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하와이는 2019년 1월 1일부터 Our Care, Our Choice Act 법안이 시행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될 때, 주지사는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지키고 우아하고 평화롭게 (with dignity, grace and peace) 죽을 권리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말기 질환을 진단받아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의료 지원 약물을 처방받을 수 있다.
1. 18세 이상 하와이 거주자
2. 처방받은 약물을 스스로 복용할 수 있는 자
3. 주치의에게 20일 이상 간격을 두고 2번의 구두 요청을 할 수 있는 자
4. 3명의 의사에게 자격 기준 충족을 확인받은 후 1건의 서면 요청을 할 수 있는 자
5.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신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자
다른 주와 다르게 하와이는 제3의 의료기관에게 정신능력 평가를 의무화한 유일한 주이다. 하와이 보건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존엄사 절차에 따르면, 환자는 처방받은 약물을 스스로 복용해야 하며 사후조치를 해 줄 사람을 지정하여야 한다. 더하여 환자는 존엄사 신청을 취소하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권리를 가진다.
https://health.hawaii.gov/opppd/ococ/
https://deathwithdignity.org/states/hawaii/
어느 한 상황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을 '둘라 Doula' 라고 한다. 멘토 혹은 코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출산 경험이 있는 경우 출산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고,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혼 과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고, 장례 관련 경험이 있다면 임종부터 장례 절차 전반에 걸쳐 지도해 줄 수 있는 것과 같다.
End-of-Life Doula는 임종을 지키고 가족들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심리/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에 대한 더 깊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을 인생을 어떻게 살지, 그리고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에 관해, 그리고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지. 유한한 시간이기 때문에 물론 원망과 미움보다는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는 게 좋겠지. 실망하고 싸우기보다는 존중하고 평화를 선택하는 게 맞겠지...
나는 사실 장례식도 몇 번 가본 적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준다는 게 어떤 감정일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별이 힘들어서 떠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미워하면서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떠난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래도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땐 어떡하지...?
문화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금기사항이 많았던 우리 사회와는 달리, 굉장히 허용적이고 다름을 포용하는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당연한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의 외도는 인격 살인과 같아서 치매에 걸려도 잊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또는 비슷하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도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아마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참아야만 했던 한이 남았겠지. 차라리 그렇게 원망하는 마음을 쌓아두는 것보다 당시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훨훨 날아갔다면, 오히려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을까?
일생일대 중차대한 문제도, 소소하고 자잘한 문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나중에 죽기 전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나라의 정서 중 하나.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죽기 전에 너 결혼하는 거 봐야지.
죽기 전에 손자 얼굴이라도 보고 죽어야 할 텐데.
그리고 자식들이 하는 효도
우리 부모님 퇴직하시기 전에 결혼식 올리자.
손주들 얼굴 보여주러 부모님 댁에 매주 가야지.
나이 드신 부모님,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서로를 행복하게 해 줄 의무를 갖고, 서로에게서 행복을 얻는 그런 의존적인 관계... 가족이니까, 핏줄이니까, 천륜이니까, 하면서 대대손손 이어져 온 부모 자식 관계.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 바라만 봐도 보고 싶고 매일 만나도 또 그리운 그런 관계... 이려나?
우리 사회도 완전하게 감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까?
비록 나는 늙고 병들어 삶의 끝을 준비하지만, 내 자식은 행복하게 살 것이라 믿어줄 수 있을까? 나의 죽음을 축복해주기를, 그것이 나의 선택이니까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내 자식이 잘 살 거라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마음도 없고, 나만의 기준에 맞춰서 자식의 인생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려는 마음도 없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 수 있을까?
우리도 늙겠지. 우리도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겠지... 그때 우리가 서로를 보내줘야만 한다면, 나와 40, 50 년을 함께 한 사람일 텐데, 정말 나의 반쪽과도 같을 사람을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을까? 남아있는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면 어떡하지? 배우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봐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너무도 확고한 것 같다. 그냥 잘 살아오신 인생을 축복하기만 해 드리면 되는데, 자꾸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내가 괴롭다 ㅠㅠ
누군가의 인생은 감히 다른 사람이 평가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던, 어떤 업적을 쌓았고, 어떤 사상을 믿었던, 그의 인생이다. 그 인생은 직업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수십 년을 살아온 그 시간 동안 단 하나의 행동으로 평가되서도 안된다.
그냥 그는 그대로 살았다. 그만의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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