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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03. 2024

푸바오가 떠났다

2024년 4월 3일, 내가 사는 일본 땅에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다. 온 땅을 촉촉이 적시는 비가 그치고 나면 필까 말까, 싹틀까 말까 하던 친구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빵, 흙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겠지만 이 비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2006년 11월 1일, 집에 오는 버스 옆자리에서 '머리가 예쁘네요' 하고 머리카락을 만졌던 머리 이상한 사람을 만났던 것을 18년째 기억하듯이, 아마 꽤 오랫동안 오늘의 날씨를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여기랑 똑같이 용인에도 비가 내렸고, 그 빗길을 뚫고 푸바오가 떠났다.


나의 첫 실물 푸바오


이전에 열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국으로 가는 샹샹을 배웅하기 위해 온 많은 일본인들이 눈가를 연신 손수건으로 찍어대며 샹샹이 탄 트럭과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다음 날 아침 방송을 일제히 장식했다.


"어휴, 또 또! 또 오버한다! 하여튼 여기 사람들 뻑하면 과몰입하는 거 알아줘야 해."


호로록, 모닝커피를 마시며 남의 일이라고 입을 쉽게 놀렸다. 작년에 쌓은 업보는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1년 1개월 하고 2주 만의 일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에버랜드. 이제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사육사 분들의 서운하고 안타까운 표정. 안에 든 푸바오는 보이지도 않는데 커다란 트럭에 랩핑 된 푸바오는 너무도 크고, 환하고, 예뻤다. 업보 부메랑에 맞은 나는 1년 전 그들이 그러했듯이 습기 찬 눈을 훔치며, 안타까운 상실감을 맛봐야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일본에 있어서 어차피 푸바오는 바다 건너 판다였는데, 푸바오가 한국을 떠났다는 것이 왜 이렇게 허전하게 느껴지는 걸까. 


거기서도 너는 삼각김밥 같은 뒷모습을 하고 있겠지?


푸바오는 한국 땅을 떠나 벌써 중국의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판다해방전선'같은 수수께끼의 단체가 트럭을 탈취해 푸바오를 몰래 한반도에 숨겨두는 상상도 하고 (서스펜스 드라마 너무 많이 봄) 갑작스러운 기적이 일어나 푸바오의 중국행이 취소되기를 기대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맛있는 대나무랑 워토우도 먹으면서 소풍 가듯 이 여정을 즐기고 있었으면 좋겠다. 중국의 판다정책과 동물의 행복권, 동물원 판다 푸바오의 중국행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넌센스라 생각하지만, 그것 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 최적화된 행복을 푸바오가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슬픈 사람들도 가급적 빨리 마음 추스르고 제 자리를 찾아왔으면 좋겠다. 사실 사육사 분들이 제일 걱정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지척에서 돌보던 정든 동물과 갑자기 헤어진다는 건 그렇게 간단히 잘 가! 잘 지내! 하며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이별은 그 하나하나가 매 순간 새롭고 괴로우니까. 



작년 9월에, 양모펠트로 푸바오를 만들었었다. 풍부한 표정, 천진난만한 생각이 읽히는 귀여운 몸짓, 푸바오의 사랑스러움이 좋아 내 나름의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다. 내실에서 등 보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었는데, 다 만든 다음 새로 태어난 동생들도 만들자고 만들다 보니 남편이 '푸바오가 아니라 아이바오가 됐다'라고 하여 어디 보일 수가 없었던 푸바오다. 사실 푸바오라 우기면 푸바오, 아이바오라 우기면 아이바오, 러바오라 우기면 러바오, 판다 탈을 쓴 강바오라 우기면 강바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와도 닮지 않은 판다 인형이 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푸바오다. 


푸바오가 앞으로 살 집은 어떤 곳일까. 이렇게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잔디도 많았으면 좋겠고, 봄에는 유채가 피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남천 비슷한 나무도 심어져 있었으면 좋겠고, 맛있는 대나무도 많이 줬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푸바오 덕분에 나는 많이 웃고 울었다. 이런 멋지고 귀여운 판다가 우리 판다라니, 행복했다. 내가 일본에 산다고 일본인이 아니듯, 푸바오가 중국에 가서도 푸바오는 푸바오 그대로다. 나의, 우리의, 멋지고 귀여운 아기 판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신나고 즐겁고 배부르게 지내며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길, 그리고 꼭 다시 만나자. 푸바오. 


안녕. 





*또 다른 4월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및 유가족 분들께도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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