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Nov 12. 2022

시댁의 재해석: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미국 가족

보스턴 여행 DAY 4, 5 어서 와, 하버드 집안은 처음이지?

소극적 수용력 negative capability : 혼란스럽고, 불확실하고, 회의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능력.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불편한 상황이라도 견딜 수 있는 지구력

내 통제 밖의 상황을 구분하는 분별력

나의 최선과 한계를 인정하는 판단력

내게 너무나도 필요한 수용력.

나에게는 없는 소극적 수용력.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영감을 받는 것

타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바로 나에게도 적용해보는 것

어떤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납득할 만한 정답을 찾는 것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불안의 요소를 제거하려는 것

더 나은 환경과 더 좋은 상황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고 알아보고 노력하고 바뀌는 것

타인을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입장을 바꿔보는 것

상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의 취향에 맞춘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여행을 가서도, 하와이에서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따라 하다가도 보스턴에 가서는 도회적인 분위기에 취해 빨리빨리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적극적으로 입장을 바꿔버린다.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울 것들이나 따라 할 수 있는 마음가짐,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평가하고 모방하게 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여행지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소를 먼저 검색하고, 꼭 가봐야 하는 곳이나 후기가 좋은 음식점 사진이 잘 나오는 배경을 먼저 찾는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는 곳을 도장깨기 하듯이 따라가고, 내가 여행을 왔다고 인증할만한 사진을 남긴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편견을 갖고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고,

상대를 관계에 국한돼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보기...


의식적으로 그만두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도로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사고방식 같다. 그냥 내버려 두기

그냥 놔두기

그냥 있는 그대로 두기

그냥 이 사람은 그래 하고 끝내기







한국의 친구들에게 여행 가서 시댁 가족과 만난다고 가볍게 소식을 전했더니, 뜬금없이 응원을 받았다. 쫄지 말라는 얘기와 함께. 힘내라고. 당당하게 다녀오라고.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내가 쫄아서 가야 하는 거였을까? 거기도 헬게이트이려나? 내가 거기 가서 기쁨조 역할을 하게 될까? 점수 좀 따라고 하실까?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려나?


시댁인데 불편하면 어떡하지? 와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은 하버드 졸업생을 볼 일이 있을까? 의 사이.


나 혼자 걱정 가득 안고 만났던 시 이모님과 사촌 시누 가족과의 만남은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갈팡질팡하며 관계주의와 학벌주의의 색안경을 끼고 만난 나에게 시야를 확 틔이게 해줬달까?


보스턴에 가기 전부터 시어머니께서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셔서 가족들의 이름을 사촌들과 조카까지 전부 소개해 주셨다. 어떤 대화하기를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관심사를 갖는지,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에게 시댁에서 키우던 강아지처럼 나를 쫓아다닐 동물은 없다고 안심하라고 해주셨다.


친척들이 너를 만난다고 해서 정말 기대하고 있다고,

너를 만나면 분명히 다들 가족으로 환영하고 사랑할 거라고,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체로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시이모는 시어머니께 언니뿐만이 아니라 시어머니께 가장 좋은 친구 같은 분이라고...


그리고 실제로도 내가 한국식으로 미리 걱정했던 그 어떤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편안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나는 단순하게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나를 만나기 위해 특별한 대접을 한 것도 아니고, 나를 호구 조사하거나 나에 대해 캐묻지도 않았고, 한국이나 동양인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었다.







짧은 만남 동안 내가 느낀 건, 대화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랐다. 새로웠다. 시사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고, 의견을 묻고 들어주고, 깊은 이야기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내게 특이했던 점은, 당신의 이야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주셨다는 사실이다.


명절에 친척 어른들을 만나면 잔소리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

학교에서 몇 등하니,

어느 대학 다니니,

취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

아기는... 둘째는...

전부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상대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지만 ^^;) 질문이다.


그에 완전 반대로

나,

내가 한 일,

내가 겪은 상황,

내가 생각하는 시사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그리고 간간히 너는 이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나는 사실 거의 말을 안 해도 됐었다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친척 어른들도 당신께서 겪으신 재밌는 일이나 요즘 최대 관심사,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일화를 나눠주시면 훨씬 더 대화하기 편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차이점은 모든 대화에서 부정적인 표현이 거의 없었다.

네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니?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어?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해?


보통은 부정적인 문장으로 가득 찬 한국어 대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 좋다 낫다는 비교가 아닌 순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랄까. 왜냐하면 부정문인 한국어도 상대를 위하는 말이 많으니까 말이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회사 이야기를 할 때

일 하느라 힘들지는 않니?

괴롭히는 사람은 없니?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는 말씀도 물론 듣기 좋고,

지금 하는 일 중에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아?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료는 누구야?

라고 묻는 것도 나는 듣기 좋았다.


자녀가 놀러 갈 때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늦지 않게 돌아와

라고 걱정해주시는 말씀도 좋은 의도이고

어떤 놀이를 가장 하고싶어?

제일 기대되는 시간은 무엇이니?

라고 물어보는 것도 좋은 의도이니까.


아이들과 대화할 때에도 어른처럼 대화하고 반응해 주었다. 아이의 모든 발화에 응답해줬다. 아이가 아무리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도 "어른들 이야기 하시잖니" 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지 않았다.


우리 남편도 그런 긍정적인 자극과 긍정적인 반응을 매일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그렇게 해맑구나.

그래서 머리가 꽃밭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을 믿고 따르는구나.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구나.







그리고, 가족을 보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 결핍이 보인다.

가족이 겪어내야만 했던 사건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일들을 통해 느끼는 감정,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가치관

그가 나고 자란 환경과 그 안에서 얻게 되는 그 만의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아온 경험과 깨달음...


이런 면에서 결혼이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말하나 보다. 직접적인 간섭이나 참견은 없어도 한 집안의 가정사와 또 한 집안의 가정사가 만나는 것이 결혼인가 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세상을 전부 받아 들어야 하는,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그런 결합이 결혼이었다.


내가 자라온 방식으로 아이가 세상을 살까 봐 딩크를 결심했다면, 다른 방식의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희미하게 그 존재만을 듣기만 했는데 실제 한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상황이다. 나는 <신과 함께>에 나오는 빡센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코>에 뚝 떨어진 기분이랄까. 꽃밭을 달리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도 좋은데, 자꾸 거대한 돌이 쫓아와 도망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만약 완전히 한국식 삶의 방식을 선호했다면, 나는 사실 남편과 이혼하고 비슷한 환경의 사람을 다시 만나면 오히려 더욱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편이 살아온 방식에서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장점을 너무 동경한다. 다른 두 방식에서 장점만 취할 수는 없을까?







- 이번 여행 총평 -


본질을 잊지 말자. 수단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계속 정체된다고 느껴졌던 이유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내 행복, 내 꿈, 내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가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엄청 많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 남편은 진짜로 지금 이게 최선이다. 한국인 8282의 기준으로 120, 130 까지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는다고 남편을 평가할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100까지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게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 해고 존중해야 한다.







보스턴에서 하와이로 돌아가는 날, 비행기가 8시간이나 연착됐다. 예전 같았으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그나마 괜찮을 수 있었다. 남은 반나절을 숙소와 가까운 보스턴 대학교를 구경했고, 현지인 놀이한다고 텀블러에 커피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그 마지막 순간을 충분히 즐겼던 것 같다. 그래 그러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아주 좋다.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