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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an 11. 2024

나리타에서, 덤으로 얻은 뷰

오오미소카의 추억

출국이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꿈을 꿨다.

공항 근처 호텔에 예약이 누락됐다거나, 여권을 두고 와서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간다거나. 그래서 실제로 집을 나선 다음에도 몇 번이고 남편에게 확인을 했다. 문 잠근거 맞지? 여권 가져왔지? 현관에 불 껐지? 남편이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꼬붕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후후후, 아니, 너 확인하는 뒤에서 내가 일부러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젖히고 전등 다 켜고 현관도 잠그는 척만 하고 여권도 악의를 가지고 집에 두고 왔다!"


이미 집에서 150킬로는 더 떨어진 곳에서까지 물어 무엇하겠냐마는 요 근래 꿈들이 죄다 그런 것들이라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걱정이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


호텔은 나리타역 근처로 잡았다. 회사에서 돈이 나오는 출장도 아닌데 아침 비행기 탄다고 굳이 돈을 써 호텔에 묵다니, 공항 벤치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새해벽두부터 몸고생 하고 싶지 않았고, 여행처럼 낯선 곳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큰맘 먹고 예약했다. 공항까지는 15분 정도 전철을 타야 하지만 JR과 케이세이, 두 노선을 쓸 수 있고 공항 바로 인근보다 저렴해서 좋았다.


당일은 이런저런 해프닝(아이고 내 7억 엔)이 있었지만 무사히 케이세이 나리타역에 도착했다.


오오미소카 (大晦日, 12월 31일) 나리타역 앞 풍경

전철을 타고 지나갈 때 본 나리타시는 논밭으로 버무려진 시골 촌구석이라 생각했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역 앞은 꽤 붐비고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이자카야를 시작으로 도쿄에서 질리도록 보아왔던 체인 술집들이 즐비한 걸 보니 내가 나리타를 논밭 버무려진 시골 어쩌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같은 시골이래도 공항을 보유한 시골은 또 다르구나. 나리타가 부러워지기는 또 처음이다.


역 근처 유명한 절(나리타산 신쇼지)이 있어서 그런지, 친구들끼리 하츠모우데(初詣, 새해를 맞이해 절이나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는 것) 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 무리가 여기저기 모여있어 거리에는 활기와 약간의 불온함이 서려있었다. 나리타가 있는 치바현은 양키(양아치)가 많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는 전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애들도 보았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두리번거리며 걷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야, 애들이랑 눈 마주치지 말고 빨리 가자, 요즘 애들 무섭대.


왼쪽부터 시메카자리(しめ飾り), 카도마츠(門松). 맨 오른쪽은 신년 장식물과는 상관없지만 호텔에 있던 사가천황 모형


호텔 입구에는 신년을 맞이해 집 앞에 놓는 장식물인 시메카자리(しめ飾り)와 카도마츠(門松)가 놓여 있었다. 새해가 되면 각 집에 복을 주기 위해 토시가미(年神)가 내려오는데, 시메카자리와 카도마츠는 집안팎의 부정한 것을 내몰고 신을 집으로 부르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통 정월에 일본을 여행하면 가정집, 가게 가리지 않고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인데 하츠모우데, 오마츠리도 그렇지만 대부분 종교가 없는 일본인들이 이런 토착신앙에 기인한 풍습과는 세대를 따지지 않고 밀접하게 묶여 있는 점이 신기하다. 완전 할아버지 할머니 말고는 아마 본인들도 왜 하는지 모르고, 딱히 기원의식도 없으면서 그냥 습관이니까 하고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일본을 경제대국이면서 신비한 전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로 소개하는 재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 근접국가인 입장에서 포장력이 부럽고 또 가증스럽다. (견우야 나는 어쩔 수 없는 혐일인인가봐)


또 하나 더, 호텔에는 나리타산 신쇼지 창설과 관련이 있는 사가천황(*그냥 고유명사로 씀) 모형이 한켠에 놓여 있었는데 그 크기와 색감이 절묘하게 무서워서 기왕 무서웠던 김에 여러분도 같이 무서워 보시자고 사진을 덧붙여 본다.



항상 12월 마지막 날 (오오미소카, 大晦日)에는 수육이나 고기볶음 같은 걸 만들어 대량의 술과 곁들여 새해를 맞이했는데 올해는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과자, 컵라면으로 조촐하게 한 상 차려 새해를 맞이했다. 낡고 비좁은 시티호텔이었지만 집보다 뜨거운 물 콸콸 나오고 땀이 날 정도로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집 나가면 고생이다'가 아니라 '집에 있는 게 고생이다'라는 신장르를 개척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15분.

호텔 침대와 핸드폰에 더블로 설정해 둔 알람이 삐비빅 5분 간격으로 울렸지만 좀처럼 일어날 수 없었다. 우리가 집을 출발하기 직전에 시누이가 이상한 전화를 걸어와서 기분이 상했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추궁하다간 남편 기분도 나빠질까 봐 꾹꾹 눌러 담았던 것이 베개에 머리를 갖다 대자마자 새록새록 떠올라 잠을 설쳤다. (지금도 저어 앞에서부터 쓰다 말다 하다가 결국 쓴다)


일본인들 사회에선 그게 통용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나이 많고 착한 오빠를 이제까지처럼 자기 좋을 대로 휘두르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 같다. 그래서 일본 포털사이트에 밤새 '시누 연락', '결혼 보고 언제', '이상한 시누' 같은 걸 검색하면서 찾아봤지만 똑같은 케이스는 없고 세상에 이상한 시누 진짜 많고, 행동도 천차만별이라는 것만 새롭게 습득했다. 그리고 내가 진짜로 각 잡고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이 집안에서 빌런은 시누가 아니라 내가 될 거란 생각을 하니 묘하게 짜증도 났다. 아, 형제 없고 혈연가족 여기 안 사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근데 그런 말을 빠르면 이번 주말에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저녁마다 갑갑함에 자꾸 술을 푸게 되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니 이하 생략)



한동안 누워있다가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오랜만에 고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궁금했는데 창문을 열자 어슴푸레한 세상을 가르고 2024년의 첫 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커피믹스를 털어 넣은 컵에 온수포트의 물을 붓고, 어제 사둔 모닝빵을 오물오물 씹어먹으며 맞이하는 일출. 오래된 호텔이라 창문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왔는데 이런 소소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새해에게 덤으로 얻은 뷰치고 꽤 근사한 것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지켜보았는데 슬슬 준비할 시간이 되어 얼굴을 씻고 머리를 말리는 그 짧은 사이에 해가 다 떴다. 조금 아쉬웠지만 어물댈 시간도 없어 짐을 챙겨 역으로 향했다.



한번 왔던 길이라 역까지는 수월하게 찾아갔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올해 첫 태양이 발하는 빛에 눈이 따가웠다. 12월 31일의 해도, 1월 1일의 해도 똑같은 해일텐데 오늘따라 새롭게 보인다. 연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좀 더 좋은 상황이기를 바라고 싶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올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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