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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16. 2023

“당신은 집안일을 내가 꼭 시켜야만 해?”

낡디 낡은 신혼집이 불만일 때

저는 하와이에 살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을 밝히면 많은 분들께서 굉장히 부럽다고 말씀해 주시는데요. 하와이의 높은 생활비와 집세, 그리고 열악한 거주환경을 고려해볼 때, 저에게는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요. 특히나 지은지 70년 된 스튜디오 아파트인 저희 집은 정말 낡디 낡아서 처음 입주할 때 너무 속상했어요.


당시의 저는 집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아니, 세면대가 이렇게 물이 안 빠진다고? 하와이 진짜 꼬졌네! 여기서 대체 어떻게 산담!”

“다 쓰러져가는 월세 집에서 언제까지 더 살아야 돼? 여기서 살기가 너무 스트레스야!”

“남편이 빨리 이직을 해서 본토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대체 우리는 언제 이사 가는 거야!!”

“내가 너 때문에 한국 생활 다 포기하고 이민까지 왔는데, 이런 건 당연히 네가 더 신경 써야지!”

그리고 나는 화가 잔뜩 난 채 남편이 알아서 세면대를 고쳐놓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느긋하고 여유로운 남편은 세면대의 물이 늦게 빠지던 말던 신경도 안 쓰고, 그러니 세면대를 고쳐놓을 생각조차 못했죠. 오히려 불편한 건 저였어요. 더러운 꼴을 못 보니, 세면대를 락스로 닦아야되는데, 물이 제대로 안 빠지니 쓸 때마다 때가 끼고 더러워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남편에게 집안일 좀 알아서 할 수 없냐고, 더러운 게 보이면 치우면 안 되냐고 화를 내고 싸우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매일 청소하고 있는 제게, 자신이 더럽다 느껴지면 치우겠다고, 그 전에 제가 다 해버리니까 막상 청소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어요.


남편은 자신만의 기준대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저의 기준보다 낮기 때문에 제가 항상 먼저 집안일을 끝내버린 상황인 거죠. 그것이 남편의 변명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말을 믿어준다면, 남편에게 가사분담에 기여할 기회를 제가 박탈해버렸고, 오히려 남편은 그것이 불편(?)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편이 집안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가 남편을 먼저 존중한다면 남편도 저를 존중해주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남편의 기준 역시 존중해주기로 다짐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편은 굉장히 느긋하고 느린 사람이니 그가 뭔가를 할 수 있으려면 시간을 넉넉히 두어야 했어요. 즉, 제가 넉넉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그만큼 관대하고 차분하고 바다와 같은 인내심을 발휘해야지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었어요. 저 역시도 조급하고 신경질적이고 꼰대 같은 사람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함께 있으면 편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 모습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거죠.




그러므로 작은 일은 일주일, 큰 일은 한 달, 중요한 일은 두세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시켜야 해요. 아, 시키기가 아니라 부탁하기 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남편을 닥달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보내면 되요.

그리고 남편이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 남편의 결정을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도록 저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킵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자기가 안된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테니 앞으로는 쓸데없는 짓 덜 하겠죠. 스스로 깨달아야 변할 수 있어요. 아마 누구나 다 그럴 거예요.


예를 들어 세면대가 막혀도 1-2주일 정도 불편하게 지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탁합니다. 혹은 내가 기다릴 수 있는 기한을 정해 부탁합니다.


“여보, 당신 시간 될 때 세면대 좀 고쳐줘.”

“세면대가 막혔는데 몇월 며칠까지 고쳐줄 수 있어?”

“세면대를 고쳐야 하는데, 언제까지 못고치면 기사님을 부를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세면대를 고친 후에 제가 할 반응입니다. 남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져도, 남편이 빨리빨리 고쳐놓지 않았다고 느껴져도, 또는 내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데, 남편이 생색낸다고 느껴져도,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해요! : )


화장실 갈 때마다 “세면대 물 진짜 잘 내려간다~”

“벌써 고쳤네! 이렇게 빨리 고쳐줘서 정말 고마워!”

“화학약품 썼을 때보다 훨씬 더 뻥 뚫린 것 같아!!”

“수리기사 부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야!”

“나도 세면대 깨끗하게 청소해둘게! 당신 덕분에 이제 걱정 없다!”


그러면 예전에는 2주일, 어쩔 땐 일주일, 요즘에는 2-3일 안에는 고쳐져 있어요. 그리고 예쁜 말로 반응해주면 그 기간이 점점 더 빨라지기도 합니다.




며칠 전 남편이 세면대와 샤워실 전등, 옷장 문을 고쳐주고, 변기 청소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해줬습니다.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에요.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꼭 시켜야지만 집안일을 하더라도, 지금은 집안일을 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 남편에게 표현해 보아요.


“정말 고마워!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고장 난 곳들을 손봐주는 남편이 든든해!”

“나는 전구 커버를 열지도 못했는데 역시 남편이 기술이 좋아!”

“따로 수리하시는 분 오기 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역시 집에 당신이 있어야 해! 당신이 이런 일들을 해결해주니까 마음이 놓여!”

“당신이 최고야! 사랑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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