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Oct 22. 2021

물길을 트기

라이팅

내가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해결책도 없이 우울한 말만 하는 것 같아 친구에게도 미안해졌다.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매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줘서 정말 고마웠지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에너지를 주변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게 나 스스로에게도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런 나쁜 생각이나 이야기를 안하겠다고. 내가 한 번 더 그 얘기를 꺼내면 싸대기를 날리라고. 해놓고 이제 말할 사람이 없어지니 글을 썼다. 




어느 한 생각에 사로잡혀 머릿속이 시끌시끌 할 때가 있다. 털어버리고 싶어도 계속 생각나고 잊혀지지도 않고 잠 잘때도 생각날 정도로 괴롭힐 때가 있다. 나의 경험 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이 말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겠는데, 이 말을 어떻게 꺼낼까, 언제 어느 상황에서 할까, 이 말을 뭐라고 해야 내 의도를 잘 표현할까,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이렇게 반응하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등등... 


내가 이 생각을 안하면 절대 말을 꺼낼 수 없을까봐, 내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다 보면 잊어버릴까봐, 그러면 내 마음은 내 의견을 한 번도 말하지 못할까봐, 불안한 마음인 것 같다. 하지만 살다보면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게 나은 그런 말들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다. 할 말 못 할 말 가려가며 하는 것이 현대인의 매너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따만큼 쌓여있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질 못하니 속에서 끓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생각들을 말이 아니라 글로 다 털어놓으면 나는 머릿속을 안심하고 비울 수 있다. 이미 기록으로 남겼으니 나중에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도 있고, 일단은 잊어버려도 괜찮다. 그 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볼 수도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다. 꽉 막혀있던 내 머릿 속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면 멈춰있던 사고가 흐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 과정을 기록에 남기면 시간이 지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 당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노력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들에서 내 인생을 찾고 내가 누구인지도 찾고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도 찾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찾고 내가 느끼고 싶은 행복도 찾았으면. 


사실 인생 물 속 깊숙히 빠져서 숨 쉬기 조차 어려울 때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지만 수면 위로 코만 빼꼼히 나와도 아 그 때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그 이야기가 이제야 들린다. 그런 수 많은 조언과 충고와 위로들은 소리로 울림으로 남아 이제야 내 귀속으로 들어온다.  먼저 나를 비워야 내가 물 위로 떠오르고, 그 뒤에야 보고 들을 수 있다.




생각은 물과 같다. 물도 흘러야 고이지 않고 썩지 않고 맑게 유지되는 것처럼, 생각도 끊임없이 흐르게 해줘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물길이 거세게 흐른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길을 인위적으로라도 터줘야 한다. 썩은 물을 계속 흘려보내고 불순물도 모두 흘려보내고 맑은 물로 넘치게 채워야 한다.


내가 힘들었던 과거의 일들과 나에게 상처였던 사건들을 모두 흘려보내고,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것이 나에게는 맑은 물을 들이 부어주는 과정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원하는 것. 특히 표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이면 좋겠는지, 내가 어떤 모습이 되면 좋겠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도움이 됐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해본다.



여기서 별표 백개 밑줄 쫙쫙 정도로 중요한 점. 문장을 만들 때 그 문장의 주체를 나로 두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어만 나로 두고 문장의 주체를 다른 사람에게 두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언어감지          ⇌          남편어     

━━━━━━━━━━━━━━━━━━━━

나는 무엇을 원해

━━━━━━━━━━━━━━━━━━━━

(X) 나는 남편이 이렇게 하길 원해

━━━━━━━━━━━━━━━━━━━━


이런 문장은 주어는 나지만 문장의 주체는 남편이므로 사실 남편이 어떻게 해야 이 문장이 이루어진다. 남편에게 의지하는 것은 나의 희망사항, 나의 꿈이 아니다. 즉, 다시 한 번 상각해서 내가 왜 남편이 이렇게 하는걸 원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



          언어감지          ⇌          남편어     

━━━━━━━━━━━━━━━━━━━━

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해

━━━━━━━━━━━━━━━━━━━━

나는 남편이 나에게 자상하고 사랑표현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

-> 내가 먼저 남편에게 사랑표현을 많이 해줄거야

━━━━━━━━━━━━━━━━━━━━

나는 남편이 바람 안피고 나만 봤으면 좋겠어

->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충실한 결혼생활을 원해

━━━━━━━━━━━━━━━━━━━━

나는 남편이 나를 존중해주었으면 좋겠어

->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




          언어감지          ⇌          남편어     

━━━━━━━━━━━━━━━━━━━━

네가 틀렸어. 

