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Oct 25. 2022

모난 돌이 정(情) 맞는다

만고불변의 인지상정

pexles


한국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확실한 정답이 정해져 있어 그 밖의 다른 모든 행동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런 다양한 가치를 범위로 측정한 스케일이 있다면, 해외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또 한국 스타일의 극한으로 끌려오고, 적응을 못하고 다시 해외로 가서 극으로 살다가 귀국하면 또 반대로 끌려가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계속 깎이고 깎이고 깎이다 보니 나를 자학적으로까지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국에서 어디를 가든 네가 그러면 안돼 한국에서는 이래야 돼 이게 정상이야 네가 잘못됐어 여기서는 다 그래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이런 말을 듣게 되면서 주눅이 들었다. 왜라는 질문, 다른 방법, 다른 의견을 내지 말라고 배웠다. 까라면 까고 안되면 되게 해야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또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같아져야 하니까.


우리의 특별한 성격, 각자 다른 생각과 감정, 스스로 정의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등이 모두 깎여진 것 같다. 유행은 국룰이 되어 사회 전반적으로 획일화되고, 성공의 '공식'에 맞춰 살아가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고, '정답'이 있으니 그 외의 답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집단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삼가고, 다른 사람들의 수준에 자신을 맞춰 겸손해야만 하며, 타인이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준비해주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참고.


각자의 개성을 서로 존중하며 맘껏 뽐내며 살 수는 없을까? 남의 눈치를 꼭 봐야만 할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왜 흔들려야 할까? 왜 거절은 해도 안되고 받아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을까?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보고 싶다는 표현 사랑한다는 표현도 참고, 진심을 전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된 걸까? 어쩌다가 돌려 말하기, 내가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내는 식의 대화를 비비 꼬아서 하게 된 걸까?




한국식도 외국식도 아닌 애매한 사상과 행동으로 어느 한쪽에도 제대로 끼지 못하고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 같은 상황. 남편과의 관계가 나아지고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도 남편과 비슷해졌나 봄. 즉, 내가 작년에 남편보고 완전체라고 답답해하고 싫어했던 행동들을 다른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짐.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가족이나 직장에서 그 방식이 잘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결과까지 좋게 나오니 무의식 중에 타인에게도 확장시키는 것 같음.


어떻게 보면 지금 여기에서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는 방법을 내가 찾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내가 친해지고 싶은 한국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힘들다는 뜻. 물론 현명한 사람은 장점만 잘 수용해서 양국에서도 완벽하게 적응할 수도 있거나, 자신의 중심을 제대로 잡은 사람이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기준을 존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둘 다 (아직은) 못되니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ㅠㅠ 사실 답은 간단하다. 현명하게 장점만 수용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거나, 자존감을 높이고 나의 의견을 존중하면 된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