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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10. 2023

온라인 예약을 우편으로 보내는 미국 관공서

미국 관공서 하루 만에 세 군데 가능?




안녕하세요!


며칠 전 휴가를 내고 미루고 미루고 미뤘던 관공서 업무를 클리어하고 왔습니다, 그것도 하루 만에 세 군데 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해외에서는 관공서 업무처리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죠... 뒤따라올 수 없게 제일 느리게 갑니다 ^^;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가도 슬로모션으로 느껴지는 저의 하루를 적어보려 해요 : )




오프닝


6월 7일 아침, 다리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파서 어그정 어그정 무릎도 제대로 못 펴고 버스를 타러 감. 전전날 친구와 호기롭게 헬스장에 운동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온몸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 출근길 눈앞에 버스가 지나가는데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1단계


다음 버스를 무사히 타서 습관적으로 온라인 예약 사이트를 방문. 매일 3시 취켓팅에 실패한 1인이기에 별 기대 없이 접속했다가 분점이 눈에 띄어 검색, 당일 8시 40분과 10시 30분이 예약 가능한 것을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예약해 버림. 이 예약은 현장에서 증명사진을 찍는데 ㅜㅜ 맨얼굴에 화장품도 없어서 잠깐 고민했지만, 이렇게 운 좋은 기회는 없을 거라는 판단하에 일단 고 함.



10:10 


회사에 출근해서 바로 팀장님께 휴가를 올리고 2시간 일하다 탈출! 예약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 직원에게 체크인. 일찍 나오려다 보니 일이 바빴어서 신청서를 인쇄만 해가지고 왔는데, 사무소에서 신청서를 클립에 끼워서 줌. 첫 번째 장 적다 보니 두 번째 장에 카본카피로 필요한 정보가 적힘. 아날로그의 끝판왕이지만 이건  꽤 좋은데~ 생각함.


10:18 


시간이 남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시 묶었다 풀었다 ㅜㅜ 지난 주말에 파마를 했는데 머리털 개털돼서 손에 닿는 머릿결에 깜짝깜짝 놀람. 왜 돈을 들였는데도 더 몬쉥겨진 것 같지? 하지만 야무지게 실핀도 꼽고 앞머리도 정리. 와우 정리를 백날 해봤자 바람 한 번 불면 머리가 슝~ 날림. 이 머리로 잠시 후 찍게 될 증명사진 따위로 나를 증명하고 싶지는 않은데 ㅜㅜ 셀카모드로 거울을 보며 온갖 예쁜 척 표정을 지어봄


10:28


예약시간이 조금 지나 그대 나를 잊으셨나요 할 때쯤 내 이름이 불림. 사무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서 대기하라고 알려줌. 대기가 또 있었나요...! 내가 해야 할 업무는 담당하는 창구가 두 개 밖에 없네, 내 앞의 사람들이 업무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공무원 직원분께서 조금만 더 친절하셨으면 좋겠다, 생각함 ㅠㅠ


10:48 


1번 창구 직원분께서 그나마 더 친절하셨는데 나는 2번 창구로 불려 가고... 대기 중에 1번 창구 민원인께서는 유효기간이 2일이 지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비보를 매우 친절하게 안내받고 계셨다 ㅠㅠ 아까비... 그래 친절이 뭔 소용이냐 처리할 일 다 했으면 됐다!




10:54


꺄울! 그렇게 10분도 안 걸려 나는 나왔다. 맨날 사무소 본점만 가야 되는 줄 알고 예약하느라 고생했는데 분점 가면 이렇게 나름 여유롭고 좋다니! 사진도 꽤 맘에 드는걸?


1단계 클리어! 실물 카드는 6-8주 안에 우편으로 받는다^^




2단계


이곳은 연방정부 사무소로 온라인 예약을 하지 못 함. 온라인 예약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 회원가입 코드를 2-4주 이내에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그게 어언 며칠이나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라 무작정 가보기로. 자네, 행운을 비네!



