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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04. 2024

떨어진 잎에도 봄은 오는가

몇 주 전, 옆동네 쇼핑몰에 갔는데 마르쉐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손수 기른 야채를 파는 아줌마, 호리병을 파는 신선 같은 할아버지, 푸근한 이웃들이 저마다 정성으로 기르고 만든 것들이 늘어서 손님을 기다렸다. 다육식물 부스에는 나와 산지가 똑같은 한국산 모종도 있다. 뭐지, 이젠 다육에도 K-다육 바람인가. 호기심에 둘러보는 사이, 황량해진 우리 집 키친 카운터를 다시 한번 녹색으로 물들여 보고 싶다는 욕심이 일렁였다.


또 다 죽이는 건 아닐까?

아니야, 품종명도 있으니 이번엔 유튜브로 배우면서 기르면 돼. 


말 못 하는 식물이지만 엄연히 생명이다. 그리고 식물은 집에 들이는 것보다 내가 위탁받은 그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연쇄살식마가 되었던 지난 1년 동안 깨달았다. 그래서 또다시 엄한 애들 사지로 내몰까 봐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유튜브를 믿어보기로 했다. 


바구니 대신 놓인 티슈 케이스에 모종포트 세 개를 담아 건넸다. 포트들은 플라스틱 두부통에 넣어지고 다시 한번 비닐봉지에 들어가 내 손에 건네졌다. 약간의 책임감과 함께 이 애들이 어떻게 자라줄까 하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차에서도 무릎 위에 얹고 조심히 온다고 왔는데 나중에 보니 잎 두 개가 떨어져 있다. 찢긴 흔적 없이 깨끗하게 떨어져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빈 유리병 흙 위에 올려두었다. 다육이들은 떨어진 잎에서 새 잎과 뿌리가 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말이 없다


떨어진 것은 핑크베리의 잎이었다. '믿는 구석'을 찾아보니 잎꽂이로 개체를 불리기가 쉽고 봄에는 왕성하게 자란다고. 그즈음 불어닥친 꽃샘추위가 복병이었지만 해가 잘 드는 날엔 창가 반그늘에 놓아두고 가급적 따뜻하게 해주려 했다. 집 습도가 너무 낮아 삼일에 한번 정도 흙에만 살짝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시 새 잎이 돋아나지 않았을까?' 하며 화분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대며 잎을 관찰했는데, 쟤네들 입장에선 진격의 거인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 얼굴공격 때문인지 열흘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통통했던 잎만 매가리 없어지고 이대로 물러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하얀 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저께, 습관처럼 화분을 내려다보는데, 어라? 이파리 하나가 아주 약간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혹시 곰팡이가 피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조금 더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14일째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오늘. 볕이 좋아 다육이들을 창가에 늘어놓은 김에 하얀 뭔가가 돋아난 이파리를 창가로 데려갔다. 햇볕에 요리조리 비춰보는데 그제보다 더 수상했다. 줌을 확대해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새싹 & 뿌리


세상에! 

그 하얀 무언가는 너무 작아 그렇게 보였을 뿐 새로 돋아난 잎이었다. 하트 모양 두 갈래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잎 아래로는 뿌리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별 변화 없이 다만 쪼글쪼글해져 가는 것으로만 보였던 옆 친구도 아주 작고 연약한 잎을 틔워내고 있었다.  



그 김에 분갈이 도중 우수수 떨어져 앞의 둘과 똑같이 흙에 뉘어놓았던 다른 잎들도 찍어보았다. 개체 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저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아 나처럼 그냥 누워 있던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 시험공부 안 하고 진짜 놀았던 건 나뿐이었다. 


아니 그런데 기다려봐. 전부 다 무사히 잘 자라준다면 이게 대체 몇 쌍둥이냐. 흙이랑 화분이 모자라겠는데. 김칫국을 한 사발을 들이켠 나는 앞으로 필요해 질지도 모르는 화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푸바오는 중국으로 떠났지만 떨어진 잎에도 봄은 오고, 나는 이렇게 오늘을, 또 곧 내일을 맞이한다. 각자에게 놓인 시간의 모양새는 제각각이지만,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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