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고하기도 힘든 마이크로어그레션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by 홍이

microaggression.


겉보기에 사소하거나 일상적인 말, 행동, 태도 속에 담긴 무의식적 차별이나 편견을 말한다. 대개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나이, 외모, 학벌, 직급 등과 관련되어 있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지칭한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증거를 남기기도 어렵고 신고로 이어지기도 힘들다. 은근한 괴롭힘. 무의식적인 차별과 편견이 전제되기에 의도를 증명하기가 어렵고 심지어는 괴롭힐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더 자주 반복되고, 당하는 사람만 멘탈 나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 팀 구성은 프로젝트 별로 분기별 계약을 하기 때문에 인원이 유동적인데, 대략 20명 내외라고 볼 수 있다. 그중 20년 전부터 계약해 온 아주 오래된 컨트렉터들은 자부심이 아주 크고, 회사에도 그만큼 요구한다.


인종차별? 시애틀 프리즈? 사내 왕따? 그 사람들에게서 온갖 천태만상 다 보고 겪는 중이다. 말도 안 되는 험담에 루머에 마음고생 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뭐 증거도 없고 사실관계도 확인 안 되는 내용이었고, 실상 그들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떠드는 거였다.


하지만 말이라는 게 화살 같아서 계속 찔리다 보니 내가 형편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해진 업무를 하는데도 끊임없이 설명하게 되기도 했다.




그 집단에 조금이라도 현명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매니저인 나를 잘 구슬려서 자기들 편으로 만들어 이용해먹으려고 했을 텐데... 그렇게 대놓고 갑질하고 부적절한 언사를 하다니 뭔가 투명하고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중 제일 심한 사람들에게 먼저 respectful work environment 를 부탁했었다. 한 명은 이메일을 아예 무시했었고, 한 명은 1:1 대면 미팅에서 내가 언급했으나 아무 반응이나 대답이 없었고, 한 명은 슈퍼바이저에게 얘기해서 상담 후 나에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는 식의 이메일을 받았었다. 다른 한 명은 이메일로 왔다 갔다 하다가 1:1 대면 미팅까지 두 번이나 했으나 결론은 본인은 잘못한 거 없다였다.


어떤 부분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나는 '피해호소인'이 되는 거고, '가해지목인'은 나는 그럴 의도 아니었다~ 하면 끝인 ㅋㅋㅋㅋㅋ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보기엔 저 사람이 상처받은 거 같지 않다 라고 넘어감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보고 그냥 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가장 강도가 심하고 빈도가 잦았던 사람을 신고하게 됐다.




불행 중 다행은 직속 상사가 내 결정을 지지해 줬다는 거. 나 부서이동 전부터 여기 사람들 문제 많은데 업무차원에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 상황 처음부터 전부 알고 많이 도움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슈퍼바이저가 모르는 척 했으면 바로 퇴사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슈퍼바이저에게 무한의 믿음을 갖게 된 일이 있다. 어느 날 완전 한계치에 도달해서 슈퍼바이저에게 전 팀원 microaggression 트레이닝을 제안한 적이 있다. 사내 인트라넷에 23분짜리 온라인 강의. 그거라도 ^^; 명목상 트레이닝이지만, 어쨌든 그 주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 자체가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슈퍼바이저는 필수도 아니고 업무 관련도 아닌 이 microaggression 트레이닝을 바로 승인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보스도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것 같아서 조금 위안이 됐다. 이런 상황이 아예 없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이거라도 해주니 어디냐 하는 검소한 마음가짐이랄까.


어차피 모두 월급쟁이로 회사 다니는 거고 근무시간 만이라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있어야 하니까.







resize


keyword
이전 06화화이트 워싱: 신입에게 가스라이팅하는 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