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 나는 제일 해주기 싫은 말
처음에는 할인이 8월까지이며, 다음 달부터는 월세가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래 한 달이라도 반값에 해주는 게 어디야, 비싸도 공과금에 관리비 포함이니까 괜찮다, 생각했다.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곳은 전부 기숙사나 사택이 더 비쌌다. 그러니 뭐... 2,700불 정도면 받아들일 만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미팅하고 있는데 갑자기 본부장님, 부장님께서 오셔서 9/15일까지만 사택을 빼주면 된다고, 시간적 여유를 주고 싶어서 결정되자마자 알려준다고 하셨다. 띠로리... 내가 이 사택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ㅠㅠ
6월에만 이사를 세 번을 했는데... 또 이사라니 ㅠㅠ 내가 이 집 청소를 을매나 열심히 했는데! 손이 퉁퉁 붓고 습진이 생길 정도로 반짝반짝 쓸고 닦았단 말이다!!! 심지어 샤워실도, 세면대도, 싱크대도, 주방이랑 화장실 환풍기까지 ㅠㅠ
청소하고 짐정리하고 회사까지 다니느라 나도 코피에 한쪽 눈에는 다래끼까지 났는데... 사택에서 계속 살 줄 알고 물건은 또 얼마나 사들였으며, 은행이랑 우체국 주소까지 바꿨고 신분증도 이 주소로 발급받았단 말이야 ㅠㅠ
그 시험은 3차까지 통과해야 하는데 1차 시험은 그래도 그나마 양호하게 예정보다 1년 늦게 보고, 2차 시험을 10번을 미루고서야 5년 만에 보고, 3차 시험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하필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 뭐 하냐면, 자고 있다. 어제 늦게 주무셨다고...
나는 사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남편이 시험을 안 봐도 그냥 이렇게만 살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사택도 빼야 하고, 시험도 아직까지 못 끝냈다니? 어쩐지 인생이 술술 풀리더라니.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냥 한 여름밤의 꿈이었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에요? 8/5에 프로젝트 하나 들어갔는데... 본인이 한다고 사인했으면 그전에 시험을 끝내던지 했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프로젝트 별로 계약을 땄으면 일정도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시기 별로 중요한 일정, 마감일, 그리고 팀원들이 해야 할 업무들이 정해져 있고, 모두 동의하고 들어가는 건데!!!
게다가 2차 시험 끝나고 그렇게나 성대하게 가족, 친구들 다 불러 모아서 축하를 했으면! 3차까지 통과할 생각을 해야지!!!!! 왜 2차 끝내고 홀로홀로 놀고 나서 3차를 못 보냐고요!!!!!!!
이미 2차 시험부터 너무 많이 미뤘기 때문에 연장 절대 불가라고 공지했었다. 근데 그 절대 불가를 가능하게 만든 남편. 아니 절.대.불.가. 라면서 요! 왜 연장해 주냐고요! 이놈의 미국 시스템!!!!! 이렇게 자꾸 봐주니까 인간이 나약해지잖아요!!!! 연장을 안 해줘야 밤을 새워서라도 어떻게든 할 거 아닙니까!! 연장받으니까 바로 또 대낮까지 쳐 자고 있고 하...
남편은 성별을 떠나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손에 꼽히게 깔끔하고 물건들 제자리에 그나마 잘 놔두는 사람이다. 저 양말은 자기가 시험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항의의 표시이다. 나도 스트레스받아서 남편을 원망의 눈길로, 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저래놓고 나갔다.
참. 나.
저기요, 지금 님이 잘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나는 지금 남편과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이 사무실에 지원한 이유는 남편이 내가 여기서 일하면 우리가 사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내 자리는 단순 사무직이라 정규직이고 남편은 전문직이라 아직은 계약직이다.
사택에 처음 입주했을 때 내가 사이즈 딱 보니까, 애초에 여기서 2인 가족이 이 가격에 살 수가 없는 거 같았다! 그래서 계속 남편한테 우리 여기서 계속 살 수 있는 게 맞냐고 확인했었는데, 남편이 우리가 일하는 한 살 수 있다고. 하 그걸 믿은 내가 바보인 건가? 남편이 나도 취직하게 하려는 큰 그림?
내 생각대로 원래 회사에서는 우리가 타주에서 이사 왔으니, 집을 찾을 때까지만 임시로 사택을 제공해 준 것이었고, 곧 성수기라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이해가 간다 회사니까 당연히 돈 버는 일부터 해야지. 이 회사는 3/4분기가 가장 피크이고 4/4분기부터 하향세로 거의 1/4 2/4분기에는 진짜 일이 확 줄어드나 보다. 가을 겨울 벌어서 봄 여름 나는 듯 ㅠㅠ 거의 보릿고개다.
