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Aug 22. 2022

네 번째 결혼기념일, 점점 더 닮아가는 우리 부부

당신의 장점도 인정합니다

벌써 결혼한 지 4년,

1년 차 땐 죽기 살기로 싸웠고

2년 차 땐 내가 우울증에 걸렸고

3년 차 땐 조금씩 서로를 인정해서

4년 차인 지금 태평성대를 맞았다.


우리가 만난 지는 7년, 

그동안 나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남편도 나도 참 많이 바뀌었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슬쩍 물어봤다.

"나 정말 많이 바뀌지 않았어?"

남편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라고 대답했다.


"그으래~? 그럼 내가 옛날처럼 행동하길 바라?

내가 남편 취업 준비에 잔소리하고 

우리 이사 언제 가냐고 스트레스 받아하면 좋겠어?"

라고 되물으니

"그러고 보니 많이 바뀌었네 ㅎㅎ" 라고 억지 대답을 ㅋㅋㅋ


나는 더 남편을 닮아가고, 남편도 조금씩 나를 닮아간다.

나는 성격이 더 유해지고 차분해졌고 

남편도 나에게 많이 맞춰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옛날에 남편이 나랑 사는 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자신은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았었는데

단시간에 이렇게 격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게 너무 힘들다고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불같은 성격이었나 보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소중함을 안다. 

새 집처럼 깨끗할 수는 없어도 

살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에 감사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감사한다.

여전히 낯설고 적응 안 되더라도

더위와 벌레를 항상 경계해야 하더라도

맑은 공기에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들의 선택임을 인식하고

그들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응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취업과 이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남편도 목표를 위해 그만의 속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며

나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나는 사고가 나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임을 인정하고

남편이 내 연락을 언제든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다.

그들만의 세상도, 그들만의 생각도,

나의 세상도, 나의 생각과 감정도,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남편에게 데이트 계획을 세우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정확하게 알고 남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게 됐다.

남편이 해줄 수 있는 일, 능력이 되는 일을 부탁하고

남편이 해낼 때마다 칭찬하는 법을 습득한 것 같다.

그러면 진심으로 남편이 귀여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물론 남편의 단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에는 남편의 단점만 보고 

그 단점을 고치는 데 온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장점도 보이고 장점도 언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지금은 그렇다.

미래에 어떨지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지금은 행복하다.







어쩌면 나는 아주 평범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안 싸우고 잘 살았을 수도 있다.


예전의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서 보일 때가 많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더 만족한다.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조금 더 차분해졌다.


어쩌면 많은 걸 놓칠 수도 있겠다.

효율성이 떨어지고 발전이 느려질 수도.

그렇게 답답했던 남편의 모습이

이렇게나 편할 줄이야.







결혼기념일 당일, 

우리는 영화 <한산>을 보고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시내까지 걸어갔다.

차이나타운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우연히 우리가 갔던 음식점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하고 있었다! ㅎㅎ


우리는 결혼 4년 차 부부

그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

뭔가 의미 있는 만남인가! 

그들의 건투를 빈다 ㅠㅠ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도...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여사친, 저는 차라리 당신이 게이였으면 좋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