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눈물의 장기투자
주식은 도박과 같다 했던가,
나도 조금씩 중독의 길을 걷고 있다.
조금만 더하면...!
이것만 넘기면...!
다음에는 진짜...!!!
'어닝쇼크'란 기업이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여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일컫는 경제용어다.
나는 항상 최소한의 실적, 최대한의 손실을 예상하는데...
우리 남편은 심지어 그 예상보다 훨씬!!! 훠어어어어어ㅓ어어ㅓㅓ얼씬 저조하다.
하락세 중의 하락세.
벌써 8년 가까이 하락장.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
우리 남편에게도 한 방이 있을까?
나는 왜 손절하지 못하고 이 파란 그래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가!
남편이 파트타임 일을 그만두며 처음 1-2년은 버틸만 했다.
꿈을 이루는 과정,
그 어려운 시기를
내가 지원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둘이 같이 힘을 합쳐 으쌰으쌰 노력하고
서로를 위해 짬을 내어 시간을 함께 보낸다거나
다독이고 의지하며,
부부가 중심이 되는 그런 모습을 꿈꿨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남편은
시험을 등록도 안 한 채로 무기한 미루는 모습에,
우리가 합의했던 결혼생활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남편이 책임감이나 실천 의지를 보여주기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안 살았을 텐데...
내가 악처가 된 기분이다.
모든 건 상대적인 건데...
내가 미국에 적응 못하고 피부양자로만 있었더라면 남편도 책임감을 느꼈을까?
내가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더 내조를 해줬더라면 남편이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신혼 초에 그렇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취준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우리 관계의 역학구조가 달라졌을까?
남편이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꿈만을 쫓지 않고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내가 퇴사를 할까?
그러면 남편이 금전적인 압박을 받아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하지 않을까?
차라리 우리 이혼을 할까?
그러면 최소한 내가 헛된 기대에서 가짜 결혼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도 안 해주는 학바라지를 내가 왜 하고 있나...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일이 너무너무 바빠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낮없이 야근해서 남편이 집에 올 시간도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아무 불만 없이 남편의 일을 응원하면서, 나는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반대로 내가 일 욕심이 많아 회사에서 승진을 노리고 일에 몰두했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어땠을까?
나라면... 적어도 배우자가 나 때문에 이민까지 왔다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은 느꼈을 것 같은데.
하, 이런 비교는 정말 부질없다.
부부라도 가족이라도, 개인의 독립적인 선택과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니까.
나는 남편을 정말 믿고 싶은데
나는 남편을 정말 존경하고 싶은데...
내가 원하지 않는 지역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집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직장을 다니며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이 모든 일들이 괴롭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숨을 쉬기가 어렵고 내 목이 죄여온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모든 순간이 불안하다.
남편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남편이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면,
남편이 티비 보면서 밥을 느리게 먹으면,
남편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면...
남편과 살면 계속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걸까?
남편을 이리도 믿지 못하는데, 우리 결혼생활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남편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어도
이번에도 시험을 못 볼 거라고 통보하며
7년 째 공부만 하고 있다.
솔직하게, 나는 이번에도 남편이 약속을 못? 안? 지킬 것 같다.
결국 나는 남편을 신뢰하고 싶지 않은 걸까? 신뢰할 수 없는 걸까?
분명 남편은 존경할 만하고 배울 점이 많았기에,
남편 대신 여러 이유를 갖다 대며
남편의 실패에 이런저런 방어를
대신 해주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핑계가 될 만한 이유가 없다.
8년이면 갓 태어난 신생아가
뒤집고 서고 걷고 말하고,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고도 남는 시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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