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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19. 2023

미국 법원 공무원이 멘탈 잡는 법

고갱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지난번 6주나 휴가를 가 나를 멘붕에 빠뜨렸던 시니비(신입이) 씨가 또 휴가를 갔다. 시니비 씨를 보면 내가 신입이었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좀 귀엽다.


그래, 나도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땐 정말 설레었더랬지. 미국 회사를 처음 겪으며 어떤 문화인지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법원이라는 특수한 분야에서 잘할 수 있을까 기대되기도 하고, 이민자인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더랬지! 허허, 이제는 벌써 고인 물이 되어 “원래 그래~”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 사무실은 굉장히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훌륭한 직업군에서도,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집단에서도, 범죄다발 지역에서도, 정신질환자도, 아주아주 평범한 사람도,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는 거니까.


시니비 씨는 읽을 수 없지만, 내가 처음 입사하고 부서장님께 배운 몇 가지 팁을 적어본다.




다운타운 풍경




1. 나를 분리한다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학교에서 일해도 은행에서 일해도 마트에서 일해도 공직에서 일해도 전문직에서 일해도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소리 지르고, 욕설과 비방에, 악성민원 넣고, 성희롱까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그에 대한 대응법을 잘 숙지하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직원은 특정 민원인의 지속적인 전화와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질문에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계속 그분을 상대하시고 답변하고 계셨다. 나나 다른 직원이 전화를 대신 받는다고 해도, 담당 업무만 답변하면 된다고 해도, 계속 전화를 받으시고 계속 불평하셨다.


생각해 보면 초기에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가 (꼭 나에게가 아니더라도) 고성을 내면 긴장하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면 영향을 받고,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의상 등 외적인 부분에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서, 외부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고, 내가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욕을 듣던 칭찬을 듣던, 나의 업무에는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내가 응대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으면 상급자나 상사가 해결할 수 있도록 즉시 알려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처음에는 책임감이 강해 그 민원인을 내가 꼭 끝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민원인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진상을 부릴 사람이었으면 어디서든 진상을 부렸을 것이고, 내가 응대해서 정신을 차릴 사람이었으면 진작 잠잠해졌을 것이다. 민원인의 목표가 화풀이라면 내가 욕받이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래도 한국어가 아니라 그런가, 영어로는 욕을 해도 성희롱 발언을 해도 그닥 타격받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아이구 고객님 욕하시네 목청 좋으시네 하는데, 오히려 내가 듣기 힘든 건 숨소리인 것 같다. 대면이든 전화든 ㅠ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다가 선택으로 바뀌면서 귀에 더 잘 꽂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화로는 상대의 말을 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귀에 수화기를 대고 있다 보니 더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쉬지 말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다운타운 풍경





2. 내가 맡은 업무를 한다.


처음 법원 사무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교육받은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나의 직무에 충실하라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바꿔 말하면, 절대로 법적 조언을 해주지 말라는 것! 죄의 유무 판단은 판사의 권한, 피고인을 돕는 건 변호사, 피해자를 돕는 건 전문가가 있으며, 증거나 서류 등 모두 담당자가 있다. 사무직인 나는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서류 작업을 하는 것.


내가 해야 할 일 vs 내가 하고 싶은 일 /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구분해서 나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고객님을 돕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싶어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등의 이유로 자신의 권한을 넘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실수를 범하면 큰일인데 말이다...


의사도 전공이 있고 전문의가 있듯이, 간호사도 간호조무사, 간호사, 임상간호사 등 업무가 나눠져 있듯이, 회사에서도 사원, 대리, 과장, 부장 등 업무가 나눠져 있듯이, 각자가 맡은 일을 해야 한다. 팀원을 관리하고 공정한 업무 분배 및 관리하는 일은 팀장님이, 직원의 고용 지속 여부에 대한 고민은 인사과가, 회사의 미래와 발전에 대한 책임은 사장님이 하면 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면 된다.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은 소유격의 주체가 주인이다. 주인인 사장님이 가지면 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합당한 대가나 보수, 직책이 있지 않는 한, 권한이 없는 일을 하는 건 월권일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하겠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남의 일을 (정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월권하지 말고, 상대의 업무를 존중해 주자!!!




다운타운 풍경




3. 내가 일하는 목적을 기억한다


나는 직장은 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직장이 나를 대변하지도 않고, 직장이 나를 정의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고, 그에 일환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직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체불가 일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갈 것이며, 퇴사하더라도 나는 잘 살아갈 것이다.


어떤 분은 본인의 자리에 국기를 걸어두고,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분도 계신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


또는 어떤 분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이라 선택하기도 하고, 더 높은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선택하기도 하고, 단순하게 일이 좋아서 또는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선택하기도 한다.


내가 회사로 출근하는 이유를 기억해야, 일에 휩싸이지 않는 것 같다. 일이라는 게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고, 나쁜 일만 있지도 않으니까.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주도권을 나에게 맞추기. 워크 라이프 발렌스에서 라이프를 찾아야 한다.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된다면, 회사에서 나쁜 일을 당했을 때 나 자신을 잃게 되니까...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회사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자


스스로 정한 목적 때문에, 살아가는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탕비실 뷰는 옆 건물 잔디밭과 마주하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로 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근처 학교에서 자주 소풍 오는 곳인데 반가워라! 사무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뻑뻑 쉣다뻑 소리를 듣지만, 오랜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정화된다. 이래서 아이를 낳는 걸까 싶을 정도로...!





최근에는 점심모임도 있었고 남편이 도시락 싸줘서 점심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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