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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05. 2024

세상 남사스러운 꿈

거의 매일 꿈을 꾼다. 화면 사양은 올컬러판 1인칭 주인공 시점. 어딘지 모르게 그립고, 낯익은 배경이 많고 마치 세계관을 공유하듯 비슷한 장면이 다른 꿈에서 반복되어 차용되는 경우도 있다. 등장인물들은 실제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아이돌, 배우까지 빈번하게 출연할 만큼 캐스팅도 화려하다. 장르도 다양해 꿈에서 깨면 한 편의 드라마를 즐긴 듯한 기분이 들어 꿈꾸는 걸 좋아한다. 강렬한 꿈은 잊기 전에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는데, 적지 않은 내용들은 대개 다음 날 즈음에는 깨끗하게 잊어버린다. 


그런데 근 일주일이 다 되도록 잊히지 않는 꿈이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내 인생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남사스러운 꿈을 꾸었다. 




그날, 꿈속의 나는 한국의 어느 낡은 쇼핑센터 같은 곳에 서 있었다. 1층은 금붕어 가게와 푸드코트가 들어서 있고 2층은 교회라는 설정이었다. 실내조명은 흰색 형광등이었는데 몇 군데 등이 빠져있기도 하고, 파지직 깜빡거리기도 해 분위기가 좀 어둡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저기 금붕어 수족관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중 아주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엄마.


젊은 남자와 작은 금붕어를 보며 뭐라 하고 있었다.

나는 '오, 여긴 웬일이야? 금붕어도 있네? 이거 예전에 우리 집에서 키웠던 거 아니야?' 하며 말을 걸었다. 나를 알아본 엄마는 당황스러워했는데 옆의 젊은 남자가 나를 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남자의 키는 꽤 커서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려다봐야 했다. 이 사람도 아는 얼굴이다.


서강준.


아니, 근데 왜 서강준이 우리 엄마랑 같이 있나 놀라워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현재의 정보들이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꿈속의 서강준'은 엄마와 같은 교회를 다녔고, 그걸 계기로 둘이 사, 사, 사, 사, 아, 도저히 못 쓰겠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니 엄마 제정신이냐고 하는데 어딘가에서 사시미 칼을 들고 뛰어온 여자에게 배를 찔렸다. 여자는 서강준이 소속된 교회 청년부 멤버라는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엄마도, 서강준도 나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그럼 예배 보러 갈까요?' 하고 자기들끼리 2층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너무나도 개호시설 입소자 할머니와 젊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따뜻한 모습. 상처를 부여잡고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 나를 찌른 범인은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후다닥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엄마와 서강준이 나를 도와줄 거란 기대를 할 수 없게 된 나는 성치 않은 몸으로 칼 루이스 저리 가라 하는 스피드를 내며 범인을 따라잡았다. 뒤돌아 선 범인은 거대한 전정가위를 내게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는 몸을 뒤로 물리며 가윗날을 맨손으로 막았다. 손에서 피가 났지만 아랑곳 않고 외쳤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너희 엄마가 할머니 주제에 감히 서강준이랑 사, 사, (아, 도저히 못 쓰겠다)... 니까 그렇지!"

"그럼 엄마를 찔러야지 왜 나를 찔러!"

"너 진짜 불효자다." 

"우리 엄마 67살인데 서강준 27살이라고! 나라고 좋은 줄 알아? 너는 몇 살이야?"

"나도 서강준이랑 같은 27살이야"

"ㅅㅂ... 난 37살이야. 어디서 27살 밖에 안된 새끼가 겁대가리 없이 사람을 찔러? 어?"


사건의 전후관계가 다방면으로 변질되어 갔다. 할머니가 서강준이랑 사, 사, (아, 도저히 못 쓰겠다) 여서 화가 나 그 딸에게 칼을 휘두른 여자. 그 여자에게 칼을 맞고 결자해지, 인과응보를 부르짖는 딸. 엉망진창인 상황과 대화 속에서 유일하게 맞는 말인 '너 진짜 불효자다'. 나이가 어린 쪽은 나이 먹은 사람을 찌르면 안 된다는 이상한 장유유서. 혼란하다, 혼란해. 


이 이상한 꿈은 결국 내가 전정가위를 탈취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쨌든 죽지는 않았고 내가 이긴 것 같긴 한데 영 뒷맛이 좋지 않은 꿈이다. 먼저 엄마의 40살 연하 남, 남, 남, (이하 생략)을 보는 것은 딸로서 영 떨떠름하고 부끄러웠고, 엄마를 대신해 칼에 찔렸는데 엄마가 나를 돌보거나 미안해하지 않고 서강준을 택했다는 배신감도 들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참 기분 나쁜 꿈이다. 


꿈은 은연중에 보고 생각한 정보와 욕구들이 무의식적으로 섞여서 나타나는 거라던데. 이 해괴망측한 꿈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흉기가 난무하는 것은 어쩌면 요즘 보고 있는 펜트하우스 시즌3의 영향일 것이다. (내가 뱉는 말들도 뭔가 주단태 같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나 먼 이국땅에서 자녀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함도 얽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 나를 향해 날아드는 칼날은 일상생활에서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불만이나 불안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완전히 짚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꿈이다. 어차피 매일 꾸는 꿈이라면 좋은 꿈을 꾸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일단 낮동안 좋은 생각을 하고, 착한 말을 하고, 예쁜 것을 보고, 즐거운 일을 계획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깨어있는 동안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 주위에 가득 채우고 있으면 꿈의 세계에서는 낮에 축적한 밝은 기억들이 한 알 한 알 예쁜 별사탕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리겠지. 그래서 이번 주는 길든 짧든, 예전처럼 5일 동안은 하루에 하나씩 계속해서 글을 썼다. 아무것도 안 하고, 못 쓰고 '안 써져' '못썼어' 하느니, 뭐라도 하는 것이 나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이번 주는 (여전히 연재는 하나 펑크 내고 있지만) 그저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더라도 오랜만에 달성감도 있고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하나 더 나아지는 건 있겠지. 응. 그럴 것이다. 


왜 서강준이 나왔는지 만큼은 의문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좀 더 활약할 수 있는 다른 장르의 꿈은 얼마든지 있으니 기왕이면 거기서 다시 만나자. 엄마는 미안. 엄마는 내 꿈속에서 나이가 불어났다. 그 와중에 난 내 나이만큼은 사바요미(サバ読み, 키나 연령 등을 저 좋을 대로 적당히 속이는 것) 해서 약간, 아주 약간 젊은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꿈을 통해 스스로를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오늘은 식목일. 이미 휴일은 아니게 되었지만 이미 심겨진 나무들은 쑥쑥 자라고, 나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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