는데 냄새로 찾는 건지 뭔지 ㅠㅠ 그 뒤로 모든 음식은 무조건 튼튼한 통에 담는다.
저 플라스틱 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와이에 처음 와서 가장 가까운 한인마트에서 김치를 사 먹었었다. 그런데 재활용도 안 되는 통에 담겨있어서, 버리기는 아깝고 어떻게 쓸까 하다가 쌀, 파스타 국수, 오트밀 등을 담아서 아주 유용하게 재사용하고 있다.
원래 김치통이었어서, 통과 뚜껑에 물을 가득 담고 베이킹소다를 풀어준 뒤 하룻밤 놔두면 김치 냄새가 싹 가심 ㅎㅎㅎ
김치도 김치가게까지 걸어갈 수가 없어서 한동안 김치 없이 살았다가, 김치를 새로 사 온 날 김치만 퍼먹을 정도로 반가웠다 ㅋㅋㅋ
김치는 한 봉지를 사면 유리병 7개 + 바로 먹을 반찬 그릇 하나에 딱 맞게 소분된다. 무김치 반 봉지씩 파는데, 큰 반찬통 하나 + 작은 반찬통 세 개에 소분!
이렇게 사두면 한 두세 달은 든든하다. 역시 한국인 밥심으로 산다고 밥이랑 김치는 필수!!
살림의 고수님들은 이불빨래도 1-2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하신다고 하지만... 게으른 우리는 그냥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다 들고 세탁실까지 가는 길이 이역만리처럼 느껴져서 ㅠㅠ 사실은 건물 1층이긴 하지만...
세탁기를 돌려두고 시간 맞춰 내려가면 아직 덜 끝난 경우가 있다. 그럼 세탁실 옆 나무의자에 앉아서 빨래가 끝날 때까지 온갖 상념을 하면서 기다린다. 강제 명상의 시간. 의자도 약간 수도원 같은 느낌이라 기도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공간.
아무튼 빨래는 귀찮지만 뽀송뽀송한 이불을 깔아 놓으면 향기롭고 포근하고 엄청 좋다!
화장실 청소는 난이도가 꽤 높아 매일을 흐린 눈으로 더러워도 안 보이는 척 넘어간다. 실제로 렌즈나 안경을 안 낀 상태로 보면 꽤 깨끗한 거 같아 보이기도 하고 ㅠㅠ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렌즈를 끼고 화장실을 갔다가 대충격을 받고 샤워실에 락스를 뿌려가며 싹싹 청소했다. 샤워 커튼의 밑단도 락스 물에 담가 두어 곰팡이를 없애고, 세면대도 마개까지 뽑아서 닦아뒀다. 하지만 여전히 드러움 ㅠㅠ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낫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청소해야지!
다 쓴 치약도 교체해주기. 엄청 깨끗하게 다 써서 흐뭇. 치약 짜개가 열일했다.
우리 집 청소도구. 다 쓴 칫솔이랑, 주방에서 쓰다가 청소용으로 넘어온 그물 수세미, 뚫어뻥, 그리고 청소 세제. 그리고 다 쓴 물티슈나 주방에서 쓰던 코인티슈로 타일 바닥 닦기. 이 정도로 대충 청소가 된다.
옛날에 봤던 영화에서 주인집 할머님께서 물티슈를 다 빨아서 재활용하는 장면이 있었다. "쓸 수 있는데도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대사가 인상 깊었는데... 우리 집 누구는 물티슈 쏙쏙 너무 잘 뽑아 쓴다 ㅠㅠ 다 모아서 빨아놓고 내가 청소할 때 한 번 더 쓰고 버림 ㅠㅠ 다 환경오염이다 이놈아 ㅠㅠ
설거지하고 싱크대도 깨끗이 닦고 상판도 닦고 가스레인지도 닦고 벽도 닦고 냉장고도 닦아준다.
우리 집 상하부장은 너무너무 더러워서 시트지를 깔아놓고 사용 중이다. 그중 가장 쉽고 빨리 더러워지는 양념 칸에는 시트지를 여러 장 깔아놔서 맨 위의 한 장 씩 빼서 버리는 식으로 유지하는 중이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시트지도 갈아주고 ㅋㅋ
어느 날의 삽질. 이건 진짜 인스타그램의 폐해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싱크대에 구연산을 뿌려놓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물때가 싹 없어지고 싱크대는 번쩍번쩍 해지는 영상을 보고 바로 아마존으로 주문했었다. ㅠㅠ 그날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ㅠㅠ 엉엉
그리고 한두 달을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다가 어느 날 나도 해봤는데 ㅠㅠ 이렇게 흰색 자국이... ㅠㅠㅠㅠ 아무리 닦아도 베이킹 소다를 뿌려도 과탄산소다를 뿌려도 ㅠㅠ 없어지질 않는다 ㅠㅠ 석회수 물때 없애려다가 흰 자국 생김 ㅠㅠㅠㅠ 이걸 어쩌나...
지금은 그냥 또 흐린 눈 하고 놔두는 중 ㅠㅠ 보면 스트레스받으니깐 ㅠㅠ ㅋㅋㅋㅋㅋ
우리는 생수를 사 먹지 않고 브리타 정수기 물을 마신다. 브리타 정수기는 두 달에 한 번 필터를 교체하라고 하는데, 가끔은 그것도 까먹는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교체 ㅋㅋㅋ
청소기 먼지통도 비워주고, 필터는 잘 세척해서 재사용할 때도 있고 새 거로 교체할 때도 있다.
환풍기에 붙여놓은 방충망도 떼서 먼지 씻어서 다시 붙이기도 했다.
지난주 아주 오랜만에 비가 왔었다. 비 오는 날 청소는 난간에 새똥 닦기! 하루도 못가 다시 화장실이 되지만 그래도 닦아두면 잠시나마 깨끗하고 좋다.
여전히 평화로운 우리 집 창 밖 풍경.
그렇게 나만 아는 정도로 다시 깨끗해진 우리 집. 한 달 내내 아프다가 중간중간 조금씩 살아날 때 집안일을 몰아서 해치웠다. 그리고 조금만 무리하면 다시 몸져눕기 반복 ㅠㅠ
몸 상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집안일도 정상 궤도로 돌려놓았으니까. 엄살 그만 농땡이 그만. 이제는 다시 일상을 되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꽃이 피기 전부터 꽃이 활짝 필 때까지만 꽃을 좋아하는 나
꽃이 지고, 꽃잎이 메말라 떨어지고, 잎사귀가 누래져도 꽃을 감상할 줄 아는 남편
그렇게 남편에게 또 배운다. 꽃이 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다 져버린 꽃도 여전히 꽃이라고.
젊은 시절의 전성기, 특별한 순간, 대단한 성취나 값비싼 경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도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닌 대부분이고, 늙어가는 모습도 사랑스럽게 볼 수 있고, 실수나 실패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같은 맥락으로 샤워실에 곰팡이가 피는 건 습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노후한 건물도 우리가 살 집이니 마음 편히 쉴 수 있어야 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한번뿐이 없을 오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좋은 면을 기억하기.
그래, 우리 집에 특이점들도 내가 열심히 청소했던 곰팡이 자국들도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되겠지. (제발 ㅠㅠ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이사를 가야 하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