아니 거기서 일하면 돌아가는 상황 뻔히 보이는데 남편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거지? 아마 처음부터 부장님께서 솔직하게 설명해 주셨었는데, 대가리 꽃밭인 남편이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들어서 착각한 것 같다. 하... 회사에서 자기를 엄청 좋아해서 프로젝트 계약에 사택까지 반값에 줬다고 생각했나? 너 뭐 돼???? 님... 얀테의 법칙 좀 배워야 할 듯요. ㅠㅠ
이보소, 생각이란 걸 좀 해보세요~~
아무 생각 없는 남편. 우리가 사택에서 나와 월세 계약을 직접 하면 사택비보다 훨씬 절약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진짜 어디 모지리세요? 집 계약하면 인터넷, 전기, 수도, 하수도, 쓰레기, 가스를 포함한 공과금에 주차비랑 관리비까지 나갈 게 얼마나 많은데?
진짜 세상 물정 모르시네. 요금을 한 20-30년 전 가격으로 생각하고, 월세도 싼 데만 찾고 있다. 아니 여기 총기사고가 일주일에 한 두 건씩 발생하는 도시인데, 월세 싼 데서 살면 우리 다 죽어요~~ 게다가 지금은 사택이라 가전제품 펑펑 쓰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 쓰고 원시생활 하는 것처럼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돈 내고 지금 같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자기가 얼마나 많이 쓰는지는 생각 못하면서.
현실적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것과, 그냥 덮어놓고 다 잘 될 거야~~ 넌 할 수 있어~~ 하며 낙관적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맞벌이 부부면 집안일 (실제로 하는 집안일에 더해서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까지) 나눠서 해야지...
일하면서 시험 공부한다고 뭐 집안일도 안 하고 요리도 안 하고 나한테 다 일임해 놓고, 나중에 공과금 많이 나오면 무슨 잔소리를 할지 진짜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ㅠㅠ 그나마 사택에 마련된 가구들이랑 생활잡화들 아마존에 똑같은 거 리스트업 해놨다. 그대로 주문해야지. 뭐 알아보고 하는 것도 지친다 벌써.
느려서 거기까지 사고가 안 미치는 건가? 사람이 참 전근대적이고도 근시안적이야, 한결 같이 ^^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남편이랑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나는 남편이 시험 공부한다고 빵꾸 낸 주말 스케줄에 대타로 나가게 됐다. 하... 진짜 같이 일하기 싫은 스타일. 만약 내 사수나 부사수였으면 퇴사 각인데, 하필 남편이라...
어제 퇴실 통지를 받았을 때, 단순 사실 전달이지만 내용 자체는 나에게는 갑작스러울 수 있으니 본부장님과 부장님께서 매우 부드럽게 잘 설명해 주셨다. 알겠다고 이해한다고 하는데도 자꾸 설명해 주셔 가지고 ㅠㅠ 나도 나는 사택 살게 해주는 줄 알고 지금 이 사무실 지원해서 일하는 거라고 설명드렸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시며 다시 논의해 보겠다고.
근데 기대는 안 한다 일개 사무직 한 명이 뭐... ㅠㅠ 사실 이미 정 털림. (나의 최대 단점. 한 번 정 털리면...) 사택에 계속 살 줄 알고 이 회사에 작게나마라도 도움이 되고자 온갖 일들 다했는데. 물론 내 성격상 어차피 할 일들이지만 그래도 마음가짐이 달랐단 말이지. 원래 우리 계획은 그동안 내가 외벌이었던 것처럼 향후 몇 년간은 남편이 일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었다. 나도 좀 쉬었다가 공부를 더 하던지 여행을 가던지 하고 싶었는데.
그니까 이사는 별 문제는 아니다, 그냥 몸이 힘들 뿐. 메인랜드라 배송도 금방 오고 전부 빌트인이라 가구도 많이 필요 없다. 캐리어로만 이사를 세 번을 했었는데 사택 오고 한 달 만에 짐이 한 세네 배로 불었다 ㅠㅠ 휴 일단은 H마트에서 먹을 거 짝으로 떼왔는데 그거부터 먹어치워야 한다. ㅋㅋㅋ ㅠㅠ
내가 사다 논 시리얼과 내가 사다 논 식빵에 내가 사다 논 선플라워 버터와 내가 사다 논 꿀을 발라 아침으로 먹고 다시 취침에 드신 남편. 낮 1시, 거실에서 실컷 자고 일어난 남편이 매트리스를 방 안으로 옮겼다.
“어? 양말 치웠어?”
“응. 내가 다시 (낮잠 잘 때) 신을 수 있게 양말 안 치우고 놔둬줘서 고마워.”
“그래, 양말 치워줘서 고마워...”
우리의 실제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래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불평불만이 많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야 하고 내 능력 밖의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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