-> 나는 이렇게 생각해

━━━━━━━━━━━━━━━━━━━━

너가 바뀌어야돼

-> 네가 ㅇㅇ 하면 나는 ㅁㅁ 할거고, 네가 ㄱㄱ 하면 나는 ㅂㅂ 할거야

━━━━━━━━━━━━━━━━━━━━

역시 시짜는 시짜야

-> 시부모님은 그러시구나. 저는 이렇게 할거에요.

━━━━━━━━━━━━━━━━━━━━




          언어감지          ⇌          남편어     

━━━━━━━━━━━━━━━━━━━━

기다리기 힘들 때

아이고 100일을 언제 다 기다리냐

-> 와 100일동안 기다리면서 뭘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뭐가 있을까?

━━━━━━━━━━━━━━━━━━━━



          언어감지          ⇌          남편어     

━━━━━━━━━━━━━━━━━━━━

후회되는 일이 있을 때

내가 왜그랬을까 미쳤지 이불킥 

-> 아 이번에는 내가 이랬네. 다음엔 이래야지 끝.

━━━━━━━━━━━━━━━━━━━━




예전에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한 분의 대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기를 안고 또 다른 아이들 둘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셔서, 내가 몇층가시냐고 물어봤었다. 그 분의 대답은 확실하진 않지만 3층이라고, 만약에 틀렸다 해도 엘레베이터 타면서 재밌게 가자고. 아이 셋을 데리고 외출하시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힘들어도 화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여유있게 사는 법을 보았다. 정말 대단한 어머님이셨다. 


"what floor?" 

"I think the third, but I'm not sure. If not, we are just gonna have fun riding up and down the elevator." 


어차피 뭔가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그게 얼마나 효율적이든 아니든, 어차피 해야 한다면 또는 이미 해버렸다면, 긍정적인 면에 집중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지금 만약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 최악의 상황에도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 그 최악의 경우에도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도록 마인트컨트롤 하기. 


그래, 예민보스에 지랄병이었던 내가 남편 덕분에 남.편. 덕.분.에.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옛날의 나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이 되었다.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다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전부 순수하게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되야지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남을 위해 하면 그 의미가 변색된다. 작년 초,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영어로도 400장 가까이 적었었다. 그 일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남편에게 내 마음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과거에 몰랐던 일들이나 나에게 알리지 않았던 남편의 입장을 알고나니 그 글들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내 진심을 쏟아내서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글이라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다면 이 세상 전부의 의미가 있다. 내 글은 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남의 이야기를 따라하면 더이상 내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견 모두 내 언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 나의 경험,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분명히 있다. 


나는 실패도 많이 하고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면 잘 해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물론 내 마음이 변덕이라 하고싶었다가 안하고 싶었다가 왔다갔다지만.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해낸다면,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수십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한 곳이 안되면 다른 곳으로, 한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지금이 안되면 나중에라도. 


그러다 보면 환상적인 타이밍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한국 직장에서 적응 못했더라도 현 사무실에서 지니어스 소리 듣는 것처럼. 대학 다 떨어져도 딱 한군데만 붙으면 되는 것처럼. 다른 회사 수십곳에서 거절 당했더라도 딱 한 곳에서만 합격하면 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 하다가도, 그 성공이 그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성공 할 때까지 도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실 결혼생활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나는 참 열심히 살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볼 때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어렸을 때 원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 내가 나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나는 나대로. 남편의 아내가 아닌 그냥 개인의 나로.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도 겪고 이혼을 고민하는 등의 조금은 어두운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나의 행복과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약간은 희망적인 분위기나 이미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작은 남편이 미워서 괴로웠지만 결국 나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나를 탐구해나가는 기회로 삼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시야를 넓히고, 대화법까지 바꿔가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열린결말처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쩌면 내 글은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일기장 같은 글이다.


그래서 내 글이 힐링까지는 못 되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각자의 상황에서 같이 으쌰으쌰 고민해보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소연하거나, 무조건적인 공감을 요구하거나, 이혼을 종용하거나 하는 게 아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 조금 더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서로 다독여주고 응원해주는 자신의 인생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한 번 사는 인생 재밌게 행복하게 살자는 그런 밝고 따뜻하고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