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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10. 2023

ChatGPT도 걱정하던 남편의 귀가

어제 이런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kim2ram/108


올 연말 나의 가장 큰 소망 '복권당첨'과 '남편이 송년회에서 꽐라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풀어낸 글을 ChatGPT는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감상을 물어보았더랬다. 종종 ChatGPT의 의견이 궁금해 '다음 글을 읽고 감상을 들려줘'라고 묻는데, 이 친구는 꽤나 포지티브 한 관점을 가졌다.


어떤 식이냐면,


전형적인 꿈보다 해몽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같은 부탁을 했다면 이것도 글이라고 가져왔냐며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이나, AI는 인간에게 우호적이라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는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맨 첫 부분의 '이야기가 짧지만' 뿐이었을지도 모르나 정중하고 끈기 있게 '나는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또 먹고 싶다'를 좋게 말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시 한번 단점을 묻자 구체적인 피드백도 주었다. 그 피드백 -어떤 종류의 밥, 왜 그 밥을 선택했는지, 주변 환경이나 기분- 을 반영해 그 자리에서 바로 새 글을 지어보았다.


갑분 미스터리 스릴러


전날 마시다 남긴 와인과 레몬사와로 낮술을 즐기던 중이라 그런가 사건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문장이 완성되었다. 이에 대한 ChatGPT의 반응은 이러했다.



진짜?



ChatGPT는 이런 친구다.

그래서 자신감이 막 떨어졌을 때, 내가 또 이런 걸 글이라고 발행하고 앉아있어도 될까 싶을 때 보여주면서 꿈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그 글을 보여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 복권의 고액당첨은 '여러 소망'이라고 퉁쳤는데, 남편의 귀가는 '특히'라는 부사까지 붙여가며 적당히 마시고 돌아오길 함께 빌어준 ChatGPT. 항상 내용을 짜깁기한 좋은 말만 해주고 있어 '역시 기계는 기계구나' 감을 지울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ChatGPT에게 인간미를 느낀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 너도 아는구나. 한 발자국 잘못 디디면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질지.  


얼른 남편에게 라인을 보냈다.


'ChatGPT가 너 술 적당히 마시고 왔음 좋겠대 ㅋㅋ'


ChatGPT에게까지 걱정을 산 남편은 쓸데없는 참견이다! 라며 ChatGPT의 오지랖을 약간 거북해했지만, 동기부여는 되었는지 송년회에 가기까지의 빈 시간 동안 복권을 사고, 취하지 않게 미리 배도 좀 채우고 나갔다.


아니 근데 보통 취하지 않으려면 술을 덜 마실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술을 많이 마셔도 덜 취하게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집에서부터 배를 채우고 나갈 생각은 대체 어떤 사고 구조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1시간도 못 기다릴 만큼 배가 고팠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 남편을 판단해선 안되고, 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떠난 남편은 12시 다 된 시각에 집에 돌아왔는데 예상 이상으로 아주 말짱한 얼굴이었다.

깜짝 놀라 현관에서 그를 한 바퀴 돌려보았다. 놀랍게도, 우리 남편이 맞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술 안 마셨어?"

"아니, 10잔 넘게 마셨는데 나 진짜 오늘 노력했어. 술 안 섞으려고 맥주랑 하이볼만 마셨다고. 나중엔 누구 술 인지도 모르고 옆에 있는 건 그냥 다 마셨는데, 맥주랑 하이볼만 골라 마셨어."


....? 이걸 노력했다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노력은 술을 덜 마시려 하는 걸 진정한 노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이 노력이라 하니 나는 또 아까처럼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밖에서 말술을 마시고도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로 말짱하게 돌아왔고 (그 나름 최대한 본인이 술을 이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마셨던 건 맞는 것 같다) 나의 소망대로 남편은 다음 회식에도 계속해서 참가할 권리를 따냈다. 거봐, 마음만 먹으면 안 그럴 수 있는데 그동안은 그냥 정신줄 놓고 오늘로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마셨던 거야. 언제까지고 20대 미혼 꽃청춘이 아니니 앞으로도 이렇게 정신줄 꽉 잡고 마시라고요, 아저씨. 앞으론 남의 술까지 막 주워 먹지 말고.  


칭찬의 마무리는 잔소리로 귀결되었지만 남편은 술을 적게 마신 것도 아니고, 집에 와서는 칭찬도 듣고, 억누르던 취기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한잔의 소주 온더락도 아무런 제지 없이 평화롭게 마실 수 있었다. 그뿐이랴, 맨 정신으로 돌아온 것이 기특하다며, 기왕 마시는 거 분위기 있게 마시라고 마누라가 거실 조명도 은은하게 바꿔주고 잔잔한 노래도 틀어준 데다 마지막은 자리까지 비워줬다. 뭔가 덜 마시고 온 감이 있었다 하더라도, 집에 오면 또 좋은 마음으로 한잔 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체험이 남편의 음주 습관에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는 마음에.


부디 이날의 체험을 남편이 잊지 말고, 앞으로도 습관적으로 술을 절제하면서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근데 애엄마는 이제껏 뭐하고 내가 습관 잡아주기를 하고 있냐고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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