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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19. 2023

누가 내 감자과자에 물과 치즈를 부었을까

매일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칠 때마다 생각한다.

대체 누가 누렇게 익은 벼에서 알맹이를 털어내고, 또 그걸 물에 담근 채 열을 가해 밥을 만들었을까.


비단 밥뿐 아니라, 면, 떡, 빵도 그렇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 내어 물을 섞고 주무르고 찌는 여러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 조리법은 대체 누가 어떤 연유로 발견해 낸 걸까. 선대가 만든 것을 누리기만 하는 후손의 입장에서, 식문화의 세계는 그저 신비하고 오묘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떤 후손들은 선대 못지않은 호기심을 지녔다. 


몇 해 전 일본에서는 스틱형 감자과자 ‘쟈가리코’로 프랑스식 감자 샐러드 ‘알리고’를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쟈가리코에 길게 찢은 스트링 치즈를 켜켜이 쌓고, 그 위로 뜨거운 물만 과자 키만큼 부어준 뒤, 2분 정도 놓아두었다가 포크로 마구 휘젓기만 하면 되는 알리고.


물을 적게 부으면 좀 퍽퍽한 감자 샐러드 같지만, 감자과자가 잘 녹을 만큼 부어주면 치즈와 섞여 이렇게 찐득찐득하게 늘어나는 형태가 된다. 주욱 당겨 포크에 돌돌 말아 맥주나 와인을 곁들여도 훌륭하다. 원래부터 과자로 만드는 요리는 아닐 텐데, 대체 어떤 호기심 박사가 과자에 뜨거운 물과 치즈를 넣어볼 생각을 다 했을꼬. 보통 과자에 물 부으면 녹아서 못 먹을게 될 거라 생각할 텐데 말이다. 


호기심에 두어 번 만들어 먹고 존재를 잊고 있던 알리고는, 집에 굴러다니던 감자를 보다 떠올렸다. 슬슬 먹지 않으면 싹이 나 다 버리게 될 텐데 이 추운 겨울날에 감자를 씻고 껍질 벗기고 썰고... 그렇게 손끝 시릴 일 생각하면 뭘 해보기도 전에 귀찮아진 그때, 감자과자에 물 붓고 치즈 넣는 알리고가 생각난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금세기의 식문화를 진두지휘하는 그런 '난 인물'은 아니다만, 떠오른 맛도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반드시 떠먹여 주고야 마는 끈질긴 행동력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 밤은 오랜만의 알리고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 집 감자는 아직도 쌀통 옆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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