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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Aug 13. 2024

아가리 워커 남편

불공평한 mental load 에 관하여

퇴근길, 마트에서 치킨을 사 와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후라이드 치킨이 거의 반 값 할인을 하기 때문 ㅋㅋ 내가 온라인으로 장본 거 배달 왔으니까 나는 집에 먼저 들어가서 정리하고, 남편은 마트 가서 바나나나 과일을 사 오라고 했다. 빵이나 소시지 두부 같은 가공식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과일이나 채소는 직접 보고 사는 게 좋다고 얘기하면서. 지난번에 산 감자가 썩어서 별로였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러자 남편 왈, “감자는 좀 덜 익어서 그런 거 같던데. 좀 더 오래 요리해야 돼~”

......


남편은 운전하고 나는 피곤해서 조수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 전환을 해보고 싶었나 뜬금없는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오늘 배달 온 거 뭐 샀어?”

......


집에 도착해서 부산하게 움직이며 마트 가주는 다정한 남편 코스프레를 하더니, 치킨이랑 빵을 사 왔다.

......




Mental Load


공평과 평등을 외치는 MZ부부들에게도 절대 반반 나눌 수 없는 “정신적 부담”.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이 끊임없이 들어간다.


요리를 하기 전 남아있는 식재료를 파악하고,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어떤 메뉴를 만들지 정하고, 어떤 물품을 새로 사야 하는지 정하고, 실제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짐을 이고 지고 가져오고, 식재료를 다듬고 정리하고 냉장고에 넣고 나서야 요리할 준비가 된다.


요리를 할 때에도 가족 구성원들의 식단이나 선호도, 영양소 등을 고려해야 하고, 몇 시에 식사를 할 수 있게 시간 맞춰 준비해야 하며, 각각의 스케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앉아 밥을 먹으면 또 디저트나 입가심 없냐고 하는 인간들 꼭 있다. 그러고 나면 설거지해야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주방 뒷정리 하고...




주둥이로만 일하는 인간. 터진 입이라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인간.


진짜 하루에 한 번은 묻는다. “지금 몇 시야?” 사람 꼭지 돌게 만드는 질문. 벽시계를 보던지 핸드폰을 보던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어디 가는 날마다 묻는다. “오늘은 우리 어디 가?” “거기 가는 길 알아?” “거기는 뭐가 유명하대?” 일정 알려줬으니 네가 찾아볼 수 도 있지 않니?? 핑거 프린세스 납셨고요~~


자기 회사 일도 나한테 묻는다. “그거 언제까지였지?” “그거 어떻게 하라 그랬더라” 나한테 한 번 말해주고 내가 기억할 줄 알았대. 내가 니 개인 비서냐?? 니 일은 네가 해야지??


인터넷 쳐보면 바로 나오는 상식이나, 가격, 지역 정보 등 전부 나한테 물어본다. “그게 뭐였지?” “너 혹시 그거 알아?” 아니 너네 나라에서 사는데 그런 건 네가 더 잘 알지 않겠니?




Married Single Mother Phenomenon


‘남편 있는 싱글맘’ 이라는 표현이 있다. 남편이 있으나 마나 하등 도움이 안 돼서 남편은 있지만 싱글맘처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우리나라 말에도 ‘자유부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남편의 부재 시 느끼는 자유.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사만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서 느껴지는 자율성. 물어보고, 답장 기다리고, 이거 저거 챙겨주고, 확인하고, 온갖 뒤치다꺼리 안 해도 되는,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독립성. 자유 의지.


요즘 내가 그랬다. 아이는 없지만, 시험 공부한다고 모든 집안일을 나한테 일임한 남편. 그.런.데. 일임한다고 했으면서 아가리를 놀린다.


자기 빨래를 세탁기에 안 넣고 왜 안 빨았냐고 하거나

식세기 돌린 거냐고 자꾸 물어보거나

장 봐오면 어느 마트에서 산거냐 어느 브랜드냐 따져내거나

이거 왜 재활용 안 하냐고 딴지 걸거나

냄비 주문했는데 테플론 없는 거 맞냐고...


그럴 거면 네가 하라고!!!!! 나한테 일임한다고 했으면서 따질 건 그렇게 따지면 일임이 아니잖아?? 마이크로 매니징이지????


나도 하루종일 일하고 와서 힘든데.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해야 하는데 리스트를 만들고, 아마존 프레시로 장 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건데. 모든 신경이 날 서있고 생존 모드로 돌입해서 죽지 않을 만큼만 생활했다고!!!




Equal Partner


남편은 경제적 부담감이든 집안일이든 뭐든 나눠지고 싶어 한다. 다른 말로 절대 100%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남편이 나가서 돈을 벌어오면 내가 집안일을 다 도맡을 수 있는데,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무조건 맞벌이에 집안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꼭 토를 다는 인간이 내 남편이라니???


