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람 Dec 11. 2023

우리 집 두꺼비집의 실소유자

우리 건물에는 전부 다 해 네 집이 사는데 두 집은 낮시간엔 완전히 비고, 한 집은 비었다 말았다, 나머지 한 집은 종일 사람이 있다. 그게 우리 집인데, 바꿔 말하면 우리 집에 수상한 사람이 왔을 때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이웃집이 없다는 소리다.


때문에 혼자 있을 때에는 보통 이루스(居留守, 집에 있으면서 일부러 없는 척하기)를 쓴다. 시간지정이 가능한 택배는 남편 퇴근 후에 받고, 택배인 줄 착각하고 잡상인의 인터폰을 받아버렸을 때에는


"지금 집에 어른이 안 계세요"


라고 한껏 톤 높인 목소리로 어린 척을 한다. 네, 서른아홉이지만 철이 아직 덜 들어서요.  



잠깐 외출한 사이, 집에 누가 다녀갔나 보다. 4년에 한 번 법적으로 정해진 전기설비 안전점검을 해야 하니 정해진 일시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의 유인물이 우편함에 들어있었다. 회사 이름을 검색해 보니 실존하는 곳이었고 이런 류의 방문 안내는 사기가 아니라는 글도 있어 안심하고 방문자를 기다렸다.


"띵동-"


인터폰이 울린 것은 2시 반쯤 되었을 때. 미리 씻고 환복도 마친 상태라 허둥지둥하지 않았다. 모니터 안에는 예상과 달리 자그마한 여성분이 안전모를 쓰고 어깨에 사다리를 메고 서 있었다.


"외부 점검은 끝났고 내부 점검을 해야 하는데 안을 좀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들어오세요"


실내용 슬리퍼를 권하자 '금방 끝나서 괜찮다'며 양말 바람으로 들어오셨다.

'아니 저 그게... 금방 끝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청소를 대충 해서 양말이 더러워 지실텐데...' 차마 하지 못한 부끄러운 자기 신고는 목구멍만 맴돌다 흩어졌다.



우리 집 두꺼비집은 현관 옆 탈의실에 있다.

미야시타라 자신을 소개한 검사원은 탈의실 바닥에 준비한 시트를 깔고 그 위에 접이식 사다리를 놓았다. 사다리 위로 야무지게 올라간 그녀는 두꺼비집을 열었다. 스위치만 확인하는 줄 알았는데 그 안의 플라스틱 덮개도 제거했다. 덮개를 열자 알록달록한 전선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덮개를 받아 들고 이제 무슨 검사가 있으려나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미야시타 씨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게 뭐지?"


목을 쭉 빼고 쳐다보니 노출된 브레이커 스위치 틀위에 그을린 휴지조각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그 조각을 살펴보던 미야시타 씨가 티슈를 가져다 달라고 해, 얼른 거실의 티슈케이스를 가져왔다. 미야시타 씨가 다시 한번 고음 주파수로 외쳤다.


"어머! 이브이! 귀여워!"


귀엽고 웃음 넘치는 우리 집 티슈케이스


"아, 죄송합니다... 이브이가 너무 귀여워서"


포켓몬스터 팬인 것으로 보이는 미야시타 씨는 이브이의 갈린 배 사이에서 창자 티슈를 뽑아 정체불명의 조각을 집어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8센티 정도의 막대기에 매달린 깃발 모양을 한 검고 바싹 마른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미야시타 씨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박쥐였네요."





두꺼비집 안쪽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마 전선이 들어오는 것일까?), 그 틈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타서 눌러붙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며, 다른 집에서는 쥐가 발견된 적도 있다고 했다.


네에... 그렇군요...

