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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13. 2023

당신이 송년회에 간 사이에

오늘은 참 묘한 날이었어.


길일 중의 길일, 킹 오브 길일이라던 오늘 말이야.

낮엔 두꺼비집에서 박쥐 미라가 나왔고, 어스름한 무렵에 우린 복권가게로 내달려 아슬아슬하게 연말점보를 샀어. 돌아오는 길, 당신은 혼자라도 재밌게 지내라며 내가 고른 맥주와 안주들을 손에 들려주었지. 이걸로 정말 괜찮겠냐 했지만 오늘은 식욕이 없네. 할 일을 다 마친 당신은 어딘지 신명 나 보이는 뒷모습으로 회사 송년회로 향했어. 


여보. 오랜만에 혼자 맞이하는 어둠이었어. 겨울의 밤은 참 까맣고 조용하더라.

모두 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나 봐. 


근데 참 이상하지. 

이렇게나 고요하고 고독한데도, 

여보, 나 지금 되게 신나.






항상 금요일 그 시간이면 주말이 왔음을 자축하는 통칭 '파티'를 한다며 분주하게 안주상을 차리고 있을 터였다. 1인 가구 시절이었다면 마트에서 사 온 안주거리를 접이식 좌식 테이블 위에 주욱 늘어놓고 버라이어티 방송을 보면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시간이다.

 

그보다 시계태엽을 훨씬 더 많이 되돌리면 투명한 머그컵과 소주, 사이다 페트병 하나씩 들고 살금살금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다. 컴퓨터 모니터만이 하얗게 빛나는 캄캄한 방에서 윈앰프로 음악을 틀고, 참이슬 4에 사이다 6의 비율로 따라 홀짝이며, 이글루스든, 팀블로그든, 태터툴즈든 어디에서든 토각토각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을 시간.


아지 (전갱이) 타타키와 감자볼 튀김꼬치


남편은 퇴근 후 어디 돌아다니다 오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 이런 밤시간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혼자서도 굉장히 잘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편의 송년회를 기다려왔다. 오랜만에 맞이할 혼자만의 시간은 예전처럼 약간의 취기에 젖어 글을 쓰고 생각하며 보내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4시간 반 정도. 

술을 홀짝이며 글을 써볼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에피소드 위주의 글 말고 학생 때처럼 좀 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사유 위주의 글을 쓰고 싶어 연습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숫자에 어울리는 나를 가장해 '다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보다 더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얼마나 생각 없이 살고 있는지, 요즘은 말이 뇌를 통과하지 않고 튀어나오는 일이 늘었다. 


가장 가까운 일례라면, '지금 거 이강인 선수가 어시스트한 거야'라 해야 할 것을, '이강인이 어드바이스 했다' 해서 한참을 이렇게 놀림받았다.


"아~ 이강인 선수, 지금 어드바이스를 했습니다! (귓속말하는 제스처) 이번 경기 두 번째 어드바이스! 과연 어떤 귀중한 어드바이스를 주고 있는 걸까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자기 검열반이 튀어나와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스티커를 잔뜩 붙여버리고, 채 내뱉지 못한 말은 자판 주위만 아른아른 맴돌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까 오늘은 맥주를 연료로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여 봐야지. 그러다 보면 그땐 손 끝 어디로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썼는지 생각날지도 모른다.

 





낮에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는 하나, 퇴근길 싸구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싸구려 와인을 물처럼 꿀꺽꿀꺽 삼키던 그때처럼, 온오프 딱 가르고 숨 돌릴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시간, 내가 쓰고 싶은 시간에 자유롭게 그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전업주부여도, 아이가 없어도 나의 빈 시간이 내가 그러고 싶은 시간에 딱 맞물리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단 둘 뿐인 가정생활도 공동생활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이날은 내게 길일이 맞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날.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 서로 매한가지일 테니 남편에게도 길일이었을테지.


그런데 막상 멍석을 깔고 보니 머리가 놀랐다. 야, 너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오늘은- 까지 쓰고 나니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타석에 내보냈지만 헛스윙만 하는 손가락을 거두어들이고 노트북을 닫았다. 냉장고가 위잉 돌아가는 소리만 나는 거실에 앉아 다져진 횟조각을 몇 점 한꺼번에 집어 와사비 간장에 콕 찍었다. 검은 물이 든 전갱이를 몇 번 우물거리고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남편은 아마 모둠회와 야키토리에 시원하게 하이볼을 들이켜고 있을 즈음이었을 것이다. 몇 번인가의 젓가락질 후, 식욕이 없다던 나는 아지타타키와 감자볼 튀김꼬치와 맥주 두 캔을 깨끗이 비우고, 서랍장을 둘러보다 파스타를 꺼냈다.


고춧가루 알리오올리오 (가제)


식욕 한 번만 더 없었다간 냄비를 삶아 먹을 뻔했다.


뽀얗고 탄력 있게 잘 삶아진 파스타면 위로, 올리브오일과 다진 마늘, 소금,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넣고 다시 한번 가스불을 붙였다. 한참을 요리 젓가락으로 휘휘 휘젓다 보니 매운맛이 당겨 냉동실에서 고춧가루를 꺼내 부었다. 그래서 나온 고춧가루 알리오 올리오. 대중적인 맛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오늘은'만 써놓고 애꿎은 화면만 노려보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생산적이란 생각을 했다.


한국에선 운전이 익숙지 않은 아줌마 운전자에게 창문 열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악담을 늘어놓는 걸 이탈리아에선 '집에 가서 파스타나 삶아!'라 한다고, 아주 오래전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생각, 좋은 글을 쪄내지 못한 나는 공교롭게도 파스타를 삶고 있었다.


아까 회를 집어먹던 젓가락으로 이번엔 파스타를 대충 둘둘 말아 입에 넣으며 와인을 따른 글라스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컵을 쥐었어야 할 손가락이 허공에서 주춤하면서 글라스 안의 보랏빛 물결이 출렁하고 유리벽을 따라 넘쳐흐르는- 일은 없었다. 훗. 술 한두 번 마시나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한껏 말캉말캉해졌다. 


조금 있으면 날짜가 바뀔 늦은 시간인데도 오직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나만을 위해 들이는 수고가 기분 좋았다. 별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지만 있는 힘껏 내 위주로 굴러가는 그 시간 자체에 신이 났다. 적막한 거실은 여전히 어수선했지만 굳이 정리하려 들지 않았다. 안다. 결혼하고 주부로 사는 이상, 남은 내 인생은 지금 이상으로 더 이타적이어야 하겠지만, 가끔은 그런 게 아닌 그냥 나와 만나고 싶다. 


나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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