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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30. 2023

내가 미국 공무원을 퇴사하지 않는 이유

회사와 우울증 극복 간의 상관관계

세상에는 멋지게 사는 사람이 참 많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나아가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삶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사람

아무도 찾지 않아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이루어내는 사람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고, 그 모습에 당당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그 용기에 감탄하고

때로는 부러운 마음에 동기부여도 받고

때로는 그들의 성공에 감동한다.


그러고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회사로 출근한다.







나는 결국 운 좋게 합격한 곳이 이곳 하나뿐이긴 했지만, 나에게 일어난 지난 모든 일을 되돌아볼 때, 정말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 이 말이 주는 엄청난 위로가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나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2020년 남편과의 불화로 우울증을 진단받고, 매우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것이 나의 회복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크다면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는 애초에 회사에 큰 포부를 갖고 입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 일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고, 남편에게 더 큰 시련을 받았기 때문에 회사의 악성 민원인이 피난처처럼 느껴졌으니까.




1. 고용 안정성


안정적인 직장이란 고용 안정성이 높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인종차별 없고, 코로나 락다운에도 furlough (일시 해고) 당하지 않았고, 월급 밀린 적 없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직장. 


남편 하나 보고 이민까지 온 나에게는 결혼 생활이 나의 전부였었다. 시민권자 남편의 외국인 피부양자,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남편과의 이혼을 운운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한 집에서 남편과 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숨도 못 쉬게 괴로웠을 때, 필수인력으로 구분되어 사무실에 출근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해방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취준 기간에는 우리의 상황도 바뀌었다. 외국인 조건부 영주권자의 미국인 피부양자. 나는 그렇게 이민자로서 사회에 적응하며 내 몫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좋았다. 


당시 우리가 이혼했다면 나는 한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불안정했던 미국에서의 생활에서 남편의 도움이 전혀 없이 나 스스로 이뤄낸 첫 업적이었다.




2. 업무 안정성


매일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고 지루한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서류를 처리하고 똑같은 작업을 하고 똑같은 응대를 수십 번 반복한다. 


민원인 분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일처리만 빨리 하고 가시는 분들이 대다수지만, 억울한 분도 계시고, 소리 지르며 욕하는 분도 계시고, 성희롱하는 분도 계시고, 정신질환이 있으신 분도 계신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도와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는 친절한 분도 분명 계신다. 


같은 일의 반복, 비슷한 민원인의 반복... 차라리 이게 나았다. 행동 지침이 있었고, 정해진 대답이 있었고, 해결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다. 내 권한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드리면 충분했다. 그리고 퇴근하면 끝이니까.


매번 다른 문제로 다투는 남편과의 부부싸움에서, 해결책이 없이 밤을 새우며 서로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대화에서, 서로를 책망하고 비난하는 말이며 눈빛이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상황보다 훨씬 나았다.




3. 심리적 안정성



나도 프리랜서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변수야 많았지만, 가장 큰 미지수는 바로 나였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고 그만큼 성과도 냈지만, 기분이 가라앉을 때에는 일을 원하는 만큼 잘 해내지 못했고 그 결과도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안정적으로 나의 중심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가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없이 올라가도 정신을 안정적으로 붙잡아 줄 또는 한없이 내려가도 중심으로 끌어올려 줄 무언가. 내가 매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가 나에게는 그런 역할이 되어주었다.


매일 출근해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한다. 생활에 루틴을 만들고 어떻게든 지켜내는 것. 출근을 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햇빛을 받으며 출퇴근길을 걷고, 매일 깨끗이 씻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우울증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던 것 같다. 


물론 바닥을 칠 때에는 병가도 정말 많이 썼고, 어딘가로 팔랑 날아가고 싶을 때에는 휴가도 많이 썼더랬다. 노동자인 나의 권리가 보장되는 곳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단이라도 공무원을 퇴사하지 않는 이유, 내가 이민자들에게, 취업을 원하는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공무원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입사가 어렵지 않고, 일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한 번은 지원해 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월급은 최저임금이다. ㅠㅠ 하지만 나는 아마 다음에 이직을 해도 같은 업종으로 갈 것 같다. 







한 사회가 돌아가고 한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조금씩 보인다. 사업장에서도, 행사를 하더라도, 음식점에 가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당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다. 그것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수고를 볼 수 있고, 그에 감사할 줄 아는 시각을 갖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어쩌면 사사로울 수도 있는 일도 사회에는 필요한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동시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꿈도 천천히 찾아본다. 




사무실에 정들었나, 나의 미니멀 책상을 꾸미기 시작했다.




정말 열정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 사람들이 부럽다가도, 그 이면의 뼈를 깎는 노력이 보여 존경심이 든다. 어떤 분의 콘텐츠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좋은 기회가 참 많이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이 감사한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조금 다운되어 있다. 내가 남에게 보이는 만큼 행복한가? 나는 스스로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지금 하는 일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오아후에는 없는 크리스피 크림, 맛은 알고 있는 그 맛이었는데 왜 이렇게 특별한지... 행복의 근원은 결핍이라더니 ㅎㅎ 이것도 회사에서 얻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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