11:02 


2단계 출동~~~~~ 오이예~


11:10


하늘은 맑고 햇살은 내리쬐고 이런 날 놀러 가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걸음. 지도상으로 걷는 데 13분이지만 찢어지는 고통의 앞벅지와 종아리의 소유자는 잰걸음으로 총총총... 심지어 중간에 길을 잃음 지도에 나와있어야 할 횡단보도를 못 찾고 보도가 공사 중이라 막혀있고 ㅠㅠ 건물이 눈앞에 보이는데 왜 가지를 못하니!! ㅠㅠ


11:15


이 건물은 출입문이 어디인지 간판도 없고 여기저기 막혀있어서 한 바퀴를 빙 돌아 사무소 입구를 찾음. 심지어 어떻게 찾았냐면 복도에 사람들이 쭉 앉아계시길래 여기가 줄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함 오매 한참을 기다리겠구나 하며 셰리프 분께 여쭤보니 세상 친절한 미소와 아리따운 목소리로 맨 끝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알려주심 ^^ 친절하니 좋네 역시 젊어서 그런가


그렇게 10분이고 20분이고 기다리다 보니 폰 배터리가 20% 아래로 떨어짐 ㅠㅠ 언제 들어가냐 싶던 찰나, 대기자들 입장하겠다는 안내가 들림!!! 그렇게 또 한참을 밖에서 줄 서있다가 한 팀 들여보내줘서 금속탐지기 통과하고 한 팀 들여보내주고 ㅜㅜ


11:36


오 마이 갇. 드디어 들어옴 실내는 좋구나 에어컨 있어서 시원하구나 ㅠㅠ

오 디어 갇... 실내는 대기자가 더 많구나... ㅜㅜ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12:19 


오... 아직도 기다린다. 어쩌면 오늘 처리하지 못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ㅜㅜ 다음 사무소는 예약을 해두었는데, 거기에 늦으면 안 되니까 ㅠㅠ 다음 사무소 예약시간까지 가려면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일단 버스는 너무 늦어서 못 타고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 리프트는 17분 우버는 14분, 부르면 바로 오겠지 그래도 다운타운인데 ㅠㅠ 아니다 다운타운이라 막혀서 더 늦으려나 ㅜㅜ 12시 50분에는 출발해야 그래도 여유롭게 도착할 텐데. 그러면 적어도 45분에는 내 번호가 불려야 하는데...!


한 30분 시간 있는데 앞에 열명 남짓... 그래 충분히 할 수 있어! 직원분들이여 힘을 내세요!!! 대기자 화면을 1초마다 쳐다보며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다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와우. 심장 쫄깃 ㅠㅠㅠㅠ


12:37 


그.런.데. 아아 하늘은 정녕 저를 버리시나요! A로 시작하는 번호, B로 시작하는 번호, C로 시작하는 번호가 여러 개였던 것!!! A만 내 앞에 10명인데 B, C가 불려 가다니...!


사무소 내에 창구가 17번까지 있었는데, 실제 업무 보는 창구는 1-3개 밖에 안 열려 있었다. 민원 한 건 처리하는데 무슨 20분씩 걸리는 거 같은데 ㅠㅠ 직원님 지금은 수다 떨 때가 아니에요! 제발제발제발제발!!! 당신의 업무 능력을 보여주세요!!! 8282828282 ㅠㅠㅠㅠ


갑자기 내 앞 앞 앞번호가 불렸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셨나? 그렇다면 내 번호로 시작하는 것만은 얼마 안 남았는데 ㅠㅠ 고지가 코앞인데!!! 설마 내 번호 바로 앞에서 가야 되는 건 아니겠지? 진짜 곧 죽어도 1시에는 출발해야 되는데 엉엉


12:50


다리가 달달달달달달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박진감! 오늘 이걸 처리해야 되는데 ㅠㅠ 오늘 아니면 그다음 기회는 다다음달이라, 오늘 휴가 낸 김에 다 하면 딱인데 ㅠㅠ 이제 휴가도 다 써서 없고 ㅠㅠ 앜ㅋㅋㅋㅋㅋㅋ 다시 오기는 싫고 ㅠㅠ 8282 가즈아~~ㅋㅋㅋㅋㅋㅋㅋ


12:55


오 마이 갇 내 앞번호 분께서 뽜이널리!!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가신 지 얼마 안 돼 바로 나오셨다!!!!! 이제 내 차례~~~~~ 화면의 번호가 바뀌자마자 안내방송 나오기도 전에 셰리프 분께 말씀드리고 셀프로 들어감.


