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기보단 신고하기까지 걸린 시간
내 이메일이 rude 하다고 했던 사건 때문에 지난 7년 간의 미국 공무원 생활을 회고하는 계기가 됐다.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넘어갈 법도 한데... 만약 스레드에 글을 올리지 않았고, 스레드에 달린 댓글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정말 컬쳐 쇼크로 다가왔던 반응은 해외 각지에서 일하시는 한국분들의 댓글이었다. 댓글의 반은 무조건적으로 그 직원은 맞고 나는 틀렸다며 사실 관계를 호도하는 내용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나에게 조언해주고자 하는 호의적인 마음은 알겠으나... 사내 규정이나 관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이민자 개인이 바뀌어서 '미국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강요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 '문화'라는 게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회사 내규에 정해져 있는 내용도 자기 맘에 안 들면 루드하다고 매도해 버리면 끝인데?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오래 근무했다고 해서 타인의 업무에 왈가왈부할 권한을 줄 수 있을까? 서열 관리? 권력 다툼? 주도권 쟁탈? 무슨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이렇게 기싸움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했을 때 숙이고 들어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내 전임자도 아시안이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그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줬었다고 한다. 오히려 눈치 보고 검열하고 순응하는 태도가 더 이상해 보였다. 자기 업무가 아닌데? 명백하게 규정 위반인데?
그 사람이 여기서 20년을 일했다고 하지만, 내가 여기서 앞으로 20년을 일할 수도 있는데 나만 참고 지내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좋은 동료들도 많고 일도 괜찮아서 나도 오래 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좋은 면만 보고 다닐 수만 있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나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책감 느낄 필요 없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도 억울했다. 왜 여기 사람들의 평가로 인해 내가 이렇게 흔들려야 하는 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스라이팅. 개인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흐리고,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정서적 조작.
그 일환의 화이트 워싱.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일상 곳곳에 침투된 권력과 사회/문화적 지배에 대한 문제이다. 미국 백인 주류 사회에서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이미지 세탁, 그리고 정체성 삭제. 특권층에게 평등이란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과도 같으니까.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 그리고 그에 순응하지 않는 걸 rude 하다고 뭉뚱그려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민자로서 그 사회 질서에 순응한다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차별받기로 선택한 것인가? 이민자/소수자 중에서도 서로에게 급을 메기며 가스라이팅하고 서로를 배제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개인에게 혹은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선택일까?
다양한 상황이나 문화가 있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존중하지만, 부당한 상황을 공론화하고 개선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말도 안 되는 걸로 괴롭힘 당하고 있다면 침묵하기보다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