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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17. 2024

나미비아 옹달샘에도 토끼가 온다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미비아 공화국. 국토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지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구가 있고 사막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과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이 매력적인 나미비아. 


사실 요즘 나의 매일은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에서 시작되고 있다.


...... 아니 얘 일본 어디 시골구석에서 집콕하고 있을 텐데 나미비아는 무슨 나미비아야?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저를 굉장히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대체 누구신가요? 우리 친인척들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를 텐데?





밤에 가끔 한강과 서울 거리를 보여주는 라이브캠을 보면서 향수를 달랜다. 특히 한강다리의 야경은 내겐 '서울 감성 버튼' 중 하나인데, 라이트로 길게 꼬리를 그리며 사라지는 차들, 저 멀리 빛을 밝히고 있는 아파트 창문의 불빛들은 종로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던 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버스 안에도, 저기 보이는 건물 안에도, 여기 이 버스 안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있는데 그 누구도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옅은 술냄새를 풍기는 나는 방금 전까지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집에 가는 길은 그렇게 쓸쓸하고 허망했다. 이렇게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아주 외로운 도시. 그게 나의 서울이다.  


그런 나를 보며 유튜브 알고리즘은 무언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 너 라이브캠 좋아하는구나? 그럼 이건 안 보고 못 배길걸. 유튜브 알고리즘의 주선으로 나미브사막과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사실 알고리즘 솜씨 좀 볼까? 하는 기분으로 섬네일을 클릭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처음 이 라이브캠을 보았을 때는 이게 뭐야 싶었다.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7시간. 광량이 적어 흑백으로만 보이는 화면에는 작은 옹달샘과 말라비틀어진 나무만 보였다. 아직 아침이 밝지 않은 새벽의 사막에는 카메라 불빛을 향해 날아왔다가 사라져 가는 벌레들만 무성했다. 누가 이런 곳에 카메라를 가져다 놓았는지 신기했지만 정말 뭐가 나오긴 나오려나 의심도 들기 시작하던 그때.

 

깡총깡총

긴 귀, 통통한 실루엣, 긴 뒷다리. 요리보고 조리봐도 토끼가 틀림없다. 

토끼 하면 산이나 초원, 그리고 초등학교 사육장에서 서식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불모지에도 존재한다니 그 강인한 생명력이 놀랍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쳐다보던 화면에 낯익은 친구가 나오다니 반갑기도 하고.


어? 가만. 이 시추에이션, 뭔가 익숙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잔잔한 그 노래. 유치원 조기교육으로 내 DNA 어딘가에 깊이 새겨진 추억의 K-동요. 

어디서 왔는지 모를 토끼는, 가사 그대로 정말 물만 먹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총총.



날이 밝아오고 모습을 드러낸 옹달샘의 전경은 이러했다.

딱히 자극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해가 뜨고, 동물들이 나타나고,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비와 벼락은 정말 드물다고 한다), 이런 평범한 자연을 느긋하게, 생각났을 때마다 바라보는 것이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아무도 옹달샘에 오지 않더라도 커피를 마시며 사막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켜두고 다른 작업을 하다 '챱챱' 소리가 나면 그때 봐도 된다. 전에는 라이브캠 창을 닫는 깜빡하고 노트북으로 로기완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처연한 눈빛의 송중기 뒤로 어울리지 않는 챱챱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그때는 타조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타조와 누, 오릭스)

타조는 물을 마실 때 고개를 아래로 꺾어 내려 마치 국자로 국을 푸듯 물을 마신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타조무리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더라도 이렇게 떼를 지어온다. 한 마리 나타났다 싶으면 둘, 셋, 넷, 다섯, 끊임없이 나타난다. 솔플에 익숙한 오릭스조차 옹달샘을 점거한 타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슬금슬금 눈치를 볼 정도. 그래, 어디든 무리는 무섭지.   


얼룩말

무리를 지어 다니는 거로는 얼룩말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선호하는 자리가 있는 것인지 나타날 때마다 이렇게 탱탱한 근육질 엉덩이를 시청자에게 피로한다. 어휴, 얼마나 찰져 보이는지 한 번쯤 찰싹, 두드려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는... 모두 그렇죠? 나만 그런 거 아니죠? 