으아니 근데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대기 중일 때 알았으면 진작 썼을 걸 ㅠㅠㅠㅠ 창구에 앉아서 기다리면서도 다리가 달달달달 핸드폰으로는 우버를 켜고 목적지까지 입력 완료 픽업장소도 선택 완료 이제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쫄린다 쫄려 ㅜㅜㅜㅜ


하지만 직원님께서는 당신만의 속도로 잘 일 처리해 주셨고 땡큐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ㅠㅠ


13:02 


왘ㅋㅋㅋ대박ㅋㅋㅋㅋㅋ 타이밍 ㅋㅋㅋ 사무실을 나오는 날아갈 듯한 발걸음! 이대로 날아서 세 번째 사무소로 가면 좋은데!!! 길치지만 전자두뇌를 발휘하여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우버를 찾아 뛰었다!


2단계도 클리어~~ 실물 카드는 2-4주 안에 우편으로 받는다^^




3단계


자 드디어 마지막 대망의 3단계! 우버까지 탔으니 안심이다 했는데, 우버 기사님께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건물 반대 방향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자기 그 사무소 어딨는지 안다며 바로 앞에 내려주겠다고 하시고는 ^^ 이전하기 전 위치에서 헤맴 이런 불필요한 친절함이란... ㅠㅠ 내가 그냥 내려서 찾아가겠다고 하고 내 인생 전속력으로 미국 전체에서 8번째로 큰 쇼핑몰 건물의 반바퀴를 뛰어감!!!!!



13:19


와 오늘의 영화는 인생승리인가요~~ 예약시간 1분 전 도착해서 입구의 직원 분께 체크인하고 외부 대기석에 앉았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제가 셀프로 찍은 쥐 잡아먹은 사진을 받아주냐 마냐의 문젴ㅋㅋㅋㅋㅋㅋ가 남았는뎈ㅋㅋㅋㅋㅋㅋ


13:25


와우 여기 직원 분께서는 정말 정말 친절하셨다. 완벽하게 마무리될 무렵, 결제할 수 있는 체크를 달라는 말씀에 띠용! 카드나 현금이 안 된다는 말씀에 2차 띠용...! 나는! 오늘 하루종일! 무엇을 위하여!!! 달려왔는가????? ㅠㅠㅠㅠ 하늘이시어!!!!!



13:39


친절왕 직원 분께서 바로 체크를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서류를 놓고 갔다 오라고 허락해 주셨다 ㅜㅜ 친절하시게도 이런 노트에 사인까지 해주시며 다시 사무소로 입장할 수 있도록 ㅠㅠㅠㅠ  킹갓엠페러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 당신은 나의 은인


13:47


그래서 집으로 바로 튀튀튀튀튀튀튀튀 파마한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입에 단내가 나도록 두 다리가 터지도록 뛰어갔다 ㅠㅠㅠㅠ 오늘따라 집이 이렇게나 멀었나 ㅜㅜ


나는 원래 체크 비상용으로 몇 장 챙겨 다녔었는데, 은행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해지하면서 싹 다 버리고 나서, 다른 은행의 체크를 챙기지 않았다 ㅠㅠ 벤모 있는데 체크가 무슨 소용이냐며 ㅠㅠㅠㅠ 미국의 아날로그 맛 좀 보니 체크는 체크는 비상용으로 꼭꼭 챙겨야겠다고 다시 다짐!!!


13:51


부랴부랴 체크를 꺼내서 써가지고 다시 튀튀튀튀튀튀 사무소로 튀튀튀튀튀튀 막판에는 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훌렁훌렁한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뛰어갔다 오늘만큼은 하니가 안 부러울 정도로 뛴 듯


14:07 


다시 사무소 도착... 다시 대기... 나의 킹갓제너럴님께서 오찬 드시러 가셨단다... 또 대기......


14:31


나의 킹갓제너럴님의 동료분께서 서류 접수 전부 잘 됐다고 직접 나오셔서 확인해 주시고, 다시 쌩유베리감사를 연발하다 터덜터덜 집으로 향함


와... 이게 가능하다니.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라니. 나도 오늘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진짜 될까 했는데... 진짜 미친듯한 추진력 ㅜㅜ 그래도 하루에 해결하니까 속 시원하다ㅋㅋㅋㅋㅋㅋ


3단계도 클리어~~ 실물 카드는 10-13주 안에 우편으로 받는다^^







클로징


그 다음날 아침, 나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관공서는 성공했지만 다리를 잃었다 ㅠㅠ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어서 급하게 병가를 내고 지난번 목에 담 왔을 때 먹었던 근육이완제를 먹어봤더니... 금방 나아져서 다시 출근했더라는 이야기... 약은 정말 신기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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