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람 Mar 22. 2024

뭐야, 일본 응원하는 거 아니었어?

어제는 세계 각지에서 월드컵 예선 2차전이 열렸다. 한국의 상대는 타이였는데, 우리나라보다 아직 한참 아래라 생각했기에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매력적인 시합으로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경기가 기대되었다. 오랜만에 비비고 만두까지 굽고 찌고 하면서 시합을 기다렸는데 정작 시간이 되어서는 만두 굽기에 정신이 팔려 시작 부분을 놓쳤다. 아차, 되게 이상한 시간, 7시 20분이 킥오프라 그랬지. 마침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티브이 전원을 켰을 땐 일본이 볼을 가지고 상대방 골포스트를 향해 우다닥 뛰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


틀자마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 나는 요리용 젓가락을, 남편은 티브이 리모컨을 채로 화면을 응시했다. 이윽고 선수의 발을 떠난 축구공은 그대로 상대의 볼네트를 뒤흔들었다. 시합 시작 2분 만의 일이었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자국의 골 소식에 남편은 환호하던 남편은 '자, 일본전을 기대했다던 너도 기쁘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아... 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시작하자마자 골을 먹고 있냐고. 아오."


일본에 살고 있어도 일본은 어쨌든 이웃집이다. 그것도 눈빛 하나, 말투 하나 묘하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면서 왜 눈깔을 그렇게 ㄸ... 그렇게 보냐고 하면 '어머 제가요?' 하고 모른 척 시침 딱 떼는 그런 눈꼴시린 이웃. 그래서 가급적 엮이고 싶지 않지만 엮인 이상은 저 좋을 대로 그냥 두고 싶지 않은 이웃. 미운 이웃. 그런 이웃을 왕래 안 하고 산지 오래된 고모 아들(약간 난봉꾼)이 손봐주러 간다고 할 때의 느낌. 


일본과 북한의 시합은 내게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남북사이가 악화되어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를 괴리라 불렀어도 일본에 대한 스탠스는 같을 것이고, 북한 선수들은 일본에게는 거칠고 끈질기게 플레이할 것 같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대리 한일전이랄까. 가라! 일본 애들의 연약한 멘털 좀 간만에 탈탈 털어주고 와라! 일본의 월드컵 본선진출에 찬물(가능성은 낮을지언정)을 끼얹어 주면 더 좋고! 같은 기분도 있었다. 


그런데 뭐 시작하자마자 골을 먹다니.

속이 타는데 남편이 묘한 표정으로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뭐야, 일본 응원하는 거 아니었어?"

"...? 내가 왜?"


이 나라에 딱히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는 있던 애정을 여기 사람들이 달려들어 갉아먹었다) 남편 국적을 이유만으로 일본 대표팀을 응원하기엔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한 원한이 이미 너무 깊어져 있었다. 굳이 일본을 응원까지 해줄 이유가 없다. 지라고 염불을 외면 몰라도.


남편은 내가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긴 시간 일본사회에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받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무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 자신의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는 여기면서도 굳이 내게 일본을 좋아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놓고 일본이 졌으면 좋겠다 할 땐 샐쭉 눈을 흘기거나 '내일 한국 경기도 봐야지. 지는 거 보게.' 같은 소리는 해도 일본을 응원하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다는 듯한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북한인데? 적 아냐?"


언젠가 했던 국방백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작정하고 싸우자 하면 적이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이잖아. 일본 상대로 싸울 땐 당연히 북한 응원하지."

"뭐야, 같은 편이었잖아?"


요즘 남북관계도 좋지 않고, 일본 경기 기대된다는 소리도 하니, 적어도 북한보다는 일본을 더 좋아할 거고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잠깐 실망스러워 하더니 이내 현실로 돌아와 앞접시와 하이볼컵을 들고 거실로 갔다. 


남편이 하나 잘못 짚은 게 있다. 


일본과의 경기는 애초에 누가 좋고 싫고, 누가 같은 편, 다른 편의 문제가 아니다. 

난 그저 미친 이웃들이 하루 온종일 티브이 속에서 '모리야스 감독이 이끄는 우리 일본 남자 축구 대표팀이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아시아 넘버원의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경기장에는 누구를 응원하러 온 많은 수의 응원단이 있었는데요, 그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본이 역시 어쩌고 저쩌고' 하며 기뻐 날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배알이 꼴려서. 상대가 누구던간에 그냥 일본이 지기만 하면 돼.






그런 나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티브이는 하루종일 켜지 않아 어떤 식으로 보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파랭킹이 비슷비슷한 상대도 아니니 그리 신나서 떠들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가토모가 아직까지 일본대표인 것과, 북한 선수들이 너무 깡말라 있던 것이 놀라웠을 뿐, 시합 자체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에이, 만두나 더 바삭하게 구울걸.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세차기 안에서 떠올린 어떤 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