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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an 12. 2024

겨울, 마당고양이들과의 재회

 

올해는 어떻게 타이밍이 맞아 신정연휴를 한국에서 보낼 수 있었다. 한국의 매서운 한겨울을 나는 것은 오랜만이라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건물 난방이 잘 되어 있고 금방 차에 타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 않았다. 오히려 도톰한 파일양말을 신은 발바닥은 불이라도 난 것 같이 더웠다. 공항까지 마중 나와준 아빠와 함께 순댓국집에 들러 밥을 먹고 나오는데 차에 올라타려는 내 발을 아빠가 유심히 쳐다보더니 실소를 지었다.


"뭐 그런 걸 신고 왔어."

"왜? 한국 춥다 그래서 따뜻하게 하고 온 건데"

"30년 가까이 살다 갔는데 이 즈음 추위를 몰라? 어차피 다 차 타고 다닐 건데 뭐 한다고 그런 두꺼운 걸, 어휴."

"발 뜨겁긴 해"


뭐 그런 거


어쨌든 지내보니 알겠다. 내가 한국에 머물던 동안엔 -5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는, 비교적 따뜻한 날씨기도 했지만 이론상 일본보다 추워야 할 한국에서 몸이 부르르 떨리게 춥다란 느낌을 받아보지 못했다. 겉모양만 현대 건축물이지 기능은 우가차카우가우가 원시인집이 따로 없는 일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건물을 따숩게 잘 짓고 어딜 가도 난방이 잘 되어있어 몸의 심지가 식지 않게 지내니 밖에서 칼바람을 맞아도, 내놓은 쓰레빠를 맨발로 신어도 당장은 뼈마디가 시린 느낌이 없다. 그래서 아빠의 눈에는 쓸데없이 두꺼운 (사실 입고 간 옷 중에 양말이 제일 두꺼웠...) 양말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수면양말 신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고. 


동사무소 (앗 이젠 행복센터?)에서 받아온 핫팩도 결국은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덜' 추울 뿐이지 아주 안 추운 것은 아니잖은가.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가면 꼭 만나보고 안위를 묻고 싶은 이가 있었는데, 우리 집 마당고양이, 정확히는 뒷마당 쪽문 고양이 방울이다.

 

고양이, 방울


원래는 앞마당에 살고 있었는데 같은 배에서 난 형제들(모두 다 이름은 방울이다)은 먼저 먼 여행을 떠나고, 새로 온 숫돌이에게 집터를 빼앗긴 비운의 들고양이다. 지금은 하루에 한두 번, 뒷마당 부엌 쪽문 옆에 와 물과 밥을 얻어먹고 간다. 10월에 왔을 때 엄마 대신 종종 밥도 주고, 다른 애들에게 쫓겨나지 않게 문지기도 서줬는데 이 한겨울은 어찌 날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친정집에 갔을 때도 방울이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만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참조) 마당 고양이들의 가계도


방울이와의 재회는, 한국에 도착한 그 다음날 아침에 이루어졌다.

전날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으으, 머리 아파, 하며 쪽문을 열었는데 어디선가 방울이가 툭 튀어나왔다. 그 이후도 쭉 그런 식이었다. 어디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쉬다 나오는 것인지, 쪽문이 열려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리면 어디선가 급하게 우다다닥 뛰어나오는, 이름따라 방울로 부르는 방울이가 되었다. 여전히 잘 먹고, 급하게 먹고, 또 주위를 경계했다.


괜찮아, 천천히 먹어.



어느 날은 밥을 다 먹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사료통을 올려둔 발디딤판 위에 낼쭉 올라와 앉았다.

더 달라는 이야기인가 싶어 뚜껑을 여니 다시 밥그릇 옆으로 뛰어내려가 다소곳이 기다린다. 배가 많이 고팠는가 보다. 눈을 밟아 발바닥이 젖었는지 나무 발디딤판 위에 방울이의 발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아빠가 '뭐 그런 거'라고 한 내 양말, 진짜 필요한 것은 방울이일지도 모른다. 


방울이가 사람을 '뭔가 바라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사료통 근처에 가 비비적거릴 때에는 밥을 더 달라는 신호라는 것을 얼추 알았을 무렵, 방울이가 갑자기 몸을 쭈욱 뻗어 가까이로 다가왔다. 

 

롱다리
더 달라고


새로운 타입의 '더 줘'였다.


이는 비단 방울이뿐이 아니었다.

방울이와 달리 사람 손 타는 것을 싫어하는 앞마당 고양이들은 밥 주는 엄마 이외에는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춥고 먹을 것 없는 겨울나기에는 장사 없는지, 밥때가 조금이라도 지난 것 같으면 사람 기척을 내는 그 무엇에게도 달려와 밥을 졸랐다.


하지만 그들이 정한 한도는 딱 거기까지, 아주 가까이에 와 달라붙는 일은 없었다. 


'허튼짓 하지 말고 빨랑 밥이나 주고 가던 길 가쇼'라는 듯한 눈초리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사람이 조금 떨어져야 밥을 먹는다


조심조심 망을 보고 먼저 나온 것은 아마 엄마 숫돌이. 그 옆이 살구일 것이다.

머니들은 보지 못했지만, 마당을 오며 가며 간간히 쉬익 지나가던 다른 작은 그림자도 있었으니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비장한 방울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안에서 강아지를 기르는 집도 흔치 않았다. 하물며 고양이는 영물이라고 무섭다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게 우리 엄마 되시겠다. 그런데 시골집 살면서 자의 반 타의 반 고양이를 기르고(?), 그 김에 가끔만 가는 나도 고양이와 접점이 생겼다. 고양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움직임을 하는지, 그들의 희로애락과 생태까지는 채 알지 못한다. 밥 주는 아줌마 딸 버프를 받아 간간히 근접거리에서 마주 하는 시간들도 앞으로 과연 몇 번이나 더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보송 거리는 앞발로 날래고 야무지게 뛰어다니는 이 아이들이, 그저 이 겨울을 건강히 나고, 그다음 겨울도, 그다음 겨울도,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간혹가다 만나는 밥 주는 아줌마 딸이 퍼주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의 사료 맛도 잊지 마시고. 



가을의 방울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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