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마트에 갔다 떡을 사 왔다. 가끔 그 쫀득한 식감이 그리워질 때면 마트에서 미타라시 당고(みたらし団子, 단 간장소스를 바른 경단꼬치)나 다이후쿠(大福, 단맛 나는 팥소가 들어간 찹쌀떡)를 사 먹곤 하는데, 요즘 나베도 자주 하니 기왕이면 나베에도 하나씩 퐁당퐁당 넣을 수 있는 떡이 좋을 것 같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키리모찌를 샀다.
찹쌀로 만든 떡을 네모반듯하게 썬 키리모찌. 새해에 먹는 일본 떡국 오조니(お雑煮)에 들어가기도 한다.
딱딱하게 굳어있어 물에 넣어 끓이거나, 프라이팬이나 토스터로 구워야 쫄깃쫄깃한 떡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약불에 천천히 구웠다. 양면을 노릇노릇 굽고 있으면 네모난 떡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양면 다 합쳐서 5분 정도 걸렸을까? 대충 다 된 것 같아 접시로 옮기고 꿀을 뿌렸다. 기름에 구운 떡에 꿀까지 뿌리니 칼로리 폭탄이 따로 없겠지만 그런 거 생각하다간 인생의 재미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예전엔 세상만사 모든 걸 내가 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알고 싶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모른 척이 세상을 쉽게 사는 방편 중 하나라는 걸 깨닫고 있다. 이번의 이 모른 척이 세상을 쉽게 살게 해주는 방편이 될지, 아니면 세상을 쉽게 떠나게 해 줄 방편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겉은 바삭, 속은 쫄깃. 거기에 달달한 꿀까지 뿌렸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게눈 감추듯 슥삭.
기왕 키리모찌가 집에 있는 김에 다른 것도 만들어 보고 싶어 찾아보는데 전자레인지로 오카키(おかき, 찹쌀로 만든 일본 전통과자) 만들기가 나왔다. 쌀로별과 떡국떡 뻥튀기 사이 식감의 과자인데 축구 보다가 입 심심할 때 먹으면 좋을 것 같아 미리 연습 삼아 만들어 보았다. 키리모찌 1개를 12조각으로 자른 뒤, 500W 전자레인지 기준 3분 30초~4분가량 돌려주고 고물을 묻히면 된다 하길래 자른 얘를 전자레인지에 넣어두고,
볶은 콩가루에 설탕, 왜간장에 설탕을 넣은 두 종류의 고물을 만들고 전자레인지의 부름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라면땅 만들려다가 뭐가 문제였는지 엄한 사기그릇만 하나 해먹은 그 전자레인지라 불안감을 버릴 수 없었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운전 종료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전자레인지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를 반겨왔다. 그제서야 자른 떡은 유산지 위에 한 알 한 알 떼어놓고 돌렸어야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래, 안 그럼 다 눌어붙을 테니까. 근데 이런 건 꼭 한번 망해보고 나서야 생각난단 말이지. 이상하게도.
하지만 들러붙어 있을 뿐 먹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주방가위로 적당히 설겅설겅 도려내어 아까의 그 콩고물과 설탕간장에 굴려 보았다. 딱 떨어지게 예쁜 맛은 없지만 투박한 나름의 멋이 있는 것 같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물기 없는 딱딱한 떡이 전자레인지에서 열을 가한다고 이렇게 뻥튀기처럼 되다니. 하기사, 우리 엄마도 나 낳아놓고 걔가 세월의 풍파를 가했다고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 했겠지.
이렇게 연습은 했는데, 정작 16강 사우디전은 뭘 먹을 시간대가 아니었고, 어제는 발해인이 처참하게 깨지는 바람에 이런 걸 만들고 있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호주전도 늦은 시간이고, 명예 이란인으로 활약해야 할 일본 대 이란전에서는 과연 어떠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