“샤워실에 곰팡이 낀 거 청소했네~~ 청소하느라 고생했어”

“세면대에 물때 엄청 까맣게 꼈던데 네가 닦았구나~~ 진짜 깨끗하다!!”

ㅇㅈㄹ 하고 앉았다 진짜. 그래서 네 눈에도 보이면 네가 닦았어야지 왜 놔뒀냐고 하면, 자기도 치울라도 했다는 말만 반복이다.


내가 시켜서가 아니라 네가 미리 알고 해야지? 집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몰라???

싱크대가 차 있으면 설거지를 해!!! 식세기가 가득 찼으면 세제 넣고 시작버튼 눌러!!! 어려운 거 아니잖아??

치약을 다 썼으면 새 거를 꺼내 놓아야겠지? 새 걸 꺼냈으면 헌 거는 버려야지????

더러워 보이면 바로 닦아 제발... 네가 안 하면 내가 해야 하는데, 지금 이걸 누구보고 하라고 남겨두는 건데???




그럼 남편이 묻는다. “내가 뭘 도와줄까?” “내가 뭘 하면 돼?”


가사분담을 한다는 건 네 담당인 일들은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네가 이미 다 해놓은 일이 되어있어야지... 네가 결혼해서 6년 동안 샤워실 청소며 곰팡이 청소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청소기 필터며, 환풍기 먼지며, 바닥 걸레질 한 번 해본 적 없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할게” “네 말대로만 하고 있잖아! 뭐가 문제야?”


계약서에 적힌 층간소음 배려 시간을 알려주며 지금은 식세기를 돌리기에 너무 늦었다고 하면 저렇게 시비를 걸어온다.

사용 설명서에 이렇게 쓰여있으니까 이렇게 하자고 제안해도 저렇게 받아들인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Intermittent Husband


여성의 뇌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다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이 안전한 지를 확인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남성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우리 남편도 그럴 것이다. 본인은 이해할 수가 없으니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본인은 느껴본 감정이 아니니 어떻게 위로해 줄지도 모르겠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받는다고 느껴져서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시키는 거 다 했는데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듣고 당연하다는 듯 지나가면 짜증 나겠다, 혼자 살면 이런 일로 스트레스 안 받을 텐데 하면서 후회할 수도 있지.


더 이상 불안함에 이것저것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진정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에야, 자신의 진심과 속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데, 서로에게 그런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계속 불안해했다. 물론 나의 불안은 아주 타당했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나의 불안이 남편을 실패한 남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남편이 실패할 때마다 실망하고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니 남편은 나를 보면 나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단점, 약점, 잘못, 실패만이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스스로를 보지 않는데 나를 통해 그렇게 보이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과의 간극을 모른 채로, 자신의 단점에 눈이 멀어 보지도 못한 채로. 변화하기도 싫고 발전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속 바뀌고 고치라는 나의 곁에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 본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나를 탓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된 것 같다.




간헐적인, 그러니까 풀타임 말고 파트타임 남편.


내가 회사에 집안일에 지쳐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면, 남편은 귀신같이 알고 멀어졌다. 시험공부해야 한다며, 친구를 도와줘야 한다며, 시댁에 일이 생겼다며. 그쪽에서는 좋은 말 예쁜 말만 듣고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잘해주는 사람들이니까.


나도 남편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면, 남편에게서 도망쳤다. 친정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밖으로 나돌거나, 갑자기 여행을 떠나버리거나.


남편은 간간이 나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어쩌면 파트타임 아내.




Walkaway Wife Syndrome


나는 사랑은 행동으로 보인다고 믿는다.

남편은 사랑을 말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

나에게 남편은 아가리 워커이며 언행불일치이다.

남편에게 나는 곰 같은 아내이자 억척스러운 아줌마일지도 모른다.




요새 남편이 하는 말들 중 제일 듣기 싫은 거. 사과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고맙다고 한다.


그래 안다. 그게 자존감 높이는 대화법에 더욱 효과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맨날 똑같은 잘못/실수하면서 나보고 고맙다고 하면 염치가 없어 보인달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이 나를 이용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후회가 느껴지지 않아 언제든 반복될 것 같은 불안이 몰려온다.


아, 그렇구나. 그게 나의 불안이었다.


지난주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진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순간에 혼자 남겨졌다. 남편은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차라리 남편이 없으면 덜 힘들 것 같았다. 눈치 볼 필요 없이, 기대하고 실망할 필요 없이.


그런데 남편이 다시 돌아오는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도 항상 내가 바닥을 찍을 때이다. 결국 밤을 새 가며 시험 준비를 끝낸 남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밥 하는 것만이라도 도와주면 내 부담감이 줄어들 것 같다. 이번 주도 어찌어찌 버텨지겠지.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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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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