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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2. 2024

나는 남편의 가능성을 사랑했던 걸까?

내일 모레 마흔인데... 아직도 취준해?

아이 없고, 집 없고, 차 없고, 빚 없는

신혼부부라고 나를 소개했었다.


결혼하고 신혼을 스튜디오(=원룸)에서 월세(=150만 원)로 시작하고도

만족한다고. 행복하다고. 충분하다고. 여기서 5년을 살고 있다.


그땐 그랬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어쨌든 우리 사정에 이게 최선이니까.

우리 집만큼 월세가 낮으면서도 에어컨이 설치된 콘도는 찾을 수 없다.

한국마트에 걸어서 갈 수 있고, 회사로 가는 버스가 여러 대인,

쇼핑센터와 비치파크가 가까이 있는, 그런 집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서른에는 진심으로 만족하고 진심으로 충분했다면,

서른다섯이 된 지금은... 이성적으로, 머리로, 만족하고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격이 돼버렸다.




한국에서 내 나이라면,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벌써 과장으로 승진하는 나이. 과장이라니... 미생에 오상식 과장이 오 과장이었는데...

결혼하고 정착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는 친구도 있는 나이. 엄마라니... 학부모라니...

청약이니 투자니 집 한 채씩은 다들 있고, 이제는 차를 장만하는 나이. 자가라니... 자차라니...

명품 가방, 최신 가전도 척척 사고, 피부 관리에 운동도 매일 하는 나이. 너무 어른 같잖아? 뭔가 비현실적이다.


내가 한국에서 쭉 살았더라면 비슷하게 할 수 있었을까?

평탄하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 수 있었을까?

지금쯤 어딘가에 정착해서 안정적인 삶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렇다. 비교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차피 상대적이니까.

하지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다는 건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서른에 결혼하면서 서른둘에는 이사 갈 줄 알았었다. 아무리 늦어도 서른셋에는. 서른넷에는...

그래, 내가 조금만 기다려주면 남편이 취직할 수 있을 줄 알았었다.


남편이 취직만 한다면 우리도 평범하게 살겠지.

알뜰살뜰히 돈 모아서 집도 사고, 자녀계획도 하고, 나도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5년이 지났고 남편은 여전히 취준생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미니멀라이프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법으로 굳어졌다.

집이 좁아서 물건을 늘릴 수 없다.

능력이 없어서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없다.

준비가 되지 않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

내 월급이 필요하니 나는 퇴사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모두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

적게 소유하고,

작은 공간을 관리하며,

나를 먼저 채우고,

내 일을 하는 사람.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는 곤도 마리에도,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아이 셋을 낳으니 정리하는 걸 포기했다지 않는가.




마흔이 다되어 가는 우리 남편은... 어쩜 그렇게 만족이 쉬울까?

어쩌면 내가 남편을 (원래도 그랬지만 더)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남편이 원하지도 않았던 희생을 자발적으로 해가며,

남편의 호의를 받기보다 더 돌려주려고 애를 쓰고,

남편이 일하지 않아도 우리 생활이 유지가 되도록 내가 억척스럽게 산 걸까?


가끔 이렇게 못난 생각에 울컥할 때가 있다.

가끔이 아니라 사실 자주. 그것도 주기적으로.

남편이 계획을 안/못 지킬 때마다, 남편이 실패할 때마다, 남편에게 실망할 때마다.




남편은 진짜로 취직을 하고 싶은 걸까?

혹시 취직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건, 사실 그만큼 원하지는 않는 거 아닐까?

노오력을 하지 않는 남편이, 이렇게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남편은 가능성이 있는 현재 상태에 중독된 것 같았다.

남편은 그냥 지금 이 '꿈을 꾸는' 상태를 즐기는 걸까?

실제로 본인의 꿈을 이루기에 부족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노력한다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 걸까?

결과 없는 최선에 만족할 수 있을까?

포기할 때를 아는 게 더 현명한 것 아닐까?




나도 그런가?

나는 남편을 사랑했을까, 아니면 남편의 가능성을 사랑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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