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하지만 말은 못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제3문화아이들에게 모국어와 영어, 그리고 현지어까지 다중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3문화에서 국제 공통어로 사용한 영어 역시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을 갖추지 못하며, 모국어 역시 상당 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현지 문화에 적게 노출된 경우에는 현지 언어 역시 기대보다 학습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상적인 다중 언어 실력에 반해 실제 모국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에서 학습적으로 평가했을 때 중급 정도의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모국어에도 결코 능숙해지지 않는다는 다중 언어 학습과 관련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끈다' (Pollock & Van Reken, 1999) 는 우려도 많습니다.
자, 이렇게 원론적인 내용으로만 말하면 사실 무슨 말인 지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해외 경험이 많으면 한 국가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언어 실력이 향상하겠죠. 하지만, 학술적인 언어 실력의 의미보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정서의 차이입니다.
제3문화아이는 성장발달기, 자신의 인지능력이 발달하여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사회성을 기르려는 시기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문화적 타당성이나 사회적 통념, 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감정의 흐름과 대응방식이 부정당하는 경험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전부 같았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한 집단에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하죠. 그리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어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노력과 수고를 기꺼이 들입니다.
처음에는 본국에서 해왔던 방식으로 접근하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친근감을 보여주는 표현이나 제스처,
우정의 개념이나 상징적인 의미,
긍정의 표정이나 바디랭귀지,
등등 아주 미묘한 차이로 다르기 때문이죠.
화가 나는 포인트나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
호의를 베푸는 방식과 그 호의의 범위,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정형화된 루틴이나 파티할 때 당연하게 하는 준비과정,
누군가가 슬퍼하는 이유와 그를 위로하는 말...
똑같은 문화에서 나고 자라 똑같은 교과과정을 공부하고 똑같이 사회에 순응하고 살아도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다를 터인데, 서로 다른 배경과 국가에서 처음 보는 문화에 모였으니 한 명 한 명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무리 활달한 성격이었어도,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게 노출되면 조금은 주눅이 들거나 소심해지기도 하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의견을 펼치기보다 상대의 의견을 먼저 수용하고, 또래집단에 인정받기 위한 행동들 위주로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체험으로 배운 한 집단의 문화에서 또다른 다른 집단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제3문화아이는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외국문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