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히고 알기
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벌써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다. 11월에 이직한 덕분에 2023년을 돌아보면 10개월 동안 있었던 매해 비슷한 일상보다, 2개월 만에 겪은 일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연말이라 은퇴하시는 분들이 많은 요즘, 그분들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며 정말 많은 지혜를 배운다.
온고지신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 경험이 정말 소중하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 그들의 발자취 자체가 역사이며 방향표이다. 내가 가야 할 길,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이미 지나온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귀하디 귀한 기회. 그리고 그 오래된 지혜를 잘 배워서 나에게 적용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나온 길을 이제 걸어가는 분들 역시 배울 점이 정말 많다.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 그리고 현재의 나에게 한 번 더 스스로를 재점검하게 해 주니까, 나를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것들을 잘 배워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만약 내가 자의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것 역시 아마 사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ㅜㅜ 어디든 좋은 사람만 있을 수는 없겠지?
내게 일을 가장 많이 가르쳐주신 분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셨다.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근속하신 그분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파티도 두 번이나, 레이도 겹겹이 파묻힐 정도로 많이 받으셨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해오시며 모두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가 참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대단하시다.
나와 인수인계 중에도, 여러 번 사람들이 인사를 오거나 선물을 전달해 주시러 오셨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다. 아주 소중히 포장지를 열어보시고는 나에게도 보여주셨는데, 바로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오래된 책이었다. 심지어 중고책.
그 책은 바로 아주 옛날, 그분께서 만 16살에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첫 직장의 역사가 적인 책이라고 한다. 학교 끝나고 야간과 주말에 일하며 처음으로 했던 사회생활. 책의 표지를 보시자마자 바로 맨 뒤에 있는 인덱스에서 호놀룰루를 찾아보시고는 그 페이지를 펼치셨다.
오래된 흑백사진에는 옛날 그대로의 건물 내부 모습이 담겨있었고, 그분은 그 사진을 보며 당시의 음료수 기계 소리와 팝콘 향기까지 기억난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몇 주는 어디서 일했고, 그다음 어디 부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아직도 다 기억난다고. 열여섯으로 돌아간 것 같은 신나는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어쩌면 스치듯 얘기했을 옛날 옛 적 일을 기억하고
절판된 책을 어렵게 찾아내 선물한 팀원들도 감동이고,
그 선물로 추억을 되살려낸 직원분도 감동이었다.
나는 과거를 생각하면 항상 좋은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일, 나빴던 일이 먼저 떠오르고는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완벽한 무언가, 또는 새로운 일들을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새 거만을 쫓지 않는다. 오래된 물건은 그만큼 나에게 잘 맞는 물건이란 뜻이고, 익숙한 것들은 그만큼 나에게 최적화되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설레는 건 새로 만나는 누구와도 할 수 있지만, 오래되고 익숙해서 소중한 인연은 아무나 와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만큼의 시간과 추억과 정이 켜켜이 쌓여가야만 하는 특별한 관계이니까.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이 순간에도 수 십 년 뒤에 돌아보면 그리울 그런 추억이 되겠지? 지금을 행복한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재를 최선을 다해 잘 살아내야 할 텐데.
나는 일을 많이 하면 안 되는 체질인가 보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일이 많아서 하루에 다 못 끝내는 날이 대부분이다. ㅜㅜ 나는 성질이 급해서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퇴근하면 잠도 안 오고 스트레스받는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전 사무실에서는 일이 없어서 이번 사무실에서는 일이 너무 많아서 ㅠㅠ 중간은 없는 거니...
워라밸에서 라이프가 없으니 워크만 남았다. 한국에서처럼 야근하고 주말 출근해서 일이나 더 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회사가 인생이 되어버리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렇다기에는 월급이 너무 하찮은데?
12월은 지출이 상당한 달이었다. 회사 일은 바쁘고 몸은 힘들고 점심 저녁을 계속 외식했더니 일주일 만에 1,000불 넘게 썼다고 알림이 왔었다. 게다가 내년 남편 시험 등록 전 지출될 비용이 1,000불 넘게 결제해야 하고, 건치였던 남편 치과치료 500불 지출에, 다음 달 월세까지 내고 나면 ㅠㅠ 도대체 얼마를 쓰는 거야
남편은 돈을 아낀다고 샘스클럽 멤버십을 사서는 쇼핑을 더 자주 하게 된 거 같다. 대용량이라 플라스틱 쓰레기도 엄청 많이 나오고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은 건가 의문스럽기도ㅠㅠ 그래도 장보기 좋아하고 요리하기 좋아하는 남편이 오랜만에 관심거리가 생겨서 다행이기도 하다. 남편은 점심값 아끼라며 여전히 점심에 간단히 먹을만한 도시락이랑 과일까지 씻어서 챙겨주고 있다. 참 한결같은 사람.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집안일에 손 놓고 있다가 곰팡이에 벌레에 개판되는 거 보고 새해맞이 청소를 살짝 했다. 밤이 되면 스산해진 날씨에 옷장에 겨울이불을 고이 모셔두고도, 나중에 빨래해서 다시 넣을 생각 하니 귀찮아서 식탁보에 비치타월을 겹겹이 덮고 잔다.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귀차니스트 ㅠㅠ
옛날 같으면 11월부터 연말이라며 계획 세우고 했을 텐데, 뭔가 새해가 코앞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바빠서일까 나이 들어서일까 귀찮아서일까. 내년에도 남편이 시험을 안 보고 이렇게 똑같이 지낼까 봐 두렵다. 남편은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더 이상 새해가 기대되지 않는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 일단 내 새해 다짐.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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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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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