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가장의 애환에 대하여
저는 결혼하면서 남편의 나라로 이민왔어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직장을 뒤로하고 남편의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게 됐습니다. 남편과 저의 모든 가능성을 놓고 보았을 때,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파트타임 일을 전전하다가, 취직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지도 오래입니다.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였던 제가 외벌이 가장이 되었습니다. 취업허가 받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4년 째 쉬지않고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몰랐던, 가장으로서 갖는 심리적 압박은 정말 커요. 수입이 끊기면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으니 마음대로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회사로 출근해야 하죠.
저희가 결혼하기 전, 저는 모든 상황을 다 인지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저는 남편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시간을 갖고 준비하는 것을 응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 후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5년이 넘도록 아직도 준비가 덜 됐다고 해요...
올해는 남편이 취직할 수 있을까?
올해는 우리 이사 갈 수 있을까?
한국나이로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이 준비에도 끝이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요.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은 억울함을 참아요.
내가 미국에 적응 못하고 수입이 없었더라면 남편이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꼈을까?
내가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더 내조를 해줬더라면 남편이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신혼 초에 그렇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취준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우리 관계의 역학구조가 달라졌을까?
남편이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꿈만을 쫓지 않고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 남편이 백수라서 불안한 건 저이지 남편이 아니에요. 당사자는 자신의 꿈을 믿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을 뿐이죠. 다만, 그 과정이 처음 계획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것뿐이예요.
저는 왜 남편의 백수 기간을 순수하게 응원해줄 수 없을까요?
저는 계속 남편에게 실망스럽고 한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까요?
저는 생판 남에게 자신만의 꿈을 꾸라는 이상적인 말은 잘만 하면서, 왜 남편에게 똑같이 해줄 수 없을까요?
만약에 남편이 회사 일이 너무너무 바빠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낮없이 야근해서 남편이 집에 올 시간도 없었다면, 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 불만 없이 남편의 일을 응원하면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다른 건 포기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제가 일 욕심이 많아 회사에서 승진을 노리고 일에 몰두했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제가 커리어우먼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남편이 저를 도와줄 수 있었을까요? 제가 밖에 나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할수록, 가정에도 관심을 충분히 보여줄 만큼의 여유가 있었을까요?
이런 가정은 어쩌면 부질없는 상상일지도 몰라요. 저희 남편은 지금 본인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은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스스로도 무능력하다 느껴진다면 상처받을 것 같아요.
남편의 능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라는 사람 자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해요. 하나의 인격체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존엄성, 행복 추구권, 감정의 독립과 선택의 자유... 부부라도 가족이라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침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사실 저는 남편이 아닙니다. 남편도 제가 아니에요. 남편은 남편의 시간대로 살아가고 있고, 저는 제 시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사 갈 줄 알고 승진 신청도 안 했던 건 나의 결정이었습니다.
남편의 일정에 억지로 나를 맞춘 것도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돈을 버는 것은 남편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아가야 했었는데, 남편의 아내로만 살며 스스로를 낮추고 있었습니다.
만약 입장이 바뀌어 남편이 외벌이이고 제가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처지였다면, 남편은 어땠을까요? 오히려 사회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으니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을까요? 남편이 지금 제가 느끼는 억울함, 부담감, 실망감을 가진 채 저를 대했다면, 제 스스로가 조금 슬펐을 것 같기도 해요.
중심을 나에게로 다시 잡아 내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할 차례입니다.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매 순간 질문하고 답을 찾아 고민할 거예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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