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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혐의한 하루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결과를 통지받았다.

by 홍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가 오늘 하루

비현실적으로

행복했던 것 같아서


타는 듯 한 더위만큼

건조한 공기에

건조한 눈가에는

결국 눈물이 차오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또르르

한 방울 흘려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결과를 통지받았다


“불인정”




신고할 때부터 뻔히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막상 조사결과를 받아보니

더 허탈한 기분


심지어 피신고자가 내놓은 답변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소란했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던 순간.


내가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동료가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겨서 자기가 대신 미안하다고 해줘도

노조가 그런 일들은 일어나서는 안 됐었다고 얘기해 줘도


바뀌는 건 없구나.

어차피.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시어머니께서 방문하시기로 한 날이라


아침부터 청소도 하고

미용실도 다녀오고


다 같이 외식도 하고

동네 구경도 하고

공원 산책도 하고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하루가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꽤 행복하다고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시어머님은 하와이에서 뵙고 1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마치 지난 1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한 게 아예 없었던 일이 된 것처럼


작년에 남편과 둘이 이곳으로 이사할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희망찼던 마음이 생생한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었는데


결과에 충격받아서 기억을 싹 지웠나

현실도피 중인가?




문득 월요일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막막해져 온다


아니,

막막한 것 같은데

뭔가 초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벌써 내 머릿속에서

이미 퇴사를 해버린 걸까?


이 주말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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