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살리는 독일 한인회

입독 100일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한인회다

by 홍이

우리에게 독일행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여정이었다.

당시 우리는 섬에서 육지(?)로 이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곳에서 몇 년은 지낼 각오로

살림살이를 사들이고, 지역 모임도 참석하고, 자리를 잡아가려고 하던 차였다.


7월 21일, 남편은 인터뷰 일주일 만에 합격소식을 전해 듣고

그동안 사들인 물건을 중고로 대부분 처분하고 신변 정리하며

8월 중순, 나는 회사에 사표를 내려다가 재택근무로 전환해 주신다고 하셔서 마지막 사무실 출근을 했다.

8월 23일, 남은 짐들 전부 바리바리 싸들고


시어머님 칠순 여행을 가고

남편 추억의 호수로 여행을 갔다가

다시 이민가방을 챙겨


9월 8일, 휘몰아치듯이 독일에 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즈의 나라로 떠나는 도로시의 마음이 그랬을까 ㅠ


언어도 하나도 모르는데

정말 겁도 없이 왔다.


우린 나이도 많은데

왜 이 고생을 사서 했는지...


미국과는 또 다른

한국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낯선

독일.


남편과 나는 처음으로 둘 다 이민자 신분이 되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이만리 타국에서

우리를 먹이고 챙기고 살린 건

다름 아닌 한국인들.


우리가 독일로 이사 간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친구가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알려주신 한인회의 존재.

정말 한인회 몰랐으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동안 외국 나와 살면서 본 한인회는 여럿 있었지만,

이렇게 체계적이고

이렇게 소외당하는 사람 없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이렇게 서로를 위하는 한인회는 처음 본다.




불과 몇 주 전, 우리가 임시숙소에서 월세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남편이 미국 가서 옮아온 감기로 우리 둘 다 11월부터 골골대다가

하필 이사 직전에 내가 엄청난 감기몸살에 걸렸다.


또 하필 우리가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사해서 병원이고 뭐고 예약도 힘든 시기.

게다가 하필! 기온이 이렇게 떨어지는 겨울이 우리에게 너무 오랜만이라 코에 찬바람만 닿으면=숨 쉴 때마다 미친듯한 기침이 ㅠㅠ

더해서 하필이면 중이염까지 걸려 귀가 찢어질 듯했는데...


그때 혜성처럼 나타나준 우리의 구세주...!


한인회에서 알게 된 지인분께서 가구 조립하라고 공구 빌려주시며

이사 선물이라며 챙겨주신 정성 가득한 선물들

쌀이랑 예쁜 소금에 정신없을 때에도 간단하게 챙겨 먹을 수 있는 간식까지 ㅠㅠ

특히 저 약봉지에는 어떤 약인지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손수 써주셨다. 감동의 도가니...


어떤 약이 있는지도 몰라서 약사가 주는 약만 사 먹으면서

독일약이라 잘 안 듣나 하고 있던 우리에게

언니께서 주신 약은 거의 생명수 급으로 효과가 좋아

바로 약국 가서 저 약들 똑같은 거로 전부 통으로 사 와서 테이프로 붙여놨다







대망의 이삿날,

전세입자는 어떻게 살았는지 이사 간 집은 가구 다 빼고 나니 여기서 살 수 있나 싶고 ㅠㅠ

옮겨온 짐들이랑 가구 배송 온 박스들로 어수선하고

남편도 심란했는지 계속 또 이사 갈 수도 있으니까 박스 버리지 말라고 잔소리에

하루 종일 청소한다고 팔 떨어지게 빡빡 닦다가 쌍코피 터지고

아무튼 진짜 총체적 난국이었달까.


남편이랑 나랑

정 못 살겠으면 우리 그냥 귀국하자

둘이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했다가

진짜 사소한 거에 말다툼하고

나 혼자 펑펑 울다가 문 닫고 잠깐 잠들었는데


언니는 그 와중에도 두 번이나 산타처럼 왔다 선물을 한 아름 두고 가셨다 ㅠㅠ


반찬통을 딱 여는데

와... 눈이 부시게 영롱한 김치의 빛깔...!

그리고 그 맛있는 김치냄새...!!!

한국인이면 다 알지 않을까


오후에는 김밥까지 손수 만드셔서 가져다주셨다 ㅠㅠ

그때까지도 밥도 못 먹고

너무 늦어서 문 연 음식점이 있으려나 하면서 쫄쫄 굶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이렇게나 귀한 김밥이!

김밥도 내가 다 먹고

잘 익은 김치에 라면까지 순식간에 먹으니


어라,

그냥 왠지 할 만 해졌던 것 같다.

이사 온 집도 그렇게까지 못 살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참 내 마음도 간사하지

한국인 밥심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우리는 그렇게,

모아둔 박스는 지하실에 보관해 두고 앞으로도 쓸 일 없길 바라면서

조금씩 새 보금자리에 적응해가고 있다.


하루하루

가구를 조립하고

살림을 들이고

음식을 해 먹으며


이제는 제법 우리 집 같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일단은 나중에 해결해도 되는 건 놔두고

일상을 살아가야지




머나먼 독일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또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만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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