미야시타 씨의 목소리는 반쯤만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두꺼비집이라 부르는 그것, 왜 하필 두꺼비네 일까 생각한 적은 있어도 그게 사실 박쥐네 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다른 집도 아닌 우리 집 두꺼비집의 실소유자가 설마 박쥐였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즈음, 탈의실에서 뭔가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계속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깥 환기구에서 바람소리가 들어오는 일시적 현상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이 박쥐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은, 한밤중에 주방 환기구 쪽에서 뭔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혹시 지붕 위에 살던 쥐라도 떨어졌나 싶어 환기구를 켜니 압력에 의해 날아갔는지 소리가 나지 않게 된 적도 있었다. 그때도 박쥐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날아갔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비닐봉지 좀 가져와 주시겠어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념에 젖어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닐봉지에 담긴 조각은 두 개.

두 마리인지, 시간의 흐름에 한 마리가 두쪽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째서 집 안에 이런 것이,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검사하다가 나온 것이니 가져가 주시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것 좀 버려 주시겠어요?"


이브이를 좋아하는 미야시타 씨가 친절한 말투로 내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산산이 조각나버린 기대감을 미처 주워 담을 새도 없이 박쥐가 든 비닐봉지를 받아 든 나의 표정은,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았겠지만 분명 울상을 짓고 있었다.





전기설비 안전검사 결과


손을 쭈욱 뻗어 가급적 몸에서 멀리 떨어트리고 비닐봉지 입구를 비비 꼬았다. 한 손으로 다른 비닐봉지를 찾아 이중으로 밀봉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니 미야시타 씨는 뭔가를 종이에 적고 있었다. '박쥐는 나왔지만 전부 깨끗하게 제거했고 그 외의 누전이나 이상은 없었기 때문에, 여기 '이상 없음'에 표시했다'는 설명과 함께 전기설비 안전검사 결과지와 전기 안전 팸플릿을 건네주셨다. 


그때까지도 '으으 우리 집에 박쥐 미라가' 하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나는 겨우 정신을 추슬러 수고하셨다 인사하고 미야시타 씨를 배웅했다. 그리고 동네를 자유롭게 날아다녔을, 어쩌다 잘못 들어온 구멍으로 우리 집 두꺼비집 안에서 홀로 (또는 둘이) 외로운 사투를 벌였을 두꺼비집의 실소유자와 단 둘 (또는 셋) 이 되었다.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했지만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도 박쥐에서 나온 거랬는데 비닐봉지를 한 다섯 겹 둘둘 말아버릴 걸 그랬나, 생각도 하면서.






일본은 타는 쓰레기, 안타는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대형 쓰레기로 나누어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타는 쓰레기는 대개 주 2,3회 정도 수거일을 정해 가져가는데, 마침 이 날 아침은 수거일이었다. 다음 수거일은 그다음 주 화요일인 12월 12일.


때문에, 두꺼비집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거주지를 쓰레기통으로 옮긴, 한 때 박쥐라 불렸던 그것은 주말 내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말의 술파티 후에는 잔재들 -고기를 담았던 스티로폼 접시나 야채 부스러기, 음식포장지 등- 이 부하게 쌓이기 때문에, 쓰레기 부피를 줄이려 남편에 위에서 꾹 누르려는 것을 '박쥐! 박쥐!!' 박쥐 경보를 울려 겨우 뜯어말렸다. 남편은 화들짝 물러서 쓰레기통 뚜껑을 닫았다.


그런데 사건을 직접 경험한 나와 달리 이야기를 듣기만 한 남편은 자꾸만 그것의 존재를 까먹는 것인지 내가 보지 않은 사이 쓰레기가 쑤욱 줄어들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박쥐도 두꺼비집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생활이 추구하는 편리함에 희생되어야 했던 박쥐. 그나마 4년에 한 번이 올해였기에 망정이지 검사를 갓 끝낸 직후 두꺼비집에 들어왔다면 어쩌면 더 긴 시간 원치 않는 장기거주를 해야 했을 수도 있다. 딱히 예방책이 있는 것은 아니니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땐 더 골치 아픈 집주인이 들어올지도 모르겠으나, 부디 내가 이 집에 사는 동안만큼은 두꺼비집은 스위치와 전선만 사이좋게 사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ChatGPT도 걱정하던 남편의 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