오릭스와 스프링벅, 말

그 외 무해한 동물들. 오릭스는 또 왔냐 싶을 정도로 자주 오는데 스프링벅과 말은 레어 한 편. 전엔 기린도 두어 마리 와서 물 마시는 걸 봤는데 사진 찍는 걸 깜빡했네. 


이렇게 물만 마시다 가는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간혹 가다 특이한 행동을 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하이에나 (한 마리는 입욕 중)

이 하이에나들은 두 마리가 나란히 와서는 한 마리는 샘에 첨벙 들어가 입욕을 즐겼고, 다른 한 마리는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물속에 들어가 있는 녀석의 덩치가 더 컸고 남이 마시는 물에서 저 하고 싶은 대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 꼭 테이슈칸파쿠(亭主関白, 가정 내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남편)와 기 못 펴고 사는 부인을 보는 것 같아 재밌었다. 아, 목욕 중인 쪽이 오니요메(鬼嫁, 잔혹하고 무자비한 부인) 일 수도 있지만.


오릭스와 멧돼지 일가 (뒤엔 뭐지, 누인가)

목욕하면 멧돼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밤에도 오고 낮에도 오는, 여기가 대중탕인 줄 아는 모양인지 대중없이 나타나 물에 몸을 담그거나 물에 젖은 모래에서 진흙 찜질을 하고 간다. 사람이었으면 달목욕 끊고 다닐 듯.

 

호저와 자칼

호저는 얼마 전 에버랜드에서 보고 신기한 동물이다 했는데 여기서 또 만날 줄이야. 

자칼도 밤에 종종 마주하는데 


밤비 같은 자칼


처음엔 허리의 검은 띠 무늬를 보고 뿔 없는 톰슨가젤인 줄 알았다.


비둘기

숫자는 제일 많지만 주로 아침과 해 질 녘에만 나타나는 비둘기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가끔 파드드득 날아가는 소리를 제공해 준다. 아, 이 라이브캠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런 자연의 소리도 고스란히 들린다는 것. 새가 날아가는 소리, 우는 소리, 동물들이 따그닥따그닥 걸어와 물을 마시는 소리. 천연 ASMR이다.


인간

어느 날은 휴먼도 와서 '억, 하다 하다 인간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관광 프로그램이 있단다. 오른쪽은 가이드(관리인)이고 왼쪽 세명은 관광객인데 한참 카메라를 보고 오두방정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넷이서 같이 하얗고 네모난 덩어리를 꺼내 으쌰으쌰 들어다 놓고는 왔을 때처럼 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채팅창에는 '몇 시 몇 분에 왔다 갔다'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데, 덩어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영어가 짧아 완벽하게는 없었지만 대충 미네랄 큐브라는 듯. 사막의 동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게끔 해주는 중요한 존재라 한다. 그러고 보니 오릭스가 자꾸 주변을 알짱대며 깨작거리더라니. 


큐브는 세 개가 있는데 동물들이 갉아먹으면 점점 작아진다. 그럼 관리인과 관광객들이 와서 새것을 놓아주고 가는 것이다. 그냥 와서 '와, 광활한 사막, 여기저기 야생동물들 멋있다!' 하고 땡이 아니라 함께 사막과 야생동물을 지키고,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행동을 할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같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의 나미브는~' 하며 유튜브에 들어간다. 내동 그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일까. 반짝이는 불빛과 바쁘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이 없어도, 아니, 그런 것들이 없어서 더 편안하고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낮에 포식자가 오면 완전 호화 뷔페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물을 마시는 곳은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했는지 적당히 피해 가며 물을 마시는 점도 인상깊다. 미물이라는 짐승들도 저렇게 최소한의 것은 지키며 살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제까지는 이런 제3세계랄까, 현대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이 나미브 사막 라이브캠을 보며 (새삼스럽지만) 야생동물들을 품고 키우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고 우리 인간 역시 지구만 제 것처럼 막 쓰지 말고 자연의 일부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왕 사람으로 태어난 김에 그냥 먹고 자고 싸는 것만 하지 말고,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하고,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는 삶을 살아야겠다. 옹달샘을 중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저 야생동물들에게 지지 않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ydYDqZQpim8


혹시 이 글로 나미브 사막에 관심이 생겼다면, 바쁜 일상은 잠시 잊고 잠시 잠깐 이 나미브 사막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은 어떠실런지. 




악, 기린 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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