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원망할 수 있는 아주 정당한 사유
아내가 기대하는 바람에
아, 내가 기대하는 바람에...
나는 여기 말고 어디로든 이사 가고 싶었다. 그런데 또! 시험을 못 봤으니 이사도 못 간다고 한다. 대체 왜!! 왜 시험을 안 보는 거지? 왜 이사도 못 가는 거지?
나는 남편이 제대로 노력을 안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쉴 거 다 쉬고,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고, 쓸데없는 짓 할거 다 하고, 대체 언제 일을 하냐고!! 빨리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야 이직을 할 거 아니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사냐고!!! 속으로는 울화통이 터지지만 겉으로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남편이 공부하는 시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주에서 준비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남편이 시험을 봐야지만 이사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과 그녀들의 성공한 남편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남편이 좀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남편의 수많은 장점과는 별개로. 그냥 속으로 되게 한심하게 보고 있었나 보다. 시부모도 안 해주는 학바라지를 와이프가 해주고 있는데, 시험도 안 보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남편이 한심했다.
평생 꿈이라면서 왜 노력하지 않아?
나는 내가 외벌이 해서 뒷바라지하는 건 진짜 상관없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은 너무 한심하다. 남편은 분명 본인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그 최선이 나에게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런 나의 인지적 오류는 바로바로바로 "남편이 본토로 취직을 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다. 즉,
= 남편은 본토로 이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남편은 본토로 이직하고 싶어 한다
= 그러므로 남편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본토로 이사 갈 수 있다!
이렇게 내가 남편이 취직할 능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남편의 오징어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얼른 본토 회사에 지원서 내봐!
그 회사 좋던데 합격하면 정말 좋겠다!
그 동네는 정말 살기 좋을 것 같아!
더 좋은 회사 갈 수도 있겠다!
나는 남편이 지원서를 낼 때마다 그 동네의 집값과 치안, 마트 위치며 한인사회를 확인하고 있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엄청난 실망을 해왔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아직도) 걸고 있었고, 그런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자 남편은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그냥 자기만의 세상에서 평화롭게 아주 잘 살고 있었는데, 나와 결혼하면서 오징어 게임에 합류하게 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한국인인 나를 만나 무한 경쟁사회, 능력주의, 결과주의,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상향 평준화된 한국사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알쏭달쏭 스마트 세상에 강제로 들어오게 된 것!!!
나는 결혼에 너무나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나의 온 세상의 전부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그 기대가 하나씩 산산조각 날 때마다 이렇게 감정의 폭풍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나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나라로 이민 왔고, 남편의 피부양자로 이민 비자를 받았고, 처음 1년은 취업도 못하고 출국도 못하는 시민권자 남편의 '아내'로만 존재했고, 그 후에도 3년이나 더 총 4년을 시민권자 남편의 '아내' 라는 조건부 신분으로 존재했는데!
이사는 나에게 하나의 현실 도피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을 무능력하다고 원망할 수 있는 안전장치였다. 거봐라 (그렇게 호구처럼 이용당하더니) 너는 니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냐고. 우리의 묵히고 묵힌 여러 가지 문제들을 모아 모아 원망을 가득 담아 보낼 수 있는 아주 정당한 사유였다.
본토 회사들: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744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